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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발을 씻으며

중앙일보 2015.02.14 00:02 종합 24면 지면보기
정영목
번역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어렸을 때는 저녁이 오면 시멘트가 덮인 조그만 마당에 세숫대야를 놓고 앉아 얼굴을 씻은 다음 발까지 씻고 나서 목에 걸고 나온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뒤 비누로 뿌옇게 흐려진 물을 눈곱만 한 꽃밭에 뿌려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마 어른들이 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배운 것이었겠지만, 내 몸의 청결 정도는 스스로 건사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더불어 나에게도 이제 씻어버릴 하루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언제부터 나에게서 이 습관이 사라졌을까? 아마도 샤워를 하게 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래서 더 청결해졌을지는 모르겠으나, 편리함과 게으름 때문에 언제부턴가 내 손으로 내 발을 씻지는 않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저녁에 앉아서 천천히 발을 씻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이제 하루 일과는 끝나고 또 다른 시간에 들어선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라졌던 이 습관이 다시 돌아왔다. 예전처럼 세숫대야에 발을 담그는 것은 아니고 욕조에 걸터앉아 샤워기로 물을 뿌리며 씻는 것이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내 발을 문지른다. 이렇게 된 것은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발을 씻는 모습을 보고 나서다.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에 나오는 짧은 시퀀스에서였다.



 저녁상을 차렸지만 내려오지 않는 아내를 남편이 부르러 올라갔을 때 아내는 욕조에 걸터앉아 발을 씻고 있다. 간신히 우울증에서 빠져나온 아내는 동료들을 설득하면 병 때문에 해고당한 회사에 복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지만,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움츠러들고 있다. 그래서 저녁도 거르고 자기 속에 파묻힐 생각인데 그 전에 발을 씻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설득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발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까지 깨끗이 닦아낸다.



 이 발 씻기는 이 여자가 사는 방식, 아니 죽는 방식이다. 이 여자는 얼마 후 다시 절망에 빠져 죽기로 마음먹은 뒤에도 먼저 아이들 방을 정리한다. 침대를 꼼꼼히 정돈해 주고 방을 나오다 여자는 다시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간다. 막 스쳐 지나온 쓰레기를 주우러 다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죽기 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듯이.



 다르덴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일상적 군더더기, 영화의 흐름을 비집고 나온 작고 단단한 혹 같은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도 그렇다. 마지막 대목에서 소년은 생사의 고비를 넘고서도 오로지 새로운 가족과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양 좌고우면하지 않고 무심한 표정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어두운 골목을 향해 들어가기 직전 큰길을 건널 때 습관대로 잠깐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차가 오는지 살핀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이 흘러나오는 숨이 멎을 듯 숭고한 시퀀스를 찢은 이 일상의 생채기는 작지만 몹시 아프다.



 이렇게 섬세한 실로 직조된 일상을 바탕으로 삼지만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과격하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한 여성 노동자의 복직 문제가 표면적 사건인데, 이 여자가 타인의 지원을 호소하는 순간 아들은 아버지에게 주먹질을 하고 미래를 설계하던 부부는 헤어진다. 발 씻기에서 시작된 그녀의 영향이 실핏줄을 타고 흐르듯 타인의 일상으로 흘러 들어가, 그런 일상 위에 축조된 관계, 너무나 당연시되던 가족, 부부 같은 관계가 휘청거린다. ‘자전거를 탄 소년’에서도 평범하게 살아가던 여자는 연인이 아니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문제아를 선택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룬다. 이렇게 인간들의 새로운 관계와 질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급진적이며, 그 급진성이 일상의 말단까지 스며들어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이다. 일상의 지속에서, 혹은 균열에서 인류의 미래가 잉태되는 과정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발을 씻으면서 감히 인류의 미래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울적한 일이 겹겹이 쌓인 날에도 하루를 마감해 줄 일상의 작은 닻이 하나 생긴 것이 고마울 뿐이다. 내일은 어찌 될지언정 오늘은 이렇게 밤까지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정영목 번역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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