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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판에 박힌 청와대 사진, 왜

중앙일보 2015.02.07 00:28 종합 12면 지면보기
2011년 5월, 미국을 테러의 공포에 몰아넣었던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작전 ‘제로니모 E-KIA’가 성공리에 끝났다. 작전 성공요인에 세인의 관심이 쏠렸다. 답은 백악관이 공개한 사진 한 장 속에 들어 있었다. 이 사진을 본 언론과 국민은 “역시 오바마”라고 찬탄했다. 사진 속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상황실에서 10여 명의 참모진과 함께 제로니모 작전 진행상황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웬걸? 당연히 중앙 상석을 차지하고 있을 법한 오바마 대통령은 사진 왼편의 작은 의자에 힘겹게 앉아 있다. 작전사령탑이었던 마셜 B 웹 준장에게 중앙 상석을 내준 채였다. 사진 오른편에 함께 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대통령인 듯 보였다. 손승현 사진작가는 “상세한 설명이 없으면 누가 대통령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바마의 모습에 무게감이 없었다”며 “그러나 사진은 오바마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어떤 언어보다 강력하게 얘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은 음악과 같아 어떤 해석도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스스로를 전달한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빈 태생의 사진작가 에른스트 하스(Ernst Haas·1921~86)의 말이다. 사진은 기록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하스의 말처럼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진 한 장으로 이를 증명했다. 백악관에 견줄 때 청와대 사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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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청와대의 대통령 전속 사진가는 2명이다. 추천을 통해 발탁하거나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이를 기용해 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전에는 국정홍보처의 공무원이 사진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주로 사진기자나 사진작가 출신을 기용한다. 즉 예전과 달리 지금은 ‘전문 사진가’가 대통령의 사진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청와대 사진에 대해 ▶사진 중심에 항상 대통령이 있으며 ▶정면만 주로 찍고 ▶전체적으로 구도가 단조롭고 딱딱한 특징이 있다고 평가한다. 손 작가는 “청와대 사진은 정말 재미가 없다”며 “사진 한가운데 항상 대통령이 놓여 있고 나머지는 아웃 포커스(초점을 흐려 보이게 하는 기법)다”고 지적했다. 또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사건은 보이지 않고 대통령만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 5일 현재 청와대 포토에 올라와 있는 올해 사진 164컷 중 101컷의 중앙에는 대통령이 위치하고 있다. 대통령이 중앙에 있지 않은 사진들은 ▶행사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행사장 전반을 찍은 것이거나 ▶임명자도 함께 나와야 하는 임명식 사진 ▶외빈과 동등한 입장에서 얘기하는 장면을 담기 위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의 뒷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청와대 사진의 특징 중 하나다. 대부분 정면이나 대각선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찍는다.

 백악관 사진은 다르다. 명암을 활용해 대통령의 뒷모습만 검게 나오게 찍은 사진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대통령이 아닌 대상도 피사체로 종종 담는다. 올해 백악관 사진 96컷 중 29컷이 그랬다. 행사 당시의 전경, 참석자들의 모습, 오가는 동물 등 다양한 주변 모습을 담고 있다. 피사체의 발과 같은 특정 부위만 확대해 찍거나 흑백으로 연출한 것도 있다. 각양각색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에 반해 청와대 사진은 한 컷도 예외 없이 대통령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일정한 구도가 반복된다. 손 작가는 “결국 대통령도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대통령 주위의 환경과 인물을 다양하게 보여 줄 때 대통령의 모습 또한 이해되고 보는 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3년 1월 나로호 발사 성공을 지켜보며 박수 치는 모습(가장 위)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9월 부산 신항만 공사 현장을 방문해 근로자들을 격려하는 모습(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9년 8월 경기도 파주시 수해 현장을 돌아보는 상황이 다소 단조로운 구도로 사진에 담겨 있다.
 청와대 사진이 단조로운 이유는 뭘까. 경직된 경호 관례가 첫손에 꼽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가였던 장철영 코픽스 대표는 “아무리 전속 사진가라고 해도 경호실이나 부속실에서 통제해 행사 시작 후 5분 만에 찍고 다 나가라고 한다”며 “전속 사진가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우 ‘세이프 존(안전구역)’이라는 것이 있어 보안 단계를 거쳐 마지막까지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유롭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속 사진가 피트 수자(Pete Souza)는 지난해 말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 알 헌트(Al Hunt)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정부는 다른 사진기자들이 전속 사진가인 나와 똑같은 라인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할 정도로 사진에 있어 열려 있다”며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와 통화할 때도 내가 직접 현장에 가서 찍었다”고 말했다.

 문화적 배경에서 오는 차이도 무시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시절 한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는 대통령의 뒷모습을 찍어 내보낸 직후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왜 대통령 뒷모습을 찍었느냐”는 강한 문제 제기를 받기도 했다. 중앙대 김영수(사진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항상 권위가 있고 근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며 “미국은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참모들과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때문에 사진 자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내 청소부와 주먹을 맞대며 인사한다거나 대통령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몸을 숙여 주는 장면은 억지로 연출해서는 담을 수 없는 장면이란 얘기다. 김정임 상명대(사진학) 교수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사진보다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운 사진도 있겠지만 시스템 자체가 그것을 공개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사진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손 작가는 “사진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청와대”라며 “사진 기록에 대한 원칙이 있을 텐데 이를 유연하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대통령이 사진가를 믿고 모든 걸 맡겨야 하며 경직된 경호와 권위적인 청와대 문화도 바뀌어야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임 교수는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민에게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사진”이라며 “전속 사진가가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또 쓰고 싶은 사진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소통의 폭도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S BOX] 대통령 잠자는 모습 본 적 있나요? … 자연스러운 사진 허락한 노무현
 


청와대 사진이 전부 딱딱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연스러운 일상생활 모습들이 카메라에 담겼다. 보트 위에 올라 담배를 피우는 모습, 소파에 누워 잠자는 모습, 집무실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며 서류를 검토하는 모습, 손녀와 장난치는 모습 등이다. 그게 가능해진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2003년 말 청와대 전속 사진가로 발탁된 장철영 코픽스(홍보대행사) 대표의 말이다.

 “외신 사진기자로 열심히 일하던 중이었는데 청와대 전속 사진가로 있던 대학 선배가 저를 후임으로 추천했더군요. 노 전 대통령이 주목받지 못했던 시절부터 노 전 대통령을 찍어 온 인연도 작용했을 겁니다. 발탁 직후 ‘대통령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고 싶다. 따라다니면서 사진만 찍고 촬영 시 어떤 요청이나 얘기도 하지 않을 테니 허가해 달라’고 제안했죠. 청와대 부속실에서 ‘이건 대통령이 직접 결정할 사안’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어요. 최종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장철영이는 뭘 하더라도 제지하지 마라’고 경호실·의전·외교라인 등에 지시를 내렸던 겁니다.”

 그때부터 장 대표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비공식 일정에도 따라갈 수 있었다. 장 대표는 “하루는 대통령이 집무실 소파에, 비서관들은 밖의 소파에 누워 자고 있길래 잠이 깨지 않도록 기어가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며 “그 사진을 찍은 건 비서관은 물론 대통령도 전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 대표도 이렇게 찍은 사진을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공개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야 포토에세이집으로 사진을 공개했다. 장 대표는 “당시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진도 내가 직접 골랐는데 자연스럽고 사적인 사진은 올리지 않았다”며 “왜 괜한 사진을 올려 얘깃거리가 되게 하느냐고 압박하는 무언의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대통령과 전속 사진가 간 신뢰 관계의 깊이에 따라 사진의 수준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이 와도 신뢰가 없으면 사진은 죽게 돼 있다”고 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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