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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따로 노는 교육정책은 실패…답은 학교에 있더라"

중앙일보 2015.02.14 16:57
“교육거품(Education Bubbles)을 계속 빼야 한다. 거품을 빼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교육 질이 절대 높아질 수 없다. 부실 대학도 20~30개는 더 솎아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정원 감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안타깝다.”


이주호 전 교과부 장관의 자성과 제언
“제도만 바꾸면 따라오리란 생각은 오산
하향식 정책 가장 후회, 현장부터 챙겨야
학생만 보고 하는 정책은 안 뒤집힌다”
“교육거품 걷어내려면 부실대학 정리해야
정원 감축만 매달리지 말고 30개 더 퇴출을
입시 개혁에 대학 목소리 담는 게 중요”

이명박 정부 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54)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교육거품론’을 강조하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물러나 보니) 정부가 새 제도를 만들어 따라오라고만 하면 학교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며 “현장과 따로 노는 정책은 결국 실패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디자이너이자 실행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 간사, 교육과학문화수석, 교과부 차관과 장관을 모두 역임했다. 그는 2013년 3월 장관 퇴임 후 언론과의 접촉을 철저히 피했다. 현 정부가 대학 입시, 대학 구조조정,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자율형사립고 등 이 전 장관이 추진했던 정책을 뒤집거나 축소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을 되짚어보고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 발전적인 제안을 하는 것도 책임이라고 판단해 고민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그는 “교육정책이 5년마다 바뀌는 것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우리의 정치 구조에도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며 “학교·학부모·학생 등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상향식 정책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를 지난 11일 서울 퇴계로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장에 착근 안 된 내 정책 뒤집혀



-5년간 MB 정부에 있다 퇴임했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

“KDI 국제정책대학원에 복귀해 본업인 교수로 돌아갔다. 2004년 5월 제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그동안 교과부 장관까지 꼬박 9년을 공직에 있었는데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국가연구개발체제 혁신 방안 연구’와 ‘2014년 교육정책 연구’ 등 책과 논문을 쓰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다. 요즘은 방학이라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반도선진화재단에 나와 연구하고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교육거품론을 꺼냈다. 아쉬운 점이 많은 것 같다.

“우리 교육은 빠른 양적 팽창과 더딘 질적 향상 간 불균형이 심하다. 교육 지출은 불어나는데 인적 자본 축적이 제대로 안 돼 부실한 공교육, 묻지마 사교육 같은 교육거품이 끼는 것이다. 특히 질 낮은 대학 난립은 가장 경계해야 할 거품인데 그런 대학으로의 과도한 진학이 부실한 고등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걸 바로잡으려 했었는데….”



-교육거품 해소가 잘 안 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 책임도 크다. 5년간 시도는 많이 했다. 우선 교육 다양화로 거품을 걷어내려고 했다. 마이스터고 등 특성화고 400개 육성과 대학별 특성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새 제도를 만들어 보급하는 데 역점을 뒀는데 지금 보니 답은 현장에 있더라. 특성화고보다도 질이 떨어지는 부실 대학도 있는데 계속 솎아내야 한다. 교육의 질과 학사 운영 등을 종합평가해 학생에게 피해만 주는 기준 미달 대학은 퇴출시켜야 한다. (제가 장관 때) 6곳을 퇴출시켰는데 최대 30개는 더 해야 한다. 고교 졸업자 수가 줄어든다고 모든 대학의 정원을 획일적으로 n분의 1씩 줄이려는 현 정부의 정책으론 답이 안 나온다. 애초 취지대로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를 통해 옥석 가리기를 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이 전 장관이 시행한 정책이 많이 바뀌었다. 같은 보수정권인데도 그러니 국민이 신뢰하겠는가.

“새 정부가 새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하다. 교육뿐만 아니라 녹색성장을 비롯한 경제정책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내 정책이 다음 정부에서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 것은 오산이더라. 공교육 강화를 위해 자율형고교, 입학사정관제, 방과후 학교, NEAT, 원어민 교사 등 여러 제도를 의욕적으로 만들었다. 전체의 80%는 유지되고 있지만 20%는 리버스(reverse)된 것 같다.”

그는 ‘뒤집혔다’는 의미의 리버스란 표현을 썼다. 실제로는 20%보다 훨씬 많이 리버스되고 있다. 예컨대 학교에 실용영어 바람을 불러왔던 초·중·고 원어민 교사는 현 정부에서는 예산이 축소돼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방과후 학교도 이 전 장관이 전국 모범사례 발표대회까지 여는 등 의욕적으로 밀어붙였지만 지금은 관심이 사그러들었다.





영어능력시험 NEAT 폐기 가장 아쉬워



-뒤집힌 정책 중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인가.

“(잠시 생각에 잠기며) 영어 개편이다. 나도 KDI에서 영어로 강의하는데 영어 못하면 정말 힘들다. 학생에게 영어 말하기·쓰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교육 당국의 책임이다. 그래서 NEAT 도입을 계기로 영어 수업 방식을 바꾸려 했다. 현 정부가 NEAT를 사실상 폐기하고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려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MB 정부는 2012년 실용영어 능력 향상 취지로 393억원을 투입해 NEAT를 도입했다. 개발·운영비로만 600여억원이 투입됐다. 일반인 대상 1급과 고교생용 2·3급 시험이 있었고 수능 영어 시험을 NEAT로 대체하려는 계획도 추진됐다. 현 정부는 사교육 부담을 우려해 올해 NEAT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해 사실상 폐기했다.



-본인도 이전 정부의 정책을 많이 뒤집지 않았나.

“평준화 교육을 표방한 노무현 정부는 학교 서열화를 이유로 교육 정보 공개를 금기시했다. 그걸 내가 뒤집었다. 당시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 교육계의 저항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별 학업성취도, 대학 진학률, 취업률 등을 지금은 누구나 볼 수 있지 않은가. 평준화는 유지하되 수월성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꾼 것이다. 자율형 공·사립고, 수능 선택형(AB형), 입학사정관제 등도 도입했다."

그는 특성화고나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뀐 입학사정관제, 창의인성 교육 등은 잘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입과 자사고 등 각종 정책이 오년소계(五年小計)도 안 된다고 지적하자 얼굴이 굳어졌다.





교육정책 급변, 정치적·구조적 문제



-교육정책이 정권에 따라 급변하는 것은 큰일 아닌가.

“정치적·구조적 문제다. 교육정책마저 정권의 5년 업적을 최대화하는 차원에서 추진하다 보니 일관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정치 탓으로만 돌려서도 안 된다. 정책 입안·시행의 구조적인 문제를 잘 따져봐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도록 교육 개혁의 추진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2015학년도 수능에서 문제 오류 등 혼란이 극심했다. 이 전 장관도 수능 AB형과 만점자 1% 정책을 실패하지 않았나.

“수능 AB형이 사실상 폐기됐는데, 수험생 부담 경감이라는 취지가 퇴색됐다는 점이 아쉽다. 최소 3년은 시행해 보고 판단했어도…. 수능 만점자 1% 정책도 애초 취지는 사교육 감소를 겨냥한 것인데 막상 그 비율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입시를 또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내 책임도 있고, 답답하다.”



-경험에 비춰볼 때 어떤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나.

“나도 부족했지만, 학교 현장부터 챙겨야 한다. 학교가 우수 인재를 길러내려면 학생 평가를 포함한 교사들의 교수법(pedagogy)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은 선다형 평가와 주입식 교육 중심이어서 변화에 둔감했다. 우선 수행평가를 보완해야 한다. 교사들이 양질의 수행평가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와 온라인 연수 프로그램을 웹 기반으로 제공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교사의 프로젝트 수업(PBL·Project-Based Learning) 역량을 강화하고 사범대 커리큘럼도 바꿔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 대입 제도를 점진적으로 일관되게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 총장을 포함한 대학 당사자·교사·전문가들이 국가협의체를 구성해 장기적인 개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 전 장관의 책임도 크다.

“나도 자성하고 있다. 우선 교육부가 주도하는 하향식(Top Down) 정책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상향식(Bottom Up) 개혁에 중점을 둬는 게 중요하다. 마이스터고는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정책은 중단되거나 축소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둘째, 교육정책은 엄밀한 데이터에 기반해 추진돼야 한다. 정보가 계속 공개되면 학계의 활발한 토론과 정책 제안이 이뤄지고, 정당에서도 대안이 공론화될 수 있다. 셋째,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 ‘뉴 플레이어(new player)’의 역할이 커지도록 해야 한다. 대학생이 초·중·고교생에게 교육 봉사를 하거나, 사회적 기업가가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교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탠퍼드처럼 혁신의 리더가 돼야



-친전교조 교육감과 정부와의 불협화음이 있다. 당시 서울 곽노현·경기 김상곤 교육감과는 관계가 어땠나.

“교육정책은 학생들만 바라보고 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대통령이나 교육감을 바라보고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것은 죄악이다. 학생들만 생각하는 정책이 답이다. 장관과 교육감은 좋은 교육을 어떻게 제공할까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파트너다. 나도 반성하지만 장관은 진영에 상관없이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장관 때 일을 많이 시켜 공무원들이 피곤해했다.

“장관은 지나가지만 공무원은 붙박이 집행자다. 공무원들 정말 우수하다. 문제는 폐쇄성이다. 조직이기주의를 타파하려면 부처 간 인력 교류와 민간 개방을 더 확대해야 한다. 공직의 개방성이 확장되면 공무원의 경쟁력도 커진다고 본다.”

그는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강의와 연구만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 아니라고 하기도 뭣하다”고 했다. 퇴임 후 현장 중심의 정책에 눈을 떠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위해 꼭 하고 싶은 제안은.

“대학의 역할이다. 대학이 혁신 생태계의 ‘중심지(central hub)’가 돼야 한다. 창조경제를 강조하지만 그 출발점도 따지고 보면 대학이다. 예를 들어 미국 스탠퍼드대는 학계·산업계·정부의 삼각 파트너의 중앙에 있다. 미국 정부가 군사전자 연구 등을 지원해 국방 기술력을 발전시켰고, 스탠퍼드는 이를 기반으로 자기공명·핵분열 연구를 발전시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스탠퍼드는 기술 혁신 클러스터인 실리콘밸리의 핵심 리더 역할도 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거품을 걷어내고 우리 대학이 가야 할 방향이다.”



양영유 기자 yangyy@joongang.co.kr



이주호1961년 대구 출생. 청구고와 서울대(국제경제학 학·석사)를 나와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로 재직하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 간사, 교육과학문화수석,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과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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