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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빛에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죠

중앙선데이 2015.02.07 03:52 413호 22면 지면보기
‘Cylinder’. 2012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 ‘라이트 쇼’전에서 소개되며 현대미술계에 작가의 이름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된 작품이다.
리오 빌라리얼(Leo Villareal·48)은 뉴욕을 중심으로 다양한 설치 작업을 하고 있는 현대미술가다. 우리 삶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빛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LED 조명과 테크놀로지를 이용한다. 미술사를 공부한 덕분에 마크 로스코나 프랭크 스텔라 같은 작가들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LED 작가 리오 빌라리얼

리오의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8년이었다. 지금은 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들을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LED 조명을 이용한 그의 작품은 매우 신선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예술가도 자신의 작품 분야에 남다른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작품의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리오는 이 같은 나의 지론에 딱 맞아떨어지는 작가다. 게다가 겸손하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LED로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나요.
“1990년대 초반 빛을 이용한 조형물들은 대중에게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었죠. 저는 작품 속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고, 그 해답을 빛에서 찾았습니다. 아주 작은 양의 빛으로도 사물의 에너지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 빛 속에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나아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힘이 있다는 것도. 이것은 빛이 가진 보편적인 힘이에요. 빛은 은유적이거든요.”

-지난 5년간 숨가쁘게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작품 세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일단 스케일이 굉장히 커졌죠. 대형 프로젝트들도 있었고, 국제적인 쇼들도 진행했으니까요.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했던 라이트쇼(Light Show)도 그 중 하나죠. 이때 선보였던 작품을 계기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당신 예술인가요.
“뉴욕 타임스퀘어를 생각해보세요. 제 작품에 쓰인 LED와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전광판이 있죠. 하지만 댄 플래빈의 작품은 어떤가요. 같은 소재를 썼지만 그 미학적인 형태는 물론, 담고 있는 메시지도 완전히 다르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예술이냐, 기술이냐’라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빛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따라 완벽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릿지에 설치한 ‘The Bay Lights’(2013).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릿지에 조명등 2만 5000개
리오는 2013년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릿지에 2만5000개의 하얀 LED를 부착하는 ‘더 베이 라이츠(The Bay Lights)’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베이 브릿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트레져 아일랜드를 연결하는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긴 폭을 자랑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베이 브릿지 건축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더 많은 대중이 더 넓은 공간에서 빛을 이용한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랬던 만큼,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죠. 거대한 다리 전체에 조명 시설을 설치하고, 거기 필요한 전기, 그리고 조명의 점멸을 제어하도록 하는 일은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리를 볼 때 그런 기술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게끔 기술적인 부분은 철저히 숨겼습니다. 그저 빛을 바라보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교감을 느끼고 서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리오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려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수많은 차량이 다니는 곳인 만큼 무엇보다 안전. 두 번째는 많은 이들의 모금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인 만큼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고민했다. 많은 조명을 사용하는데 드는 전기사용료도 산출해야 했는데, 스마트 시스템 덕분에 하루 전기료는 30달러 정도면 충분하게 설계되었다. 세 번째는 시간과의 싸움.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이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다 보니 예정된 기간 내에 끝낼 수 있도록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이런 노력 끝에 베이 브릿지는 골든 게이트 못지 않은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관광지로 떠오르며 작품이 설치된 다리 주변의 관광수입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의 경제적 가치도 창출시키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다.

‘Multiverse’(2008). 워싱턴국립박물관의 동관과 서관 건물을 잇는 60여 m를 4만1000여개의 LED로 화려하게 수놓았다.
-예술에 대한 꿈은 어떻게 키울 수 있었나요.
“아버님 덕분이죠. 어린 시절부터 제 주변엔 항상 예술작품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예술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었죠. 16살 때 고향을 떠나 로드아일랜드에 있는 보딩스쿨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 모던과 컨템포러리 아트에 매료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 역시 그때부터 관련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셔서 우리는 예술을 매개체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사업가였고, 저는 예술적이고 기술적인 것에 관심이 많던 아들이었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엔 공통점이 많았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었죠. 아버지께서는 제가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13살이 되던 해에는 애플 컴퓨터를 선물로 사주시기도 하셨죠. 아마 당시 살던 지역에서 애플 컴퓨터를 가진 첫 번째 아이였을 거예요(웃음).”

-기술은 항상 발전합니다.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요.
“작가가 펜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제게 LED는 펜이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LED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지는 잘 모르겠어요.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또 뭔가를 명확히 규정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갈 뿐이죠. 예술이 상업화되면서 예술가들이 처한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렇기에 작품에 대한 비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평가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아요. 진실성이 담긴 작품은 조금 늦더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마련이거든요.”

‘Buckyball’(2012).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 3m, 6m 두 개의 거대한 구를 겹쳐놓았다.
‘Microcosm’(2007). Nerman 현대미술관의 설치 작업. 건물 천정에 LED를 설치했다.
“진실성 담긴 작품은 결국 사람들이 알아줘”
리오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M. 페이(Pei), 초고층 건축물 설계회사로 유명한 SOM 등과 함께 콜라보레이션한 대형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PS1, 올브라이트 녹스 뮤지엄, 노먼 뮤지엄 등의 프로젝트를 훌륭한 건축가들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건축가 우규승씨가 기억에 남네요. 서로의 전문분야를 인정하고 강력한 신뢰로 함께 일할 수 있었거든요. 이런 프로젝트는 오너의 명확한 판단력이 가장 중요한데, 맡은 작업마다 매번 명확한 결정을 내려주는 오너들과 함께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만드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인 그가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과의 균형은 어떻게 지켜가는지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시간에 대한 현명한 관리가 중요합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전략이 필요한 거죠. 파도를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정확한 방향을 안다면 파도를 탈 수 있는 것처럼요. 일에서도 오차가 없어야 하기에, 좋은 팀을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제겐 환상적인 큐레이터·딜러·후원자를 만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기술을 기반으로 만드는데도 그리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빛을 이용한 작품에 도전했던 작가들이 드물었던 현실 속에서 과감하게 도전해온 모습이 근사해보였다. 앞으로도 예술을 그리고 빛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에너지를 선사하는 아티스트로 남아주길.


글 강희경 패러다임아트 대표, 번역 최현정 chk@paradigmartcompany.com, 사진 강재석, 리오 빌라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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