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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의 지금 웰빙가에선] 수퍼곡물보다 토종곡물이 좋은 이유

중앙일보 2015.02.14 16:54
“이젠 밥맛이 없어서 많이 먹지도 못해요. 요즘 우리 집 밥엔 쌀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거든요.”



비만치료를 위해 온 여고생이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찐 것 아니냐”고 핀잔하는 엄마에게 눈을 흘기며 했던 말이다. 렌틸·귀리·퀴노아를 섞은 현미밥인데 흰쌀의 비율은 20%도 안 된다고 여고생은 불평했다. 과거엔 쌀이 귀해서 잡곡을 먹었지만 요즘은 건강을 위해 잡곡을 즐기는 것이 대세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잡곡은 현미도 콩도 아닌 이름도 생소한 해외 곡물들이다.



내가 이런 곡물들을 접해본 것은 2년 전 미국연수 생활 때였다. 아이들의 외국인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렌틸수프란 말을 듣고서야 식료품 가게에 진열된 렌틸이 눈에 들어왔다. 곡식 중에 단백질이 꽤 많은 것이 퀴노아란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한국에서 먹어본 적은 없었다. 한인마트에서 산 현미가 다 떨어져 집 근처 식료품가게에서 현미 대용으로 밥에 섞어볼 것을 찾으며 임시방편으로 고른 것이 퀴노아였다. 미국에서 구하기 쉬운 것들을 한 번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몇 번 구입했다. 귀국해서 보니 한국에선 그 곡물들이 일명 수퍼곡물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의 식단에서 신경 써서 챙겨먹지 않으면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가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근육을 구성하는 주된 성분이다. 포만감을 주는 식품에 많이 함유돼 있어 체중조절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필수적인 영양소다. 쌀에도 단백질이 들어 있긴 하지만 7% 미만이라 고기·생선 등 고(高)단백 식품들과는 비교가 힘들다. 그러니 쌀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퀴노아가 주목 받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인의 식단은 서양과는 조금은 다른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무조건 이 열풍을 따를 필요는 없다.



서양인들은 샐러드를 한 끼 식사로도 먹는다. 큰 그릇에 계란이나 참치를 넣고, 단백질이 풍부한 곡물을 추가한 뒤 각종 채소와 버무려 배불리 먹는 것이 영양소의 균형이 잘 맞는 한 끼 식사일 것이다. 하지만 한식의 한 끼는 밥과 반찬을 따로 먹기에 밥에 부족한 영양소는 반찬으로 채울 수 있다. 각종 수입곡물을 섞은 밥에 고기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반찬, 거기에 영양제까지 복용하는 사람은 오히려 영양과잉이 될 수도 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의심도 많은 난 수입농산물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한국까지 신선한 상태로 들여오려면 어떤 처리 과정을 거쳤을지, 저렴한 가격으로 많이 판매되는 것들의 정확한 원산지는 어디일지 궁금하다. 최근 국내에서도 재배돼 생산된다는 수입 곡물들의 가격은 대중화되기엔 아직 너무 비싸다.



식이섬유나 각종 항산화물질이 많은 잡곡은 비만·변비·심혈관질환, 심지어는 암 발생의 위험성을 줄여줄 수 있다. 흰 쌀밥보다는 잡곡밥이 좋지만 굳이 비싼 수입 잡곡일 필요는 없다. 영양 측면으로 봐도 현미·보리·수수·조·팥·대두·서리태콩 등 토종(土種) 곡물들이 함유한 식이섬유·비타민B군·각종 항산화물질, 그리고 철분·칼륨·칼슘 등 미네랄의 함량은 수입곡물 못지않다. 게다가 원산지가 명확하고 수확하고 짧은 시간 내에 먹을 수 있으니 수입곡물에 비해 영양소도 더 잘 보전돼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치킨누들수프를 먹으며 한국의 닭칼국수와 삼계탕을 떠올리고, 랍스터보다는 한국의 대게와 꽂게가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 내 촌스러움 때문일까? 수입 곡물 예찬론엔 이의가 있다. 우리 땅에서 난 토종 곡물들이 섞인 밥에 제철음식들로 만든 반찬이 곁들어진 한국식 건강밥상에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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