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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보험공사의 황당한 국고 환수 소송 - 수천억대 소송하며 싼 변호사 찾는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5.02.14 00:01
[이코노미스트] 저축은행 부실소송 절반 예보 출신 변호사에 몰아줘 ... 해외에선 실수투성이 소송장으로 망신


[이코노미스트] 저축은행 부실소송 절반 예보 출신 변호사에 몰아줘 ... 해외에선 실수투성이 소송장으로 망신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오른쪽)이 지난해 10월 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부실책임 소송 사건 128건 중 63건을 예보 출신 변호사 7명에게 몰아줬다. 이런 일감 몰아주기를 즉시 시정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변호사 선임을 위한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지적에 동의한다. 예보도 제도를 개선해서, 한 사람이 맡을 수 있는 소송의 한도를 제한하는 제도를 작년에 도입했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



지난해 10월 22일 열린 예금보험공사(예보)의 국정감사 때 나온 대화다. 여기엔, 국민의 속을 뒤집어 놓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2011년 발생한 저축은행 사태에 많은 국민이 상처를 입었다. 예보는 저축은행 사태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공공기관이다. 저축은행 사태로 빚은 국가의 손실 즉, 국민의 세금과 다름없는 국고를 환수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곳도 예보다. 그런 기관이 저축은행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예보 출신 변호사들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꼼수를 썼다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다.



변호사 시장의 ‘큰 손’인데 수임료 아끼겠다고…







그런데 더 황당한 얘기가 있다. 본지는 국정감사 이후 예보의 부실소송 일감 몰아주기가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후속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예보 관계자는 뜻밖의 답변을 했다. “예보 출신 변호사 7명에게 일감을 몰아준 게 아니라 피치 못하게 일감이 몰렸다”는 것이다. 예보 관계자의 얘기는 이렇다. “예금보험공사는 국가의 공공기관으로 다른 곳에 비해 변호사 수임료를 넉넉하게 줄 수 없다. 또 저축은행 관련 소송은 한 건당 평균 피고가 5.2명에 달한다. 그만큼 일거리도 많고 까다롭다. 성공보수 또한 낮아서 많은 로펌이 기피하는 소송이다. 예보 출신 변호사의 경우 내부 사정에 밝다. 싸면서 일 잘하는 사람을 구하려다보니 예보 출신 변호사가 많은 일을 맡게 됐다.”



예보는 국내 변호사 시장에서 큰 손으로 통한다. 진행하는 소송이 많은 만큼 변호사들에게는 귀한 의뢰인 대접을 받는다. 실제 이번 예보의 부실소송 취재를 하면서 법률 자문을 위해 여러 법무법인과 접촉했다. “예보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한 변호사들이 상당수였다. 익명을 보장받고 나서야 겨우 몇 명이 입을 열었다. 변호사 시장에서 예보는 갑(甲)이란 뜻이다. 그런 예보가 마땅한 변호사가 없어 예보 출신 변호사에게 일감을 몰아줬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약 예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더 큰 문제다. 수천 억원 대의 국고 환수 소송을 진행하면서 수임료를 넉넉하게 책정하지 못해 돈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는 변호사를 쓰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변호사 수임료를 현실적으로 책정해 시장에서 잘나가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예보의 고민이 드러난다. “우리도 변호사비 넉넉하게 써서 소송에서 이기고 싶다. 그런데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곤란하다. 국정감사에서 분명 왜 이렇게 비싸게 소송대리인을 썼느냐고 지적할 게 뻔하지 않나?” 또 다른 예보 관계자의 설명이다.



예보가 이런 판단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저축은행 부실책임 소송은 까다롭고 승소확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고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정확한 증거를 잡기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부실 책임자들은 이미 상당 부분의 재산을 빼돌려 은닉했을 가능성이 크다.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환수할 돈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보 스스로가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 그래서 변호사들이 ‘기피’하는 이유다.



‘Korean’과 ‘Korea’도 구별 못한 소송장



지난해 8월 예금보험공사가 서갑수 전 서울상호저축은행장의 자녀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접수한 소송장. 예금보험공사의 영문명을 잘못 썼거나(왼쪽), 미국 달러를 한화로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등의 실수가 발견됐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한 이후 영업정지된 부실저축은행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됐다. 예보는 검찰과 함께 부실 저축은행의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을 밝히기 위해 애썼다. 예보는 지난해 말 ‘29개 저축은행에 대한 조사가 완료됐고, 367명의 비리가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예보가 찾아내 진행하는 부실책임 소송금액 총액은 3234억원이다. 이를 예보의 성과 처럼 포장해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송을 통해 환수된 국고는 111억원에 불과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국고가 될 것이라 기대하는 3234억원은 환수가 까다로운 돈이다. 지루하고 어려운 소송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선을 다해도 이기기 쉽지 않은 부실책임 소송이 예보 출신 변호사 몇 명에게 몰리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라는 비판을 받자 ‘비현실적인 변호사 수임료 때문에 피치 못하게 자사 출신 변호사들이 일을 떠맡게 된 것’이란 항변을 한다. 수천 억원에 달하는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되돌려받는 사안이다. 예보 출신 변호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상황도, 수임료 때문에 싼 변호사를 찾는 상황도 국민의 이해를 받기는 힘들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가 터지고 예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계정을 마련했다. 영업정지 된 저축은행의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금융회사 자금을 출자해 만든 기금이다. 당시 이를 진두지휘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15조원을 투입해 저축은행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부실한 저축은행이 줄줄이 나타났고, 이 기금은 27조원가량으로 늘었다. 당초 계획한 금액보다 55%나 증가한 금액이다. 지금까지 지급한 이자비용만 2조원을 넘겼다. 앞으로도 수년간 1년에 5600억원의 이자비용이 발생한다. 막대한 돈을 끌어다 썼음에도 지금까지 회수한 돈은 3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회수율은 14%(이자비용 감안하면 13%) 수준에 그친다. 몇몇 개인의 비리와 부정으로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했고, 그로 인한 국가 손실액이 25조원이 넘는다. 예금자보호 한도를 초과해 저축은행에 돈을 맡겨 더 큰 피해를 입은 국민도 부지기수다. 예보의 발표는 지금까지 환수한 3조8000억원이 아니라 남은 25조원을 어떻게 회수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예보는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올렸다’며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예보가 저축은행과 관련해 해외에서 진행하는 소송에서는 더욱 답답한 상황이 연출됐다. 예보는 서울상호저축은행의 부실책임자로 지목된 서갑수 전 서울상호저축은행장의 미국 은닉재산을 찾아내 이를 환수하는 소송을 지난해 8월부터 진행중이다. 서 전 행장은 재임 당시 부실대출로 회사에 7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았다. 예보의 조사결과 서씨는 재임 당시 자신의 두 아들과 며느리에게 약 310만 달러를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씨의 자녀가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부동산을 구입한 사실이 밝혀져 이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예보가 나선 것이다. 소송은 국내와 미국 3개 주(뉴저지·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본지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선데이저널USA’를 통해 예보가 서 전 행장의 아들인 서정한씨를 상대로 미국 매사추세츠 법원에 제출한 소송장을 확보해 검토했다. A4용지 10쪽 분량의 소송장에는 한 국가의 공공기관이 작성했다고 믿기 힘든 실수가 많았다. 2014년 8월 14일 제출한 소송장에서 원고는 ‘서울상호저축은행’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이 회사가 2013년 9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법률에 따르면 공적자금이 투입된 서울상호저축은행이 파산해 예보가 파산관재인이 되며 파산재산을 관리한다. 국내 대형 로펌에 문의한 결과 ‘이 소송의 경우 파산선고를 받은 법인(서울상호저축은행)이 아니라 파산관재인(예보)이 원고가 되는 것이 맞다’는 답변을 들었다. 예보도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듯, 같은 해 9월 4일 수정 제출한 소송장에는 예보를 원고로 추가해 제출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예보는 원고를 추가하면서 자사명을 ‘Korean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이라 명시했다. 예보의 공식 영문명칭은 ‘Korean~’이 아니라 ‘Korea~’다. 그리고 소송장 내부 항목에는 다시 ‘Korea’라 썼다. 미화 95만3665달러(약 9억8400만원)를 한화 984조8800억원으로 쓰는 번역 상의 실수도 있었다. 압류 대상인 서정한씨 소유의 부동산 주소를 틀리게 기입했고, 한국 대법원을 콩글리쉬처럼 ‘Daebeobwon’이라 표기하기도 했다. 소송장을 검토한 한 국제변호사는 “이런 실수들이 소송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너무 무성의하게 느껴진다”며 “자칫 미국 법원이 소송의지가 약한 것으로 판단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예보는 소송 경험이 많다. 내부에 별도의 법무팀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토록 허술한 소송장이 작성될 수 있었을까? 예보 측의 답변을 들어보자. “서 전 행장의 소송은 한국과 미국 3개 주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소송 사실이 알려지면 부실책임자들이 재산을 은닉할 우려가 있었다. 속도가 중요한 소송이었다. 급하게 소송장을 작성하고 제출해 꼼꼼하게 검토할 겨를이 없었다.” 발견된 실수들은 해석이 까다로운 법률적 내용이 아니다. 꼼꼼히 읽어만 보면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다. 예보의 답변이 궁색해 보이는 이유다.



예보는 사건을 수임한 미국 법률대리인을 탓했다. 소송장을 1차 검토할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현지 소송대리인이 추가 내용을 기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미국 변호사의 수임료가 비싸 적정한 가격대의 대리인을 찾았고, 예보의 성격과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 “소송은 원만하게 진행 중이며 이런 실수가 소송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예보 측 답변을 요약하면 이렇다. ‘변호사 비용이 부족해 실력이 떨어지는 미국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가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소송은 승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A4 10쪽 분량 소송장 “시간 없어 꼼꼼히 못 살펴”



본지는 저축은행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전인 2008년 ‘저축은행의 부실 도미노 현상이 우려된다(955호)’는 기사를 실었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저축은행 사태가 가시화된 2011년 3월에는 ‘저축은행 부실 책임자들이 어떻게 비리를 저질렀는지(1079호)’를 취재했다. 정부도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의 후속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이들에게 저축은행 사태는 ‘과거’가 됐다. 예보는 ‘영업정지 저축은행에 대한 비리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3000억원대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 밝히며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분명한 것은 저축은행 사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글=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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