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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개성 톡톡 ‘한복놀이단’의 설날 소망

중앙일보 2015.02.14 00:23 종합 11면 지면보기
“한복을 입을 때는 꼭 ‘치마+저고리=한 벌’이라는 공식을 지켜야 하나요? 캐주얼한 주름스커트에 한복 저고리를 입으면 왜 안 되죠?”(김민·23)


지하철? 파티장? … 한복 입고 확, 그냥, 막 놀기

 “남자들의 포(袍)를 여자가 입으면 안 되나요? 청바지·티셔츠에 포를 걸치면 활동도 편하고 개성도 돋보이는데.”(권미루·35)



 12일 중앙일보 사진스튜디오에 모인 ‘한복 놀이단’ 회원들이 쏟아낸 질문이다. 요약하자면 ‘왜 전통한복이라는 틀에 갇혀 있어야만 하느냐’는 얘기다. 이날 촬영은 설을 앞두고 한복 동호회 회원들과 ‘일상복으로서의 한복’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한복 놀이단’은 2030 젊은이들이 모여 ‘일상에서 한복 입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비영리 단체다. 한복이 좋아 한복을 입고 일상생활까지 한다는 회원들의 취미는 ‘한복 입고 놀기’다. 한복 입고 지하철을 타는 ‘지하철 플래시몹-꽃이 타는 지하철’, 서울 도심에서 한복 입고 파티를 즐기는 ‘한복가면무도회’ 등 이들이 주도한 행사는 언론과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전초희(25)씨는 “처음 한복을 입고 거리에 나섰을 때는 친구들조차도 ‘무당 같다’ ‘기생 같다’며 핀잔을 줬는데 점차 한복이 눈에 익숙해진 친구들은 ‘예쁘다’며 칭찬한다”고 말했다.



 



전초희씨는 청바지에 데님 소재 한복 저고리(김영진), 정혜선씨는 스펀지밥 문양의 저고리와 명주 치마(오인경), 김민씨는 두 겹의 시스루 저고리(이외희)에 미니스커트, 권미루씨는 민소매·검정 면바지에 철릭 원피스(김영진)를 매치시켰다(왼쪽부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개량한복? 패션한복!=한복을 대하는 젊은 층의 분위기에 변화가 생겼다. 요즘 유명 한복 디자이너들에겐 e메일과 전화 문의가 잦다. 외국 배낭여행을 떠나는데 한복을 협찬해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다. SNS의 발달이 낳은 새로운 유행이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때 나름의 독특함을 표현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한복을 선택하는 일이 늘었다. 한류 흐름과도 맞고 여행길에서 급하게 옷을 갖춰 입어야 할 경우 ‘한국의 고유 의상’이라는 설명은 더할 나위 없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전통한복이 아닌 현대화된 한복을 부를 때 ‘모던한복’ ‘패션한복’이라는 패션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도 큰 변화다. 대학생 김지현(23)씨는 “입고 싶을 만큼 예쁜 한복이 없다”고 했다. 한복의 대중화를 추구했던 ‘개량한복’ ‘생활한복’은 보편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다 보니 획일화되고 헐렁한 디자인이 대다수다. 이 때문에 보디라인을 살리고 싶은 20대로부터 “촌스럽다”고 외면당하는 게 현실이다. 그 틈새를 ‘모던한복’과 ‘패션한복’이 파고들었다.



 “한복도 옷(패션)이거든요. ‘독특하네, 멋있는 걸, 입고 싶은 걸’ 소리를 들을 만큼 예뻐야 눈길이 가죠.” 한복 브랜드 ‘차이’의 디자이너 김영진씨의 말이다.



  젊은 한복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모던한복의 콘셉트는 ‘일상 속의 옷’이다. 한복을 모티프로 하되 평상시에도 쉽고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한복의 단점을 개선하는 한편,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시선을 확 끈다는 점이 특징이다.



치마 길이를 짧게 하고 레이스 소재의 특성을 살려 미니 드레스를 만들었다(오인경). 오른쪽 사진은 바지 허리 말기를 겉으로 드러내고 짧은 저고리를 매치한 펑키 스타일(이외희).
 ◆남성 저고리를 여성이=남성용 저고리를 재해석한 ‘철릭 원피스’가 2030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예다. 철릭은 고려 말부터 조선까지 무관이 주로 입던 일종의 포다. 김영진씨가 이 남성용 전통한복의 깃을 없애고 허리 가운데 잔주름을 잡아넣어 여성용 원피스로 재해석한 후 시장에는 ‘짝퉁’까지 등장했다.



 올이 굵은 흰색 모직 소재로 만든 이외희 디자이너의 재킷 역시 남성용 저고리인 ‘소창의’를 응용한 것이다. 앞여밈에 고름 대신 옥 장식 호크를 달아 백자처럼 단아한 선을 살렸더니 커리어우먼들에게 인기가 좋다. 정장 스커트, 청바지, 레깅스 등 어떤 것과 받쳐 입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선 “‘넌 여자야’라는 틀을 벗어난 자유롭고 쿨한 느낌”(코코**), “ 저 옷은 나라도 입을 수 있겠다”(Vis**) 등 의견이 오가고 있다.



 ◆미국 캐릭터 활용=모던한복의 또 다른 특징은 소재와 문양의 다양성이다. 특히 서양 원단을 이용한 시도들이 눈에 띈다. ‘샤넬 원단’으로 불리는 트위드 소재는 물론이고 데님 등의 면, 리넨 소재가 자유롭게 쓰인다. 전통한복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양도 모던한복에선 거침없이 반영된다. 미국 만화 캐릭터 스펀지밥이 그려진 저고리(오인경)는 보는 순간 ‘아, 귀엽다’는 감탄사부터 먼저 나온다.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소재를 이용해 보디라인을 드러내는 디자인도 모던한복의 특징 중 하나다. 시스루 장 저고리와 가슴 아래 길이의 짧은 저고리를 겹쳐 입는 레이어드 스타일(이외희), 짧은 스커트나 레깅스를 입고 겉에 얇고 긴 시스루 치마를 덧대 입은 스타일(이정우)의 옷은 슬쩍슬쩍 소매를 들 때마다 은근히 살빛을 보여주던 한복의 아름다움을 조금 과감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경우다.



 ◆“전통한복에 대한 개념 넓어져야”=물론 이들이 말하는 ‘재해석’과 ‘독특한 옷’에는 위험요소도 많다. 지난달 25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63회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한 한국 대표 유예빈씨의 한복은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각국 미녀들이 전통의상을 선보이는 무대였는데 이날 유씨가 입은 궁중한복에는 만국기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옷입기의 재해석도 논란이다. 한복 놀이단 정혜선(19)양은 “ 우리 스타일대로 한복을 입고 나가면 ‘머리가 이게 뭐냐’ ‘한복에는 꽃신이지 운동화가 뭐냐’ 등 지적하는 어른들이 많아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직장인 이은명(40)씨의 의견은 달랐다. 이씨는 “ 한복을 매일 입는다는 건 현대인에게 불가능한 일”이라며 “일본이 성인식에 가장 좋은 기모노를 사서 정성껏 치장하고 갖춰 입듯 우리도 특별한 날 특별하게 입는 한복을 이왕이면 제대로 입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복 복식사를 연구해 온 최인순 한국황실문화갤러리 관장은 “옷은 시대를 말하는 도구라 흐름을 따라가는 게 맞지만 시스루 소재로 보디라인을 과하게 드러내거나 너무 파격적인 디자인은 한복의 품위와 미의 기준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전통과 개성의 균형감, 21세기 한복이 풀어야 할 숙제다.





[S BOX] 한복 입고 떼지어 인천공항 놀러갔다 쫓겨난 이유



[사진 이해경]
“아직도 한복을 보는 시선에는 많은 편견이 있어요.”



 이날 ‘한복 놀이단’ 인터뷰 중 ‘한복을 입고 다닐 때 기억나는 경험담’을 물었더니 의외로 불평이 쏟아졌다. 전초희씨는 “50명 정도가 한복을 차려입고 인천공항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공항 직원들이 출입을 막아서 당황했다”고 말했다. ‘행사 진행은 곤란하다’는 게 이유였다. 전씨는 “우리는 특정 행사를 하러 간 게 아니고 단지 놀러 갔을 뿐이에요. 평상복을 입고 공항에 놀러 가는 사람도 많은데 단지 한복을 입은 사람이 여러 명 나타났다고 특별하게 보고 입구부터 거절당하는 건 기분이 이상했다”고 했다.



권미루씨도 씁쓸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늦가을 솜을 넣은 패딩 치마에 장저고리를 입은 모던 한복 차림으로 창덕궁에 들어가려는데 매표소 직원들이 “이건 전통 한복이 아니다”며 한복 입은 방문객에게 제공하는 무료 입장 혜택을 거부했다. 권씨가 너무 억울해 “이것도 한복”이라며 계속 항의를 하자 “그러면 이번 한 번만”이라는 조건을 달고 겨우 입장을 시키더란다. 권씨는 “한복이 꼭 조선 시대 옷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한복도 신라·고려 시대마다 모양이 다른데 우리의 보편적인 시각에는 아직 ‘한복=조선 시대 옷’이라는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서정민·최신지 기자, 김현유 인턴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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