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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팬클럽 '정모'에 가다

중앙일보 2015.02.06 10:16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가 EP 손익분기점으로 데뷔한 1997년 모습. 왼쪽부터 장영규, 백현진, 원일. 다음 앨범부터 타악지 주자 원일은 탈퇴했다. [중앙DB]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앨범. [김중기 기자]




#시작

아이돌만 팬클럽 '정모(회원들의 정식 모임)' 하니? 인디밴드도 한다.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이하 어어부)'의 팬이었던 기자가 12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봤다.



#2003.12.20 팬클럽

꿈에도 몰랐다. 팬클럽 정모에 기자(당시 학생)까지 단 두 명이 나올 줄이야. "이게 전부인가요?" 어어부 카페 정모를 그렇게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나는 홍대 앞을 어어부 남성 팬 둘이서 배회했다. 카페장은 어어부 보컬 백현진과 가봤다는 생선구이집에 기자를 데려갔다. "넌 무슨 곡을 좋아하니, 난 무슨 곡을 좋아해" "그 공연에 가봤니" 그런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우린 정종을 마셨다. 술은 원래 쓰다. 두 시간도 안 돼 모임은 끝이 났다. 팬클럽 게시판에는 "고등어 구이가 압권"이라고만 썼다. 다른 회원이 무척 부러워했다. 단 두 명이서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는 건 밝히지 않았다. 카페에 들어가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발길을 하지 않은 날이 이틀, 사흘 그게 한 달이 되고 수 년이 되었다. 난 미완성 팬이었다. 덜 된 팬이었다.



#2000.12.25 크리스마스

'타이거 마스크' 송광호의 울트라 썬더 파워 붐! 뒤로 쿵짝 쿵짝 쿵짝 어어부 노래가 흘러나왔다. 영화 '반칙왕'(2000, 김지운 감독)의 음악을 어어부가 만들었다. 입대 한 달여 만에 처음 허락된 TV 시청, TV에선 영화 반칙왕이 나왔다. 옆에는 K-2 소총 거치대. 크리스마스 신병교육대 내무반에서 이 영화를 봤다. 행군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곡이다. 머리를 박박 민 훈련병 관객들이 4열 종대 마룻바닥에 앉아 '울트라 썬더 파워 붐, 울트라 썬더 파워 붐'을 외쳤다. 아, 민간 사회의 향기는 달구나.



#2010. 10.05 생일선물

부장에게 깨진 날이었나. 생일은 아니었지만 A선배가 미리 생일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팍팍한 직장 생활 중에 위로가 되는 유독 쿵짝이 잘 맞는 사람이었다. 나는 말했다. "어어부 새 앨범이 나온대요, 그걸로요." 그전에 어어부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앨범을 그해 안에 낸다고 했었다. 하지만 앨범은 감감무소식. 나온다 나온다 소문만 무성할 뿐 생일이 지났는데도 안 나왔다. "생일 선물, 어떡하지?" 선배의 물음에 "언젠가는 나오겠죠"라고 답했다.



#2015.1.21 약속

"너 또 오늘 본다는 약속 까먹었지?" 야근을 마무리하고 달리고 달려 A선배와 오랜만에 술자리에 갔다. 선배는 슬그머니 CD 하나를 꺼냈다. 지난해 12월, 14년 만에 어어부 정규 앨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이 나왔다. "잊지 않으셨네요." 선배는 5년 전 약속을 기억했다.



어어부 앞에는 종종 아방가르드 팝밴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다른 그룹과 음악적으로 묶기 어렵다는 뜻이다. 어어부는 다양한 결을 가진 밴드다. 세상이 음악이라면 명동 순댓국집, 종로 창신동 봉제공장, 서울 2호선 시청역을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어어부의 음표다.



어어부 팬클럽 카페에 다시 들어가봤다. 정모 사진이 올라와 있다. 사람들은 그때보다 훨씬 많았고 흥분돼 보였다.



#맺음

어어부 새 앨범은 나그네라는 사람이 1년 동안 쓴 메모를 컨셉트로 한 앨범이다. 종이 뭉치에서 뽑아낸 X월 X일 메모가 곡 하나가 된다. 날짜 순서는 뒤죽박죽이고 의미는 알 수 없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26일부터 공연을 한다.



※'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는 팬의 입장에서 쓴 대중음악 이야기입니다.



[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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