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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내리막길 재촉한 부가세 … 노무현 정부 궁지 몬 종부세

중앙일보 2015.02.14 00:09 종합 15면 지면보기
드디어 한국에서도 세금이 정치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 노선을 추구한 구미 선진국에선 세금 문제가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된 지 오래다. 반면 한국은 선거의 기본 프레임이 ‘지역 구도’로 짜였기 때문에 정책적 이슈의 파급력은 그에 비해선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내년 4월 20대 총선 땐 양상이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최근 연말정산 파문을 계기로 점화된 증세 논쟁이 내년 총선 결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정치권의 공통된 견해다.


[뉴스 속으로] 증세의 정치학
증세 따른 정치적 손실은 즉각적
복지 늘려 얻는 이득은 미지근
여당 ‘복지 축소안’ 저항 만만찮고
야당 법인세 증세는 경기 위축 우려
정치권 ‘무상 복지 시리즈’ 날리다
비용청구서 날아오자 허둥대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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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증세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7년 박정희 정권의 부가가치세 도입이다.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10% 부가세율은 당시로선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고, 억압적 통치 체제와 맞물려 민심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78년 10대 총선에서 여당인 공화당(31.7%)은 신민당(32.8%)보다 득표율에서 1.1%포인트 뒤지면서 유신 체제는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론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과거 퍼스트레이디 시절 지켜봤던 부가세의 아픈 기억 때문이란 관측도 있다.



 최근엔 노무현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 논란의 파장이 컸다.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국민대 김병준(정책학) 교수는 “상위 1% 계층에 대한 세금 인상이었는데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도 정부를 비판하고 나서 곤혹스러웠다”며 “심지어 종부세 도입으로 혜택을 보는 지방 사람들까지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조세 저항 심리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도 반대가 심했다”며 “종부세에 반대하던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나중에 한나라당 정권이 들어서자 거꾸로 증세를 주장하더라”고 꼬집었다. 한림대 김재한(정치학) 교수는 “조세제도 변경은 이득을 보는 계층과 손해를 보는 계층을 명확히 가를 때가 많다”며 “대외 정책 등 일반 정책은 거의 모든 국민이 지지하는 정책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조세 정책은 만장일치를 얻는 게 세금의 특성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세금 문제는 복지 이슈와 맞물릴 때 더욱 미묘해진다.



 세금을 더 내게 된 계층은 강력히 반발하지만 증세를 통해 신설된 복지의 혜택은 다수의 국민에게 엷게 배분되는 특성이 있다. 정치권의 시각에서 보면 증세에 따른 정치적 손실은 즉각적이지만 복지 확대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도 불확실하다. 그러다 보니 종부세의 경우처럼 소수의 강력한 반대가 발생했을 때 정부·여당이 증세를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다. 최근 연말정산 논란 과정에서도 조세 부담이 커진 중상위 소득 이상의 계층에선 큰 반발이 터져 나왔지만 소득공제가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게 된 저소득층에선 별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정치권은 복지 공약을 내놓더라도 그게 얼마큼의 조세 부담을 증가시키는지는 숨기기 마련이다. 유권자들도 장래의 세금 부담은 곰곰이 따져보지 않고 당장의 복지 공급부터 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공공선택학에선 ‘재정 환상(fiscal illusion)’이라고 부른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영신 박사는 “정부가 무상복지 같은 공공재를 제공할 경우 곧장 세금 증가가 뒤따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민은 이게 ‘지연된 조세(delayed tax)’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며 “일반 국민은 조세 비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정부의 공공 부문 지출을 과소평가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무상급식·무상보육·기초노령연금 등 굵직한 복지 정책을 도입할 때는 생각하지 않았던 ‘비용 청구서’가 날아오자 정치권이 허둥대고 있다. 이대로 놔두면 재정적자의 폭이 해마다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세입·세출 구조에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여야 모두 똑같다. 다만 처방전은 여야가 다르고, 각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여권은 대체로 ‘증세’보단 ‘무상복지 감축’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세수 확대를 위해선 세율 인상이 아니라 경제 활성화가 우선이라는 시각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10일 “야당에서 법인세를 올리자고 난리인데 법인세가 왜 적게 들어오겠느냐”며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세금이 적어졌는데 거기에 세금 더 내라고 하면 사업 하는 사람들 죽으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권 개혁 블록에선 “법인세도 증세의 성역이 될 순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향후 치열한 당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법인세 인상에 올인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10일 타운홀 미팅에서 “턱없이 낮은 대기업의 조세 부담을 끌어올려 전체 복지 수준을 중복지 수준으로 만들겠다”며 “정부가 서민 증세, 가난한 봉급쟁이의 유리 지갑을 터는 일은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명박 정부 시절 25%에서 22%로 낮춰진 법인세율을 다시 25%로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고 당 차원에서 요구하고 있다. 또 과표구간 1억5000만~3억원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 소득세율을 40~45%로 올리는 세법개정안을 민병두·최재성 의원 등이 발의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은 모두 딜레마에 빠져 있다. 새누리당은 복지 부문 재조정을 추진하려 하지만 이게 만만치 않다. 한 번 늘어난 복지 비용을 다시 줄이려면 엄청난 반발이 터져 나온다는 건 최근 그리스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공공 부문에 대한 지출이 발생하면 계속 이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끈끈이 효과(flypaper effect)’라는 용어도 있다.



 새정치연합은 한국만 법인세를 올릴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반대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설령 법인세율을 25%로 올려도 증가하는 세수는 5조원가량인데 지난해 재정적자는 11조원이다. 고소득자 최고세율을 올려도 더 걷히는 세금은 1조원도 안 된다. 김병준 교수는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고소득층은 물론 중간 계층도 세금 부담이 적다. 결국 현행 복지 제도를 지속하려면 중간 계층도 세금을 더 내야만 하는데 선거를 앞두고 어떤 당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정치권에서 보편적 증세를 거론하는 곳은 정의당 정도다.



 민심은 복합적이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7~30일 ‘증세냐 복지 축소냐’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증세를 하지 않고 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46.8%로 ‘복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의견(34.5%)보다 높았다. 새누리당의 입장과 비슷하다. 그러나 법인세 인상에 대한 의견을 묻자 ‘세수가 부족하니 올려야 한다’(52.8%)가 ‘경제에 부담이 되므로 올리지 말아야 한다’(22.9%)보다 훨씬 많았다. 새정치연합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세청장을 지낸 이용섭 전 새정치연합 의원은 “국민은 자기 세금 부담이 늘어난 것보다 불공평한 세금에 더 큰 조세 저항을 하기 때문에 조세 공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증세를 해야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하·정종문 기자 wormhole@joongang.co.kr



[S BOX] 증세의 저주 … 연방부가세 도입한 캐나다 보수당 169석 → 2석



왼쪽부터 다케시타 노보루, 브라이언 멀로니, 마거릿 대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심은 ‘세금’에 민감하다. 미국의 독립전쟁도 영국에 대한 ‘조세 저항’에서 시작됐다. 1773년 영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과하려던 차 세금(Tea tax)에 반대해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 당시, 시민들은 “대표 없이는 조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고 외쳤다. 이 운동은 훗날 독립전쟁으로 번졌다.



 ‘증세’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다. 일본의 경우 자민당의 패배 뒤엔 늘 ‘증세’가 자리 잡고 있다. 자민당 창당 이래 처음으로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한 1989년 참의원 선거가 대표적이다. 88년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정권이 만든 ‘대형간접세’(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3~5% 부가가치세 부과)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자민당은 126석 중 36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반면 대형간접세를 공격한 사회당은 46석을 차지했다. 이를 잘 아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해 말 “소비세율 인상을 18개월 뒤로 연기하겠다”고 밝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캐나다의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는 세금으로 가장 처절하게 몰락한 사례로 꼽힌다. 멀로니가 이끈 보수당은 84년 211석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93년 선거에서 169석의 보수당은 단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선거를 앞두고 도입한 ‘연방부가세’가 패배의 핵심 요인이었다. 보수당은 2006년 1월 스티븐 하퍼 총리가 연방부가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13년 만에 겨우 재집권할 수 있었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도 세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처는 90년 집의 명목 임대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던 방식에서 ‘성인 거주자 개개인에게 동일한 세금을 물리는 방식(인두세·Poll tax)’으로 바꿨다. 그러자 당 내외에서 거센 반발이 몰아쳤다. 같은 해 3월 시민 3만5000명이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인두세 도입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며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까지 몰려가는 최악의 폭동이 벌어졌다. 대처 총리는 그해 11월 보수당 당수 선거에서 당내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사임했다. 대처가 도입한 인두세는 92년 종전 방식인 지방정부세로 돌아왔다.  



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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