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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직의 바둑 산책] "훌륭한 문장서 감동 받듯, 이세돌 바둑 보면 아름다움 느껴"

중앙일보 2015.02.05 00:03 종합 23면 지면보기
소설가 성석제가 바둑과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글도 바둑도 집중을 위한 좋은 도구라
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문단 최고수 소설가 성석제
글·바둑 닮은 점은 집중과 관찰
좁은 데 매이지 말고 멀리서 봐야
반상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 경험

고대에 문자는 점토와 돌에 기록됐다. 그 때문일까. 바둑과 문학은 예로부터 가까웠다. 중국과 조선의 문인은 바둑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는 혼인보(本因坊) 슈사이(秀哉·1874~1940) 명인의 은퇴기를 바로 옆에서 관전하고 이를 소설 『명인』 속에 녹여냈다.



 1960~80년대 한국에서도 그랬다. 시인 신동문(1928~93)·박재삼(1933~97), 소설가 김성동(68) 등 많은 문인이 바둑 글을 썼다. 80년대 말 서울 청진동엔 소설가 천승세(76) 등이 직접 차린 한돌기원도 있었다. 원고도 쓰고 바둑도 뒀다. 지난달 26일 소설가 성석제(55)를 만났다. 그는 문단의 최고수로 꼽힌다. 강한 1급으로 프로에게 2점 놓는 치수(置數)다. 잡지에 관전기도 썼다.



소설가 김성동, 시인 박재삼, 소설가 천승세씨(왼쪽부터). [김상선 기자]


 - 문학이 바둑의 내면을 표현해 왔다. 하지만 요즘엔 맥이 좀 끊긴 것 같다.



 “ 세상이 변했다. 관철동 한국기원 시절(1968~94)엔 일반회원실에 문인이 많았다. 바둑이 바둑TV와 인터넷으로 들어가고 제한시간이 짧아져 기록문화가 변한 탓이다.”



 -관전기도 썼는데.



 “예전에 동양그룹에 다닌 적이 있다. 동양증권배 세계대회가 있어 한국기원과 인연을 맺었다. 관철동 뒷골목에서 술도 마시면서 바둑계의 기운을 몸으로 적셔봤다.”



 -바둑과 문학의 닮은 점은.



 “둘 다 오래된 것이고 깊고 아름답고 넓어 끝이 없는 세계다. 둘 다 삶을 이해하고 성숙하게 하는 좋은 도구다.”



 -어려서 바둑을 배웠다고 들었다.



 “까만 바닷가 돌과 깨진 조개로 만든 백돌이 기억난다. 손에 잡히는 감촉. 그 다음에 형이 사기로 만든 바둑돌을 바둑판과 함께 사왔다. 문명의 보고(寶庫)를 본 듯했다.”



 -바둑이 아이에게 미친 영향은.



 “재미와 실력 향상, 그리고 어른과 만나는 일이 있었다. 재미있게 공부하는 것, 그건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노력의 안팎을 자연스레 겪어봤다. 나이 많은 형들과 두면서 그들의 정신세계를 엿본 것도 고맙다. 바둑을 두면 같이 두는 어른들이 존중해 준다. 어린 시절 받았던 존중감은 중요했다.



 -문학은 세상을 표현한다. 바둑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까.



 “훌륭한 문장은 참으로 아름답다. 슬프도록 불필요한 언어가 없다. 김소월(1902~34), 백석(1912~96), 서정주(1915~2000)…. 이분들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다. 바둑도 좋은 바둑은 형상이 경제적일 것이다. ‘깨끗한 수순’ 그런 표현이 있잖은가.”



 -예를 들어 달라.



 “일흔 넘은 어느 분이 말했다. 이세돌이나 정상급의 바둑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하지만 하수들의 바둑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게 있다 싶다. 높은 차원의 정신세계를 밝힌 문학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느낀다. 때론 어려워 20대에 이해하지 못한 것을 50대에 찾기도 한다. 마치 적금을 탄 것 같다.”



 -바둑과 문학, 뭐가 닮았나.



 “바둑에 도(道)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잘 모르겠다. 괴테나 발자크, 톨스토이를 보자. 그들의 문학에서 도와 종교가 탄생하기는 힘들다. 바둑과 문학이 비록 아름다움과 정신의 차원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해도. 문학은 희로애락을 갖고 전인(全人)을 지향하는 입장에 가깝다.”



 성씨는 바둑의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문학에서도 바둑에서도 집중이 필요하다. 느슨함이나 긴박함도 집중의 다른 표현이다. 문학도 바둑도 집중을 경험하기 위한 좋은 메커니즘”이라고도 했다.



 -삼성화재배 우승자 김지석(25) 9단은 우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고 했다. 중국 랭킹 1위 스웨(時越·23) 9단도 고전을 읽으면서 평상심을 닦는다고 했다.



 “의식의 전환이다. 우린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것을 인식한다. 그 때문에 좁은 데 매이면 나오는 게 없다. 문학에서는 관찰이 중요하다. 멀리서 바라봐야 한다. ”



 -바둑의 미래를 그려본다면.



 “기존에 내려왔던 수도자 이미지는 곤란하다. 페이스북(face book)이나 트위터(twitter) 같은 소셜 미디어도 적극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일종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도 했다.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같은 속성이 있다.”



 -바둑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현대바둑의 창시자로 불리는 우칭위안(吳淸源·1914~2014)의 기보집을 본 적이 있다. 큰 상상력을 느꼈다. 경외감이 들었다. 돌을 놓아보면서 우주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그 느낌이 반상(盤上)에 구체화되는 과정이 좋았다. 문학이 그렇듯 바둑도 애면글면해서는 안 된다. 즐거움은 훨씬 넓은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글=문용직

사진=김상선 기자



◆성석제=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8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소설 『투명인간』 『이 인간이 정말』 『위풍당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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