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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론조사로 총리 인준 결정할 거면 인사청문회는 왜 했나

중앙일보 2015.02.14 00:04 종합 26면 지면보기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가 어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자진사퇴를 요구해오다 여야 합의로 오는 16일 인준안을 처리키로 하자 별안간 여론조사 방법을 들고나왔다.



 총리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제안은 제1야당 대표라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인지 귀를 의심할 만큼 해괴한 내용이다. 우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인사청문회 제도를 무시한 발상이다. 2000년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이래 숱한 후보자들이 검증대에 올랐지만 여론조사로 인준 여부가 결정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병역 문제 등이 불거진 경우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되거나 여론의 부담을 느껴 후보자 스스로 자진사퇴하는 방법을 택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자질과 도덕성 검증을 통해 자격을 갖춘 사람을 선별하자는 게 인사 청문 제도의 취지고 지금껏 그렇게 운영돼왔다. 그런데 후보자에게 문제가 많으니 자진사퇴하든지 아니면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뚱딴지같은 제안을 내놓는 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의회정치를 부정하는 비민주적 발상이다. 이러려면 이틀에 걸친 청문회는 왜 했으며 국회는 왜 존재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표는 여론조사를 주장하면서 “여당 단독처리는 국민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란 이유를 댔다. 하지만 여당 단독처리의 모양새가 되지 않게 하려면 야당이 떳떳하게 본회의에 들어가 반대표를 던지면 된다. 야당 내에선 새누리당이 158석을 점하고 있는 현재 의석 분포상 정상적인 표 대결이 이뤄질 경우 이 후보자의 인준이 가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고 엄연한 현실인 ‘수(數)의 열세’를 인정하지 않고 꼼수를 부리는 건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야당이 ‘불가(不可)’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표결 전에 집단 퇴장하거나 아예 표결에 불참하는 것도 강력한 반대 수단이다. 아니면 표결에 앞서 반대토론이나 의사진행발언 등을 통해 반대 이유를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국민들한테 설명할 수도 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시중 여론은 좋지 않다. 한국갤럽의 조사(10~12일)에 따르면 이 후보자에 대한 긍정 여론은 29%인 데 반해 부정적 시각은 41%에 달했다. 문 대표는 반대표를 던지거나 표결에 불참할 경우 자칫 충청권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지만 여론조사로 결정하면 자신의 책임이 희석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요 무책임 정치의 극치다. 문 대표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비상식적인 여론조사 제안을 하루빨리 거둬들이고 여야 합의정신을 존중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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