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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조선은 왜군에 왜 짓밟혔나, 피로 쓴 반성문

중앙일보 2015.02.14 00:00 종합 18면 지면보기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서애 류성룡 표준영정. 석영(石影) 최광수(1932~90)의 작품이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벼슬에서 물러나 경북 안동 하회마을로 낙향, 전란의 전모를 담은 『징비록(懲毖錄)』을 썼다. [중앙포토]


1593년(선조 26) 1월 하순의 어느 날, 류성룡은 개성에 있던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군영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여송은 “명군에게 군량을 제때 보급하지 않은 죄를 물어 군법을 집행하겠다”며 호통을 쳤다. 류성룡은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한 나라의 재상은 왜 이런 수모와 치욕을 겪어야 했을까.

서점가에 부는 『징비록』 바람
류성룡, 지도층 과오·무능 질타
승리보다 패배에서 교훈 찾아
혼돈의 우리 사회 비추는 거울



 이 일이 있기 며칠 전, 이여송은 파주의 벽제관 싸움에서 일본군에게 참패한 뒤 개성으로 도망쳐 왔다. 그러고는 “이제 일본군과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다. 명군만 믿고 있던 조선은 충격에 빠진다.



 류성룡은 연일 이여송을 찾아 “빨리 명군을 진격시켜 일본군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 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이여송은 “싸우려면 너희들이 직접 싸우라”며 거부한다. 그럼에도 류성룡이 채근을 멈추지 않자 군량을 핑계로 군법 집행을 운운하며 무릎까지 꿇리는 수모를 주었던 것이다.



 『징비록(懲毖錄)』은 이처럼 무릎을 꿇는 것까지 감내해야 했던 약소국의 재상 류성룡(1542~1607)이 남긴 기록이다. ‘징비’란 “내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뒤에 근심이 있을까 삼간다”는 『시경』의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영의정이자 도체찰사로서 7년의 임진왜란을 겪으며 느꼈던 반성과 회한, 또 다시 그 같은 환란이 닥치는 것을 막는데 필요한 대책과 마음가짐을 기록한 회고록이자 비망록이다.



 17세기 초반 간행된 『징비록』이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면서 빛을 발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류성룡이 보인 솔직한 고백과 통렬한 자기반성 때문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의 서문에서 “나같이 불초한 사람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중대한 책임을 맡아 위태로운 시국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며 몸을 낮춘다. 그러면서 자신을 비롯한 조선 지도층의 과오와 무능을 사실대로 서술한다.



 『징비록』에는 실제로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이겼던 기록보다는 패했던 기록의 내용이 더 상세하게 적혀 있다. 누가 잘못해서, 무엇이 부족해서 패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함으로써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충정이었다.



 류성룡이 서술한 일본군의 모습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비록 무고하게 침략하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원수였지만, 류성룡의 일본군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다. 신무기 조총의 놀라운 위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본군의 용맹함, 치밀하고 꼼꼼한 그들의 축성술·용병술 등을 담담하게 서술했다. 적개심을 넘어 일본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만 그들과 맞설 수 있다는 신념의 소산이었다.



 류성룡은 고백과 반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징비록』에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주국가’를 염원했던 류성룡의 비전이 담겨있다. 조총과 대포, 병법을 비롯한 일본과 명의 선진 무기와 군사 기예를 배우는 것, 전쟁에 지치고 일본군과 명군에 시달렸던 백성들을 보듬는 것, 유사시에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여 기르는 것 등 ‘전쟁 이후’를 대비한 구체적 대안이 조목조목 제시돼 있다. 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17일 만에 수도를 빼앗기고, 싸울 의지조차 없는 명군 장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일본군과 싸워달라고 애원해야만 했던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비원(悲願)이 절절하다.



 하지만 ‘징비’의 정신은 제대로 계승되지 않았다. 류성룡이 강조했던 안민(安民)과 양병(養兵)의 비전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웃나라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경고 또한 무시됐다. 그 결과 왜란 당시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참담한 고통은 30여 년 뒤 병자호란에서 다시 반복됐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보다 더 예민하게 『징비록』을 주목한 것은 일본이었다. 『징비록』은 1695년 일본에서 간행된다. 초판 『징비록』의 서문에서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은 이렇게 썼다. “조선인이 나약하여 빨리 패하고 기왓장과 흙이 무너지듯 한 것은 평소 가르치지 않고 방어의 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중략) 이것은 전쟁을 잊은 것이다.” 날카롭고 뼈아픈 지적이었다.



 이윽고 1712년(숙종 38),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일행은 오사카의 거리에서 『징비록』이 판매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경악한다. 보고를 받은 숙종과 신료들은 조선의 서책들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부산을 떤다.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 조선보다 ‘징비의 정신’을 더 강조하는 서글픈 장면이 빚어졌던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어떤가. 바야흐로 류성룡을 다룬 드라마의 방영을 앞두고 『징비록』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징비의 정신’은 실종된 지 오래다. 안팎으로 산적한 난제를 풀어가는 데 필요한 솔직한 반성과 탁월한 리더십이 아쉬운 오늘, 류성룡이 남긴 ‘징비의 정신’이 새삼 그리워진다.



[S BOX] 제2의 정도전인가 … 류성룡 평전·해설서 잇따라



서애(西厓) 류성룡을 주인공으로 한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14일 시작된다. 서점가에도 관련 책이 쏟아지고 있다. 원작 해설서는 물론 당시 시대상을 재구성한 소설, 류성룡 평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15종이 넘는 책이 출간됐다. 지난해 ‘정도전’ 열풍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소설 중에는 『소설 토정비결』을 쓴 이재운의 『소설 징비록』(책이있는마을)이 눈에 띈다. 류성룡의 원작은 물론 관련 사료를 망라해 7년 전쟁의 참상을 담아냈다. 드라마작가 이한솔의 『징비록』(푸르름)과 소설가 박경남의 『소설 징비록』도 있다. 팩션 소설가 이수광의 『소설 징비록』(북오션)은 파란만장했던 서애의 일대기를 그린다.



 『징비록』 번역본은 아카넷·역사의 아침·현암사 등 여러 곳에서 나왔다. 출판인 김흥식이 옮긴 『징비록: 지옥의 전쟁, 반성의 기록』(서해문집)은 원본에 ‘류성룡 종군의 기록’을 덧붙여 임진왜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기택이 옮긴 『징비록』(알마)은 쉽게 풀어 쓴 문장이 돋보인다. 역사저술가 배상열씨의 『징비록』(추수밭)은 당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다각 분석한 교양역사서다.



 미술사학자 이종수의 『류성룡, 7년의 전쟁』(생각정원)은 류성룡의 활약을 평전 형식으로 쓴 책이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시루)는 『징비록』은 물론 상소문·공문 등 자료 549건을 분석해 류성룡의 리더십을 파고든다.





한명기는 … 1962년생. 서울대 국사학과 석·박사. 『병자호란 1·2』 『광해군』 등을 썼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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