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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꾸중을 … 명사들 인생에 새겨진 시 한줄

중앙일보 2015.02.14 00:01 종합 18면 지면보기
노석미, ‘Monday face’, 2008. [그림 중앙북스]


나를 흔든 시 한 줄

정재숙 엮음, 중앙북스

244쪽, 1만2000원






한 줄 시의 힘은 참말로 세다. 시인 최영미의 말을 빌어 설명하자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문학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짧은 시어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를 흔들 만큼 강렬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본지 오피니언면에 실린 사연을 묶은 것이다. 우리 사회 각계 명사가 고른 시편 55개가 빛난다. 시인 55명의 삶이 응축돼 있다. 시(삶)를 고른 명사의 이야기도 곁들여져 있다. 한 줄 시가 어떻게 다가왔는지 따라가다 보니 시와 시인과 명사의 인연이 교류하며 우리네 사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러니까 삼라만상의 이치가 시를 타고서 범인(凡人)의 생과 이어진다. 정신도 번쩍 들고, 위로도 된다.



 시를 따라가 보자.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닳아 없어지기를 원하노라(조지 휫필드 ‘일기’ 중에서).’ 이 시를 건넨 이는 가수 황보다. 황보가 시를 만난 건 지방의 한 휴게소 화장실에서다. 그는 시를 통해 누군가 사용하길 바라며 꽂혀 있던 연필 같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봤다고 한다. 이후 그의 모토는 ‘뭐라도 하자’가 됐다. 황보는 “방송에서 잘 안 보이지만 저는 지금 뭔가 하고 있습니다”고 적었다.



 삶을 꿰뚫는 통찰도 시 속에 있다.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는 폴란드의 여성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두 번은 없다’)는 시인 문정희에게 존재의 본질을 알려줬다. 우리는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존재라고.



 이 시를 쓴 폴란드 시인의 집에서 불과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아우슈비츠가 있었다니 시가 더 명징하게 다가온다. 불멸의 삶은 없다. 어찌 보면 삶의 모든 불협화음은 끝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온다.



 각자 선택한 시는 다른데 메시지가 닮은꼴인 이야기도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영미의 ‘선운사에서’와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그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그만두고, 새 길 위에 섰을 때다. 지인은 박 시장에게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이라고 시작하는 시를 종이에 적어 보냈다. 시구를 곱씹고 곱씹다가 박 시장은 미련 없이 떠났다. 그는 “꽃이 진 자리에서 새로운 꽃은 또 피어난다. 창조란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문정희의 ‘동백꽃’을 되뇌며 살았다고 했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스스로 목을 꺾는/동백꽃을 보라’는 시구에서 그는 동백꽃의 단호한 참수를 마음 깊이 새겼다.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다 ‘단호한 참수’를 떠올리며 산티아고 순례 길을 떠났고 이어 고향 제주로 내려갔다. 그는 고향에서 토종 동백꽃이 붉은 카펫처럼 무리 지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감명 받았다고 한다. 서 이사장은 “낙화 이후에도 비단길을 여는 동백을 보면서 나의 마지막이 저 동백 같기를 소망한다”고 적었다. 쉼표 또는 마침표를 찍길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시이자, 이야기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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