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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쏘는 솔 향이 진토닉을 감싸니

중앙선데이 2015.02.07 04:00 413호 28면 지면보기
솔토닉
최근 눈에 띄는 음식 트렌드를 꼽자면 단연 ‘한식’이다. 특히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에 감각적인 프레젠테이션이 강점인 ‘모던 한식’이 대세다. 집밥으로 대표되는 ‘캐주얼 다이닝’을 시작으로, 한식 정찬코스를 선보이는 식당이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이제는 몇 시간씩 줄을 서서라도 한식 뷔페를 가는 게 유행이 됐다.

행복에프앤씨재단과 한식재단이 선보인 전통주 칵테일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음식이 이쯤 되니 부족해지는 게 있다. 바로 술이다. 해외 식당에선 어김없이 식사와 함께 간단한 술 한 잔을 곁들이는 게 기본. 우리 음식 차림에도 이런 술이 아쉬워지는 때가 것이다.

여기에 주목한 이들이 있다. 행복에프앤씨재단과 한식재단이다. 두 곳은 한 달을 꼬박 들여 모던 한식에 어울리는 전통주 칵테일 9종을 개발했고, 이를 널리 알리자는데 의기투합했다.

그 방법으로 3월부터는 칵테일의 레시피를 원하는 국내외 레스토랑에 무료 전수하겠단다. 행복에프앤씨재단은 사회적기업인 SK행복나눔재단에 속한다는 점에서, 한식재단은 그간 한식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큰 이견이 없었다.

이를 앞두고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동빙고동 한식 레스토랑 ‘오늘’에서 시음 행사가 열렸다. 전통주 칵테일의 묘미는 무엇일까. 결론만 말하자면,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이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솔송주에 진토닉, 최고급 탁주에 요거트…
시음회는 세 가지 컨셉트로 이뤄졌다. 첫 번째는 ‘자연’. 그래서 풍광이 수려한 제주의 술, ‘고소리주’를 응용했다. 우리나라 3대 전통소주 중 하나인 고소리주를 기본으로 유자·레몬과 배합한 일명 ‘고소리유자 슈러브’였다. 식초· 설탕·과일로 만든 음료라는 슈러브(Shrub)의 이름처럼 새콤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연이어 나온 ‘솔 토닉’은 ‘오늘’이나 한식재단 양측 모두가 가장 자신한 메뉴였다. 경남 함양의 전통 솔송주에 진토닉을 더한 것인데, 입에 대기 전 코로 들어오는 향이 압권이다. 거기에 솔향과 비슷한 로즈마리를 띄워 오감을 자극했다. 뒤를 잇는 ‘한산생강 온더락’은 찹쌀로 빚은 청주인 한산소곡주(충남 서천)에 저민 생강과 진저 에일을 짝지었다.

그 다음 컨셉트는 ‘전통’의 타이틀을 달았다. 익숙하게 오래 마셔 온 우리 주류들을 변신시켰다. 고려시대 개경에서 왕족들이 즐겨 먹었다는 최고급 탁주인 이화주를 이용한 ‘이화주 요구르트 칵테일’이 대표적. 이화주가 흡사 떠먹는 요구르트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 두 가지를 섞고 오미자청을 가니시로 올렸다. 그 다음으로 꿀로 1년간 숙성시킨 매실 원주에 새콤한 감귤, 쓴맛이 나는 캄파리 리큐어를 배합한 ‘매실 네그로니’로 이어지더니, 수정과에 캐러멜 시럽과 탄산을 가미한 ‘수정과 2015’로 마무리했다.

마지막 컨셉트는 ‘현대’였다. 서양식 칵테일을 응용해 동시대성에 비중을 뒀다. ‘복분자 브램블’은 브램블이라는 칵테일에 들어가는 블랙베리 리큐어 대신 복분자주(전북 완주)를 넣어 완성시켰다. 당분에 알코올을 부으면 층이 생기는데, 설탕 시럽 위에 복분자주를 부어 붉은 빛이 서서히 물들어가는듯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추성주 네그로니’ 역시 네그로니라는 클래식 칵테일에 들어가는 쓴 맛의 캄파리 대신 비슷한 맛이 나는 추성주(전남 담양)로 대체했다. 추성주는 구기자, 오미자, 갈근 등 20가지 한약재를 넣고 발효한 증류주다. 시음회는 ‘아침햇살식혜 그라니타(얼음과자)’로 마무리됐다. 식혜를 얼리고 아침햇살 음료를 살짝 부은 뒤 콩가루를 뿌린 것인데, 고소한 달달함이 디저트로도 그만이었다.

이날 시음회는 술에 어울리는 한식 한입요리까지 눈길을 끌었다. 참외장아찌를 곁들인 학꽁치초회, 명이나물 불고기쌈밥, 묵은지를 곁들인 우족편 등 보통 식재의 새로운 조합이 두드러지는 요리들이 술의 흥취를 돋웠다.

집집마다 다른 제조법, 칵테일과 전통주의 공통점
전통주 칵테일이 나오게 된 계기는 사소했다. 지난해 11월 행복에프앤씨재단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오늘’에서 신메뉴를 개발하며 칵테일을 곁들인 것. 시음을 했던 한식 재단이 판을 키우자고 제안했다. 잘 만들어 누구나 쓸 수 있게 보급하자는 얘기였다. W호텔 우바의 이민규 매니저가 칵테일을 맡고, 오늘의 박정석 셰프가 요리를 맡았다.

그런데 왜 하필 칵테일일까. “외국 식당에서는 종종 자기네들만의 비법으로 만든 칵테일을 내놔요. 전통주도 각 지방마다, 집집마다 양조법이 다르죠. 동서양의 다른 술이지만 통하는데가 있는 거죠.” 행복에프앤씨재단 김선경 이사의 설명이다.

이날 시음회에서 칵테일을 개발한 이민규 매니저는 “전통주 고유의 향과 맛이 묻히지 않는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전통주 칵테일이라는 게 수없이 많지만 시럽이나 리큐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약점을 보완한 것. “한국 사람들조차 한국의 맛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또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죠. 걸 어떻게 친근하게 변화시키느냐가 가장 큰 숙제였죠.” 그는 이를 위해 서양 클래식 칵테일의 베이스가 비슷한 전통주를 찾았다. 그리고 이를 정통 칵테일 재료에 조금씩 대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했다. “전통주 칵테일 레시피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어요. 수만 가지가 있어도 그중에 정말로 사람들이 봤을 때 이렇게도 먹을 수 있구나, 먹어봐야 겠다라고 손이 가게 만들어야죠.” 이는 ‘양식 레스토랑에서도 마실 수 있는 전통주 칵테일’이라는 주최 측의 자랑과 일면 통하는 말이기도 했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행복에프앤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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