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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칠순 앞둔 소설가, 우리 뜨거웠던 젊은 날

중앙일보 2015.02.07 00:02 종합 23면 지면보기
쪽배의 노래

김채원 지음, 문학동네

340쪽, 1만3000원




왕년의 소설 독자들에게 반가운 이름, 김채원(69)씨가 무려 11년 만에 펴낸 소설책이다. 표제작 ‘쪽배의 노래’를 포함해 멀게는 2002년부터 가깝게는 지난해 말까지 발표한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김씨의 소설은 자전적인 색채가 짙다. 바깥 세상보다 내면의 풍경을 그리는 경우가 많아서일 것이다. 인물의 미세한 심리 변화, 기억의 조각들, 생생한 감각 체험 같은 것들은 스스로의 경험이 아닌 다른 데서 오기 어렵다. 더구나 그의 소설에는 실제 김씨와 나이나 하는 일이 비슷한 화자가 등장하곤 했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인생의 모든 골목길을 두루 경험한 노년의 화자가 지나간 세월,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하지 않아서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일들을 고즈넉이 되씹어 보는 장면이 많다. 칠순을 앞둔 요즘의 김씨가 꼭 그럴 것 같다.



 ‘서산 너머에는’의 육순이 가까운 화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을 막거나 뚫을 길이 없어 사람들은 그저 되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인생을 자조한다. ‘등 뒤의 세상’의 여성 주인공은 몸은 비록 철 지난 해수욕장처럼 돼버렸지만 과거 강렬했던 섹스의 감각을 여전히 생생하게 떠올린다.



 ‘누가 빨강 파랑 노랑을 두려워하는가’는 소설집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읽힌다. 정년퇴임하자 짐 싸서 집을 떠난 남편을 둔 옥교는 아파트 놀이터 놀이기구들의 강렬한 색감에서 자아의 환영을 느낀다. 그는 사회학이나 통계 수치로 일반화되기 일쑤인 표준적인 인생 행로를 못 견디는 사람이다. 어쩌면 옥교는 지금과 다르게 살 수도 있었다. 부모가 집을 비운 어린 시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내키는 대로 장난쳤던 것처럼 훗날 인생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옥교는 한밤 중에 몰래 일어나 놀이기구를 새로 색칠하기로 한다. 억압을 떨치고 기존의 자아의 환영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다.



 소설책은 그런 도발을 꿈꾸는 사람들, 인생 쪽배들의 이야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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