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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동네 북’ 법인세

중앙선데이 2015.02.08 02:55 413호 31면 지면보기
지난해 7월 한 토론회에 참석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각국이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 단계에서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표정이 단호했다. 기업이 벌어서 쌓아둔 돈에 물리는 ‘기업소득환류세’를 추진한 최 부총리도 법인세 인상만큼은 신중했다. 그런 최 부총리가 최근 “정치권이 합의하면 따르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야당이 인상론을 들고 나오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법인세는 성역이 아니다”며 가세하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개인은 소득세, 법인은 법인세를 낸다. 소득세·법인세는 소비세(부가가치세)와 함께 조세의 세 기둥이다. 그런데 증세 논란 때마다 유독 법인세가 테이블 위에 오른다. 소득세·소비세에 비해 조세 저항이 작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인세 인상이 ‘양날의 칼’이라는 점이다. 내수 부진, 높은 생산비용으로 시달리는 기업들로서는 법인세마저 오르면 생산·판매가 유리한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기업 이전은 일자리를 줄인다. 이는 소득세·소비세 세수마저 위축시킨다.

1990년 이후 법인세를 꾸준히 낮춰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당장은 세금이 덜 걷혀도 중장기적으로는 경기가 살아나 세금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실제 법인세율은 91년 34%에서 2002년 27%, 2009년에는 22%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에는 영국·스위스·스웨덴 등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세율을 유지한다.

인상의 타이밍도 좋지 않다. 법인세는 종목별 편중이 심하다. 내는 기업이 많이 낸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약 8000개 법인이 법인세 90%를 감당한다. 지난해 이 가운데 3분의 1이 적자기업으로 전락했다.

국내에서 한창 법인세 인상 논란이 일던 지난 5일 미국에서는 법인세율 인하가 화제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불을 지폈다. 이 매체는 명목 법인세율 대신 각종 조세감면 제도와 자본거래에 부과되는 세율 등을 고려한 ‘한계실효세율’로 기업의 조세부담률을 따져봤다. 그 결과 미국(35.3%)이 프랑스(36.0%)에 이어 OECD 국가 2위에 오른 것이다. 내리자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그런데 이들에 이어 3위에 오른 나라가 놀랍게도 법인세 인상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30.1%)이었다. 일본 기업의 실효세율은 29.3%, 경제 상황이 우리보다 좋은 독일과 영국의 기업들은 각각 24.4%, 23.7%로 한국 기업보다 세금 부담이 덜했다.

정치적 의도로 촉발된 ‘무상’ 시리즈가 나라 곳간을 비게 하고, 이 문제를 다시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법인세 인상 카드를 빼든 게 옳은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업과 자본에 대한 세금은 결국 임금에 대한 과세로 전가될 뿐이다. 오바마는 법인세율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WSJ의 주장을 우리 당정 관계자들도 흘려 듣지 않기 바란다.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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