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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구원함으로써 모든 인간은 구원받는다

중앙선데이 2015.02.07 03:28 413호 14면 지면보기
타르코프스키
얼마 전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1932~1986)의 ‘노스텔지아’를 강연하는 자리에서 “현대 영화를 타르콥스키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뻔한 수사학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타르콥스키 작품의 강렬함은 영화가 오락거리라는 고정관념을 훌쩍 넘어선다. 그의 영화는 거의 영적인 매체다. 그는 영화의 본질이 산문이 아니라 시적인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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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텔지아’를 만들던 즈음의 시절로 돌아가 보면, 러시아 당국은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어떻게든 검열하고 통제하려 했다. ‘보드카’라는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장면의 의미가 무엇이냐 등등 그들은 모든 것을, 심지어 영혼의 침묵조차 정치적 의도로 환원했다. 타르콥스키는 분노한다. “바보천지 같은 자들이 결제를 하고 있는 판에 무슨 영화를 찍을 수 있단 말인가.”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노스텔지아’는 점점 심해지는 러시아의 훼방에도 1983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비롯해 3개 부문 상을 거머쥔다. 수상을 계기로 예술가는 더 많은 작업을 더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러시아 감독 본다르추크가 심사위원 중 하나였는데, 타르콥스키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를 해치기 위해 그를 파견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버린 셈이다. 내가 상을 받게 되면 외국에서 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많이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타르콥스키 영화에 종종 인용되는 시인이자 스승인 아버지는 편지를 통해 귀국을 권유한다. “가능한 한 빨리 오너라. 사랑하는 아들아, 모국어도 없고, 고향의 산천도 없고, 귀여운 아들 안드류스카도, 예쁜 딸 올가도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다른 시대를 살기로 결심한 타르콥스키는 이렇게 답장을 쓴다. “본다르추크는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상관의 사주를 받아 나의 출품작 ‘노스텔지아’가 상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짓을 다 했습니다…저의 애국심에 관해서는 ‘노스텔지아’를 보십시오. 그러면 조국을 향한 감정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일치할 것입니다.”

그의 영화의 본질은 산문이 아니라 시
타르콥스키는 ‘햄릿’ 공연을 비롯한 여러 작업을 위해 3년간 해외에서 체류할 수 있는 여권 발급을 신청했고, 그것도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수상 이후의 기대감이 좌절로 끝이 나자, 타르콥스키는 1984년 7월 10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망명을 선언한다. 이제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생전에 출간된 『봉인된 시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노스텔지아’의 제작은 끝났다. 그러나 곧 나의 영혼이 내가 영화 속에서 다룬 것과 똑같은 향수를, 그것도 영원히 갖게 될 줄을, 나는 촬영 중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영화 ‘노스텔지아’
‘노스텔지아’는 러시아 시인 고르차코프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을 그렸다. 그는 광인 도메니코를 만나, 그로부터 촛불을 옮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영화의 절정은 로마의 광장에서 연설을 끝낸 도메니코가 분신자살을 시도하고, 고르차코프가 온천을 횡단하며 촛불을 옮기는 장면이다. 두 개의 불꽃(분신, 촛불)이 하나가 되는 장면을 통해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다”라는 도메니코의 말은 예언처럼 실현된다. 그것은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려는 두 개의 시간의 봉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촛불을 옮긴 후 죽음을 맞이한 고르차코프의 내면을 파고든다. 토스카니 지역의 폐허가 된 성당과 러시아의 농가가 합쳐지면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통합된다. 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이 영화를 두고 타르콥스키는 “이탈리아에서 나는 너무나도 러시아적인 영화를 찍었다”고 술회한다.

영화 속 주인공 고르차코프의 삶은 곧 타르코프스키를 향한 예언이 됐다. 85년 12월 13일의 일기에는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부탁으로 칼롤링어 병원에서 진찰을 받게 된 과정이 남겨져 있다. 타르콥스키의 건강은 이후 계속 악화됐고, 암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타르콥스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영화의 내용처럼 ‘향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향수는 단순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예술과 생명에 대한 그리움,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정점을 향해 가는 인간의 외로움이다. 이를 증명하듯 타르콥스키는 유작 ‘희생’을 완성했다.

새로운 도덕적 이상을 만들고자한 열망
“사람들은 묵시론적 침묵의 증후군이 임박한 지금, 생존에 대한 어떤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명의 물을 부어 넣은 메마른 나무에 관한 전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한 수도승은 메마른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언덕에서 산마루까지 한 걸음씩 날랐다. 오직 그의 행위가 신에 대한 신념, 그 기적에 대한 믿음 속에서 필연적이라는 생각으로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기적을 보기 위해서 살아간 셈이다. 어느 날 아침 나무는 살아났고, 가지에는 잎사귀가 덮였다. 기적은 분명 진실에 다름 아니다.”

마른 나무에 물을 주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희생’은 나무에 잎사귀가 열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영화와 함께 타르콥스키는 사라졌지만 그는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영화가 기적을 보여줄 것임을 믿었다. 85년의 마지막 일기 말미에 적어 놓은 기도는 절절하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지쳤나이다. 저의 육신과 영혼이 심한 충격을 받았사오니 저에게 건강을 다시 주옵소서. 저를 외면하지 마시고 저희 영혼을 구해 주소서.”
그러나 이듬해 12월, 타르콥스키는 죽음을 맞았다. 다행히 그의 영화는 하나의 기적이, 그리고 예술이 됐다. 각자가 자신을 구원함으로써만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의 비전은 여덟 편의 남겨진 영화 속에 온전히 새겨졌다.

오늘날 이런 태도로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대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그의 열망은 “새로운 도덕적 이상”을 만드는 데 있었다. 그가 영화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여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예술가의 신화를 통한 불씨를 당기는 일이었다. 비록 그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영화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스크린 위에서 부활한다. 그것은 타르콥스키의 영화처럼 신비로운 일이다. 21세기에도 그의 영화는 여전히 타오른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KBS ‘즐거운 책 읽기’ 등에서 방송 활동을, CGV무비꼴라쥬에서 ‘씨네샹떼’ 강의를 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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