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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한국인 어루만진 ‘아들러 심리학’

중앙일보 2015.02.07 00:26 종합 13면 지면보기
[그림 인플루엔셜]


“제목 때문이었을까? 이 책은 왠지 꼭 읽어야 할 책처럼 느껴졌다.”

미움 좀 받으면 어때? 다른 사람 왜 의식해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는 나의 과제가 아닌, 타인의 과제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에게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생긴다.”
“열등감은 우월감이라는 동전의 뒷면이다.”
“우린 그저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된다.”



 “책을 읽으면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 일기장을 들켜 버린 것처럼 불안하고 부끄럽다.”



 책 『미움받을 용기』를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다. 책 제목부터 정곡을 찌른다. 타인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온 독자들에게 책은 “행복해지려면 미움 받을 용기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뜻 궤변처럼 들리지만 이 말에 넘어간 국내 독자가 벌써 10만 명이다.



 책은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1870~1937)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이 낯선 심리학자의 주장 한마디, 한마디에 한국 사회가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岸見一<90CE>)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古賀史健)가 아들러 심리학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 『미움받을 용기』는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간된 이후 각 서점 종합 판매 순위 1~3위 자리를 줄곧 지키고 있다. 인문학 서적 중에서는 부동의 판매 1위다. 『미움받을 용기』가 인기를 끌면서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버텨내는 용기』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올해에만 세 권의 아들러 관련 책이 등장했다. 이미 지난해에 아들러 관련서 10여 권이 나왔다.



 심리학계에서 아들러는 지크문트 프로이트, 카를 구스타프 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인간관계론』의 데일 카네기,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스티븐 R 코비 등의 사상에도 아들러 심리학이 녹아 있다. 그런데도 그는 국내 독자들에게 여전히 생소한 이름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다소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프로이트나 융의 심리학과 달리 아들러 심리학은 지극히 단순하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두 심리학자에 비해 번역본이 많이 나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미움받을 용기』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버텨내는 용기』 등을 펴내며 ‘아들러 전도사’를 자처한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20여 년간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한 전문가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기록으로 남긴 건 플라톤이었다”며 “나는 아들러에게 있어 플라톤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왜 하필 지금, 사람들은 아들러를 읽는가에 대한 답은 아들러 심리학이 던지는 몇 가지 키워드에 있다. 아들러는 독자들에게 ‘사람의 모든 고민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는 간단한 명제를 던진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는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거기서 생기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이 모두의 과제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을 느끼고 이를 보상하려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생활 양식을 만든다. 하지만 건전한 열등감은 타인과 비교해 생기는 것이 아닌, ‘이상적인 나’와 비교했을 때 생기는 것이다. 기시미는 “아들러의 가르침은 매우 선진적이어서 시대를 1세기가량 앞서 있다고들 이야기한다”며 “비상식의 집대성이라는 평가도 받지만 그의 심리학은 요즘 시대에 용기를 갖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싫어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고,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는 거기에 개입할 수 없다.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가는’ 노력은 할 수 있지만 물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는 그 사람의 과제다. 이처럼 아들러는 나에게 주어진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고 조언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다시 좋아하는 것도 그 사람의 과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아들러는 이 ‘과제의 분리’ 개념이 인간관계의 첫 입구라고 봤다. 인간관계에서 내 영역이 아닌 부분은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 그것이 아들러가 말하는 ‘미움 받을 용기’다. 개인의 주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그의 심리학은 ‘개인 심리학’이라고 불린다. 기시미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할 몫”이라고 설명했다.



 『미움받을 용기』를 감수한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은 추천사에서 “일상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페이스북의 ‘좋아요’나 트위터의 ‘RT(리트윗)’를 죽어라 누르며 ‘싸구려 인정’에 목매어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귀담아들을 만하다”고 꼬집는다. 인정받는 데만 혈안이 돼 있으면 인간관계의 카드는 언제나 남이 가질 수밖에 없다는 아들러의 지적에 독자들은 허를 찔린다.



 아들러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가 여타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난 더 잘할 수 있어’ ‘더 강해질 수 있어’ 등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 긍정의 언어들을 아들러는 부정한다. 할 수도 없으면서 무책임하게 내뱉는 자기 긍정이 아닌, 내가 60점짜리 인간이든 80점짜리 인간이든 수용할 수 있는 자기 수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꾸지 못할 것들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라. 중요한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다’. 12년차 직장인 김중현(40)씨는 “그동안 마음을 다스리려 수많은 심리학 책을 읽었지만 나의 마음을 정확히 꼬집은 책은 아들러가 처음이었다”며 “아직 상사 앞에서 미움 받을 용기는 생기지 않았지만 책을 읽을 때마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는 기분을 맛본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들러의 심리학은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용기를 내는 건 결국 본인의 몫이다. 스무 살이 넘도록 두발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한 남성이 있다. 이 남성은 말한다. “어렸을 때 형이랑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자전거 타는 게 두려워요.” 아들러는 ‘어릴 적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기억이 트라우마가 돼 이 남성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경험론을 부정한다. 단지 남성은 ‘자전거를 타기 싫어서’ 변명거리를 댄 것뿐이다. 사람은 경험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행동 목적에 따라 경험을 취사선택한다는 것. 아들러의 ‘목적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러는 “사람이 변할 수 있는 ‘용기’만 낸다면 언제든 스스로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인가,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인가’.



 ‘진정한 자유란 타인의 미움을 받는 것이다’ ‘행복해질 수 있는 용기를 내라’ ‘지금, 여기를 춤추듯 살아 가라’…. 아들러의 이야기들은 곱씹다 보면 심리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이 아닌, 잠언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들러를 평가하는 시각은 극과 극을 달린다. 혹자는 국내에서 부는 아들러 열풍이 짧은 신드롬에 그칠 것이라고 말한다. 이나미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갑을 관계 등 부적절한 인간관계 문제가 이슈화된 한국 사회와 아들러의 심리학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모든 고민이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본 아들러 심리학은 복잡다단한 인간 심리를 한쪽에 치우친 시선으로만 본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귀 교수는 “아들러는 외국의 수많은 심리학 석학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주목해야 할 건 지금 아들러를 원하는 우리 사회의 니즈(needs)”라고 말했다. 아들러 열풍이 잠시의 신드롬이든, 아니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결핍돼 있는 부분을 100년 전 오스트리아의 한 심리학자가 정확히, 그리고 아프게 찔러 낸 셈이다.







[S BOX] 열등감이 키운 ‘아들러 심리학’… 프로이트에 등 돌린 이유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열등감을 극복하라’는 아들러 심리학의 뿌리는 그의 어릴 적 경험과 맞닿아 있다.



 아들러(사진)는 1870년 일곱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뼈가 변형되는 질환인 구루병을 앓았다. 못생긴 외모에 행동도 굼떴다. 형과 동생들에게 가려져 부모의 관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신체 건강하고 공부까지 잘하던 형 지그문트를 보며 늘 열등감을 느꼈다. 모범적인 형의 그늘에 자신이 늘 가려져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훗날 부유한 사업가가 된 형에게 아들러는 이렇게 푸념했다고 한다. “우수하고 근면한 형은 언제나 내 앞에, 의연히 내 앞에 있었다.” 왜 그가 인간의 심리 중에서도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수긍할 만한 대목이다.



 자신이 아무리 기를 써도 형처럼 될 수 없다고 깨닫게 된 아들러는 동생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의대를 졸업하고 안과 의사가 된 아들러는 눈이 나쁜 사람일수록 독서가가 되려는 보상심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것을 사람이 자신의 열등성을 극복하려는 심리로 해석했다. 이 심리가 흥미로워진 아들러는 정신과전문의로 전공을 바꾼다.



 그러다가 정신분석학의 거장 프로이트를 만나 처음 심리학에 입문했다. 하지만 자신의 심리학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대거 부정하게 됐고, 이후 두 사람은 심리학계에서 영영 결별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프로이트는 아들러의 형 지그문트와 이름이 같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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