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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쓰고 철모 쓰고 … 전장 뛰어든 한국인 저널리스트들

중앙일보 2015.02.14 00:07 종합 16면 지면보기



[세계 속으로] 목숨 건 취재, 또 다른 ‘겐지’





일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 그는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나의 책임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시리아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시리아로 들어갔다. 그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희생됐다. ‘나는 겐지다’를 외치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진다. 분쟁지역의 참사를 세상에 전하는 한국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도 있다. 그들도 ‘겐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쟁의 민낯을 기록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전쟁 속 사람을 위해.



김상훈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는 쪼들린다. 자유로움을 선택한 대신 비정규직보다 못한 처우를 감수한다. 늘 금전과 신분 문제로 고민한다. 프리랜서 사진가 김상훈(44)씨는 “대부분의 프리랜서들은 자비를 들여 취재를 한다”고 했다. 그는 “언론사들도 분쟁지역의 기사를 원하지만 사고 가능성 때문에 기자를 분쟁지역에 파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분쟁지역 전문 김영미(46) PD는 15년차 베테랑이다. 그는 집이 없다. 재산에 집착하면 취재비가 줄고, 이는 질 떨어지는 취재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분쟁지역 물가는 살인적”이라며 “보통 한 달 기준으로 중동이나 아프리카 취재에는 4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그는 “호텔 숙박비가 하루 평균 300달러는 기본”이라며 “차량과 코디, 무장 경호 등 인건비로 매일 1000달러를 쓰는 게 보통”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식사는 꿈도 못 꾼다. 하지만 인건비를 줄일 수는 없다. 김 PD는 현지 코디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경험이 있다. 그는 “이집트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 선두에 선 사람들이 순식간에 쓰러지는 모습을 봤다. 이들은 대부분 사망했다”며 “수백 명의 사상자가 한꺼번에 발생하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다리가 안 움직이더라. 코디가 나를 업고 다른 건물로 피해 위기를 모면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45)씨의 생활도 녹록지 않다. 4대 보험도, 퇴직금도 없다. 고용이 불안정하다 보니 개인의 삶은 피폐해졌다. 참혹한 현장 취재는 정신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3년여 전에는 공황장애와 우울증,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그는 “IS에 살해당한 저널리스트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들이 꼭 내 처지인 것 같았다”며 “처참했다”고 말한다.



 전장의 저널리스트. 그들은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고 산다. 다양한 위험이 존재하는 분쟁지역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영미 PD는 검은색 시체가방의 악몽에 시달린다. 김 PD는 “2008년 이라크 취재 당시 미군 스트라이커 장갑차 부대와 함께 이동했었다”며 “스트라이커는 늘 격전지 선두에 선다. 장갑차 안의 검은색 시체가방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수퍼에서 주는 검은 비닐봉지도 싫어하게 됐다. 김상훈씨에겐 굉음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비행기 소리를 들으면 의지와 상관없이 손에 땀이 난다. 폭격이 심했던 이스라엘-레바논 현장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분쟁지역을 떠나지 못한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그 시간이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것이 그곳에 있다”(사진가 김상훈), “국민의 알 권리에 문제가 생긴다. 한 명만이라도 그곳에 있으면 된다”(김영미 PD), “강대국의 시각이 아닌 우리 시각의 기록이 필요하다”(정은진 포토저널리스트). 기록에 대한 그들의 강박이 두려움을 눌렀다.



 “공기에서도 살기(殺氣)가 느껴진다.” 분쟁지역에선 사람이 고의로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기회를 노린다. 총탄이 스쳐 지나가면 오히려 살았다는 안도감이 드는 곳. 김상훈씨는 분쟁지역을 “참혹하고 소름 끼치는 곳”이라고 했다.



 김씨는 레바논·팔레스타인·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분쟁지역을 누볐다. 지난해엔 한국인 사진가로는 유일하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을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으로 꼽는다. 48시간. 짧은 정전(停戰) 기간 포격에 고립된 레바논 주민을 취재하러 국경지역 마을을 찾았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건물 잔해 속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시체들이 썩는 냄새였다. 전쟁 개시 후 21일간 지하실에 숨어 포격을 피한 주민들이 취재진을 보고 몰려나왔다. 그는 “몇 대 안 되는 취재차량에 피란민을 싣고 나왔다”며 “국경지대를 빠져나오자 폭격이 시작됐다. 남은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전쟁이 일상인 곳에선 늘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 지구에선 2200여 명이 사망했다. 이 가운데 민간인이 70%였다. 무고한 죽음의 목격은 고통 그 자체다. 김씨는 “매일 너무 많은 이의 죽음과 유가족을 접하느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며 “특히 가족 단위로 피신해 있던 난민캠프에 포탄이 떨어진 현장은 더 참담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분쟁지역 생활은 위기의 연속이다. 국가 기능이 상실된 곳엔 룰이 없다. 김영미 PD는 소말리아에서 피랍됐다. 2006년 동원호 납치 사건 취재 당시 경비를 아끼기 위해 육로로 이동한 것이 화근이었다. 밀림에서 무장 강도와 맞닥뜨렸다. 죽음의 공포가 찾아왔다. 김 PD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운 좋게도 잡혔던 마을 원로와 협의를 해 가진 돈을 모두 주고 풀려날 수 있었다”며 “큰 경험이 됐다. 그 후 내 안전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위험에 대비한다”고 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운명의 현장으로 기억한다. 6·25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김 PD는 “한국이 지나왔던 역사의 현장을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것 같았다”며 “그들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것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했다.



 역사는 승자와 강대국 출신의 기록이다. 정은진씨는 분쟁지역에서 약자의 역사를 기록한다. 특히 전시 여성 인권에 주목한다. 그는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바꾼다기보다 사람들이 바뀔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며 “약자의 심부름꾼이라는 일념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콩고와 아프가니스탄 등 국제분쟁 현장 여성의 열악한 성(性)인권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산모 사망률을 다룬 포토 스토리는 프랑스의 세계적 보도사진전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에서 CARE상 그랑프리와 일본 Days Japan 보도사진 1위를 기록했다. 그는 또 콩고의 성폭력 현실을 고발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정씨는 비행기 공포증과 고소공포증을 안고 산다. 그러나 억울한 약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11년째 분쟁지역을 찾고 있다.



 그들의 시선은 지금 이 순간도 분쟁 현장의 최전선, 프런트 라인을 향해 있다.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 겐지처럼. 겐지의 어머니 이시도 준코는 “아들의 죽음으로 증오의 사슬이 만들어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분쟁과 가난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려 한 겐지처럼.



사진 설명



사진 1
김영미 PD는 2007년 3월부터 석 달간 아프가니스탄 파르완에 머물렀다. 미군 산악부대의 오사마 빈 라덴 수색 작전 동행 취재 현장. [사진 김영미]



사진 2 정은진씨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다흐샨 주에서 산모 사망률을 취재했다. 당시 이 지역 경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 정은진]



사진 3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받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도심 곳곳에서 검붉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 김상훈]





[S BOX] 시리아는 언론인의 무덤 … 3년간 79명 피살



시리아가 언론인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로 꼽혔다. 시리아에선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국제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지난해 분쟁 지역 취재 중 사망한 언론인 61명 가운데 17명이 시리아에서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는 3년 연속 피살 언론인 수가 가장 많은 국가다. 2011년 내전 발생 이후 79명의 언론인이 시리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리아는 특히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의한 언론인 납치·살해로 악명이 높다. IS는 지난해 미국의 제임스 폴리, 스티븐 소트로프 기자를 참수하는 장면을 온라인으로 공개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달 초엔 일본인 독립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를 살해했다.



 CPJ는 “유례없는 납치 범죄와 전투·포화로 인해 시리아에서 언론인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며 “피랍 언론인 가족 등이 석방 협상 등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는 경우가 있어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PD는 “시리아는 이제 기자들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시리아로 들어간 기자들은 죽을 수 있다는 운명을 알고 가는 것이다. 그래도 들어가는 이유는 기자라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했다.



 1992년 CPJ가 언론인 피살자 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시리아는 이라크에 이어 둘째로 피살 언론인이 많은 나라로 기록됐다. 현재까지 살해된 언론인 절반가량은 중동 지역에서 변을 당했으며 그들 중 39%는 교전 취재 중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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