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호스피스 제도화, 더는 늦출 수 없다

중앙일보 2015.02.14 00:02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2주일 전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료 개편을 미룬다고 했다가 엿새 만에 번복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의 보고서까지 나온 터에 오락가락했다. 기획단은 ‘저소득 지역 가입자 602만 가구의 부담 경감, 고소득 직장 가입자와 피부양자 45만 명의 부담 증액’ 방안을 제시한 걸로 알려졌다.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은 이쯤에서 정리돼야 한다.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 속에서 공평 과세 실현, 예산 집행 효율화 등과 맞물려 쉽지 않다. 주무부처는 이래저래 더 버거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정치적인 논쟁과 갈팡질팡은 국정에 대한 총체적 신뢰를 떨어뜨린다.



 그런 가운데 복지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중기 계획’을 발표했다. 7조원을 투입, 출생부터 사망까지 32개 항목의 환자 부담을 줄인다는 내용이다. 17대 국회에서 고령화 TF단장을 맡았던 적이 있어, 임종을 앞둔 노인과 말기암 환자의 건보 혜택이 늘어난다는 대목이 눈에 쏙 들어왔다.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호스피스(hospice, 말기 환자용 병원)와 통증 완화 의료비에 올 하반기부터는 건보가 적용된다고 한다. 항암제 투여 등 연명 치료는 줄고 통증 치료 받기가 쉬워진다고 한다.



 유엔은 2002년 ‘마드리드 노인 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급속한 고령화를 우려하며 지구촌의 ‘시한폭탄’이라 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가장 빠르다. 2014년 고령(65세 이상) 비율이 13%, 12년 뒤엔 20%의 초고령 사회가 된다. 농촌의 3분의 2는 이미 그렇게 됐다.



 고령 사회 웰빙(well being)은 웰다잉(well dying)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한국인에게는 웰다잉이 더욱 절실하다. 아프면서 오래 살기 때문이다. 2012년 기준 60세 남성은 22년, 여성은 27년을 더 살 것이라는데(통계청), 그 여명(餘命)에서 십여 년을 아프다가 간다. 선진국은 6년인데, 우리는 두 배다.



 진료비 통계가 말해준다. 2013년 고령층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50조7426억원)의 35%, 사망 원인은 암·뇌혈관 질환·심장 질환·폐렴 등의 순이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말기 판정에도 불구하고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 연명 의료를 받는 환자는 갈수록 늘어 간다. 가족이 병 수발로 겪는 정신적·경제적 고통은 마침내 비참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빈곤이 심각하다. 2013년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중위 소득의 50% 미만 인구)은 48%로 전체 값의 3.3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60세 이상의 자살률이 최고다.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평가에서 40개국 중 32위다(Economist Intelligence Unit, 2010). 존엄스러운 삶의 마무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설문조사(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에서 고령자는 단연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꼽았고, ‘무의미한 치료 중단’ ‘품위 있는 죽음’을 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 여러 나라가 말기 환자의 웰다잉과 가족의 고통 경감을 위해 호스피스를 제도화하고 있다. 우리 국회는 1998년부터 법안을 다루기 시작했다. 정부는 2002년 호스피스 법제화 추진을 선언, 시범사업도 하고 암 관리법도 제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27억원으로 54개 기관을 지원한 수준이다. 제도가 미비하다 보니, 의료기관에 호스피스는 적자 운영의 기피 시설이다. 2013년에는 정부의 호스피스 병상 목표치가 당초의 2500개에서 1400개로 되레 줄었다.



 한국의 호스피스 이용자는 암 사망에 한(限)해 13%다. 미국은 전체 사망자의 45%가 호스피스를 거친다. 의술적·제도적 인프라가 구축됐기 때문이다. 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 때부터의 전통을 계승해 11월을 ‘호스피스 달’(Hospice Month Day)로 지정했다. 캐나다는 인터넷 캠페인, 대만은 호스피스 애니메이션 캠페인을 한다.



 때마침 국내 한 다큐버스터(흥행 돌풍 다큐멘터리)가 관심을 끌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죽음을 담담하게 그려낸 ‘목숨’이다. 웰다잉이 제도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 연명 의료 등에 대한 논란을 매듭짓고 ‘죽음의 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시민의식을 발휘할 때다.



 이번 국회에서 호스피스 법안 제정이 재추진되고 있다. 결실을 거두기를 기대한다. 정책의 통합적 추진도 핵심 과제다. 복지부의 경우 업무가 말기암 환자 완화 의료, 장례 지원, 연명 의료 법안, 의료 수가, 장기요양보험 담당 등 다섯 개 과로 분산돼 있다. 이들 사이의 총괄 조정은 물론 허투루 쓰이는 비용도 줄여야 한다. 관련 연구개발사업도 AT(Aging Technology)로 종합해 예산 투입 대비 성과를 높여야 한다. ‘시한폭탄’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