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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 쇼는 계속돼야 한다?

중앙일보 2015.02.14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옛말 틀린 거 없다? 아니 많다. 아주 많다. 특히 성현들 말씀이 그렇다. 공자의 대표 명언부터 틀렸다. 나이 마흔이면 흔들림이 없고(不惑), 일흔이면 내키는 대로 살아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고 했지만 어디 그런가. 마흔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못 봤고, 일흔을 넘기고도 도 넘는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이 도처에 널렸다.



 외람되지만 공자 자신도 그랬다. 반란을 일으킨 대부 필힐의 초청에 응하려다 제자 자로에게 한 소리 듣는다. “군자는 나쁜 짓 한 사람 집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셔놓고 모반자를 도우러 가신다니 무슨 경웁니까?” 정곡을 찔린 공자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가 박처럼 매달려 있기만 하고 먹히지 않으면 좋겠느냐?”



 상식이 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도 그렇다. 자기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집안을 돌볼 수 있고, 그런 연후에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지만 순서가 틀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몸 닦는 게 가장 어렵다. 수신제가를 이룬 사람들만 치국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세상이 이처럼 소란할 리 없다.



 제국을 이룬 나폴레옹도 수신과는 거리가 있었다. 역사 속 제왕과 온갖 나라 대통령·총리를 살펴봐도 대개 그렇다. 수신에 성공한 사람을 찾으려면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이들부터 보는 게 빠르다. 수신을 제대로 하려면 차릴 게 너무 많아 약빠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까닭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척해서 가능한 게 우리네 인사청문회다. 치국할 사람이 필요한데 수신한 사람을 찾는다. 그런데 없으니 불가항력 난장판이다. 신상 털기와 감싸 안기의 불꽃이 튀고, 망신 주기와 두남두기의 경연장이 된다. 수신을 덜하고 더하고가 기준이 되지도 않는다. 통과냐 낙마냐는 운수때기요 팔자소관이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블랙코미디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건 국민이다. 이런 쇼가 계속돼야 하는 걸까. 쇼 하는 선량들도 쇼 하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는 걸까.



 그저 시늉하자는 거다. 공수(攻守)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하는 척하는 거다. 이렇게 화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이번에 준 만큼 다음에 내놓으라는 메시지는 공격 측의 프리미엄이다. 적당히 화풀이 들어주고 적당히 구색 갖춰 실리 얻는 건 수비 측의 최선 전략이다. 그렇게 시늉하자는 거다. 그게 가능한 건 자리가 별 볼일 없는 까닭이다. 문고리 권력보다 힘 없는 장관 청문회가 소란하고, 가장 실권 없는 총리의 청문회 통과가 가장 어려운 게 다른 이유가 아니다.



 요란한 빈 수레 끌기가 끝나고, 이 나라 백성은 또 한번 눈높이에 못 미치는 총리를 갖게 될 모양이다. 자식뻘 ‘초짜’ 기자들 앞에서 늘어놓은 장광허풍만으로도 그의 그릇을 짐작할 수 있을진대, 의혹 종합세트가 만든 생채기와 잔금들이 그 작은 종지를 가득 채웠다. 물 한 사발 긷기도 어려워졌지만 어쨌든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으니 좋고, 야당은 다루기 쉬워서 좋으며 대통령은 자기 권력 넘볼 위험 작아졌으니 좋다.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다. 국민만 빼고 말이다.



 국민이 그걸 모르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정부가 우민정책(愚民政策)을 취하면 백성들은 우군정책(愚君政策)으로 맞선다. 중국 사상가 루쉰(魯迅)의 말이다. 그는 『화개집속편』에서 늙은 하녀의 입을 빌려 말한다. “황제에게 시금치를 주면 화를 내. 값싼 물건이니까. 그래서 시금치를 ‘붉은 부리 파란 앵무새’라고 하는 거야. 우리 고향 시금치 뿌리가 아주 빨개 앵무새 부리 같거든.”



 위정자들이 하는 척하면 백성들 역시 하는 척할 뿐이란 말이다. 그 사이 국민의 진이 빠지고 나라의 맥이 떨어진다. 이제 그 허위와 가식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다. 이런 식의 청문회라면 없는 게 낫다는 말이다. 최소한 이런 허무를 위해 국민적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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