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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다재다능한 채플린, 할리우드에서 쫓겨나다

중앙일보 2015.02.14 00:03 종합 19면 지면보기
영화 ‘라임라이트’ 촬영장 분장실에서 함께한 찰리 채플린(오른쪽)과 버스터 키턴. 이 영화는 초창기 할리우드를 주름잡았던 두 희극 배우가 함께 출연한 유일한 작품이다. [사진 2014 The Roy Export Company Establishment]


채플린의 풋라이트

찰리 채플린·

데이비드 로빈슨 지음

이종인 옮김, 시공사

524쪽, 2만8000원




“코미디언이라기보다 예술가였다.” 영화 ‘라임라이트’(1952)의 주인공인 퇴물 배우 칼베로를 찰리 채플린은 이렇게 표현했다. 실은 그도 그랬다. 채플린은 단순한 희극배우가 아니었다. 예술가, 그것도 아주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제대로 학교를 다닌 적도 없었고, 악보를 읽을 줄도 몰랐지만 출연작 대부분을 직접 연출하고 각본·음악·안무까지 도맡곤 했다.



 영국의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로빈슨은 이 천재적 예술가의 작업방식을 진기한 자료와 함께 복원해 냈다. 이 책을 통해 그 전문이 처음 공개되는 중편소설 ‘풋라이트’다. 채플린은 1948년 비서에게 구술한 이 소설을 바탕으로 3년 뒤 영화 ‘라임라이트’를 완성했다. 등장인물에 대한 풍부한 상상에서 출발해 이를 영화로 정제·가공하는 채플린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이, 그리고 영화 ‘라임라이트’가 주목을 끄는 건 채플린의 수많은 작품 중에도 가장 자전적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채플린의 부모는 뮤직홀이라고 불리던 영국 대중공연장에서 활동하던 배우였다. 헌데 술독에 빠진 아버지는 일찍 가족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정신병을 앓았다. 어린 채플린은 지독한 가난 속에 자랐다. 부모가 물려준 것이라곤 ‘끼’가 전부였다. 채플린은 아홉 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무대에 섰다.



 이런 그가 환갑을 넘긴 나이에 내놓은 ‘라임라이트’는 채플린이 성장기를 보냈던 과거 뮤직홀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한때는 관객을 배꼽 잡게 했지만 이제는 술 없이 무대에 못서는 늙은 배우 칼베로(찰리 채플린), 자살을 시도했다가 칼베로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하는 젊은 발레리나 테리(클레어 블룸)의 모습에서 채플린의 부모나 당대 뮤직홀 배우들의 면면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앞서 전기 『채플린: 거장의 생애와 예술』을 펴냈던 저자 데이비드 로빈슨은 ‘풋라이트’를 비롯해 ‘라임라이트’의 바탕이 된 여러 메모와 이 영화의 제작과정, 그리고 극 중 배경인 1910년대 런던 뮤직홀들의 면면을 풍부한 시각자료를 곁들여 소개한다. 채플린이 무용수 얘기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 실은 20대 때부터라고 추적한 점도 흥미롭다. 동년배 발레리노 바츨라프 니진스키를 만났을 때 받은 강렬한 인상이 그 단초가 됐다는 설명이다.



 ‘라임라이트’는 채플린의 마지막 할리우드 영화다. 채플린은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이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 직후, FBI로부터 사실상의 추방조치를 당했다. 그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기 시작한 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스위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채플린이 다시 미국을 잠시 찾은 것도, ‘라임라이트’가 미국에서 처음 개봉한 것도 그로부터 20년 뒤였다. 1952년 만들어진 이 영화가 70년대 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것도 그래서다.





[S BOX] 채플린과 키턴 … 두 희극 천재의 엇갈린 운명



버스터 키턴(1895~1966)은 찰리 채플린(1889~1977)과 함께 초창기 할리우드를 주름잡았던 또 한 명의 희극 천재다. 채플린이 무성영화에서 출발해 유성영화 시대에도 재능을 활짝 꽃피운 것과 달리 키턴의 이력은 내리막을 걸었다.



 ‘라임라이트’의 마지막에는 키턴과 채플린이 함께 공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칼베르가 뮤직홀에서 생애 마지막 공연을 펼칠 때 예전 파트너 역할로 함께 나오는 배우가 바로 키턴이다. 채플린은 당시 키턴이 돈에 쪼들린다는 얘기를 듣고 이 역할을 맡겼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오해였다. 당시 키턴은 TV출연으로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는 게 데이비드 로빈슨의 설명이다. 어찌됐건 ‘라임라이트’는 전설적인 두 희극 배우가 함께 출연한 유일한 작품으로 남게 됐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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