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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주삿바늘에 스친 날, 우린 ‘에볼라 전우’ 됐다

중앙일보 2015.02.10 01:06 종합 2면 지면보기



1·2진 구호대원들 생생한 증언















대한민국을 대표해 세계의 전염병과 싸운 24명의 ‘의료 영웅’이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치료활동을 벌이고 있는 긴급구호대(KDRT) 대원들이다. 국제 긴급구호대에 우리나라가 참여한 건 처음이다. 외교부·보건복지부·국방부가 합동으로 파견한 구호대는 민간·군이 섞여 있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자진해 험지에 간 이들이다. 9일 이들이 본지에 소회를 보내왔다. 공포와 희망, 기적과 절망이 교차했던 순간이 담겼다. 귀국해 자발적 격리과정에 있는 1진, 그리고 현지 활동 중인 2진 구호대원들이 보내온 활동기를 내러티브 식으로 정리했다.





“나도 감염될 수 있다” 공포의 병실



바깥에서도 장화 착용은 필수다. 간호사 대원들이 치료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2014년 12월 30일. 1주일간의 현지 적응 훈련을 끝내고 실전에 투입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의료대장과 지원대장이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불길한 사고가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료 대원 한 명의 손가락이 주삿바늘에 스쳤다고 했다. 일단 대원을 안정시키고 회의 결과를 기다렸다. 출국 전 매뉴얼에서 봤던 게 현실이 되자 우리 임무가 목숨과 직결돼 있음을 처음 실감했다. 나도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와 사고를 당한 대원이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어둡고 긴 밤을 보냈다. 이튿날 외교부 본부는 독일 병원으로의 후송을 결정했다. 소식은 빠르게 치료소 전체로 퍼졌다. 다른 나라 의료대원들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사고 대원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국적과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전우였다.



<1진으로 파견된 30대 여군 간호사>



중증 여아, 매니큐어 보고 기운 차려



 일곱 살 된 소녀 환자가 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진 중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여의사가 보라색 매니큐어를 아이에게 보여주자 스르륵 일어나더니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기특한 마음에 헐레벌떡 본부에서 보낸 긴급 식량 꾸러미에서 초코 과자를 꺼내왔다. 아이가 냉큼 받아먹는 모습을 본 순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에라리온의 어린이, 남아공의 여의사, 그리고 한국에서 파견된 군의관. 살아오면서 아무런 공통점이 없던 우리는 작은 치료소 안에서 ‘함께’였다.



<2진으로 파견된 남성 군의관>



 환자들이 퇴원할 때면 모든 의료진이 한 줄로 도열해 배웅했다. 완쾌를 축하하는 의식이었다. 2015년 1월 24일. 시에라리온을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낯익은 국제 의료진들의 얼굴들이 보였다. 까맣게 탄 얼굴에 머리도 헝클어졌지만, 표정은 도착할 때보다 좋아 보였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해주고 싶었다.



<대학병원에서 자원한 20대 여성 간호사>



“1년은 다녀와라” 응원하던 어머니 눈물



 부모님께 시에라리온에 간다는 소식을 알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의 반응이 의외였다. “네가 지원할 줄 알았어. 그렇게 아픈 사람들 치료하러 가는 건데, 한 달은 너무 짧지 않니? 1년은 갔다 와야지”. 어머니의 응원 덕에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떠난 뒤 많이 우셨다고 했다. 구호대 파견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 때문이었다. 왜 말리지 않았느냐는 원망을 들을까 봐 친척분들께 말씀도 못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되레 딸 자랑을 하고 싶어 하신다.



<1진으로 파견된 20대 군 간호사>



 몸집이 컸던 남성 환자가 있었다. 큰 바늘이 달린 정맥주사를 팔뚝에 꽂아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을 정도로 참을성이 많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더니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어린 딸의 “힘내라”는 말에 울컥했다고 한다. 세상 어디를 가나 부모 자식 간은 똑같은 것 같다. 이 가족이 더 큰 아픔을 겪지 않도록 정성껏 치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진으로 파견된 남성 군의관>



유지혜 기자



사진설명=시에라리온 현지에서 에볼라 감염 환자 치료 활동을 벌이는 대한민국 구호대원들. [사진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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