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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건보 원칙 없는 뒤집기 … ‘증세 없는 복지’ 깨라

중앙일보 2015.02.02 00:58 종합 3면 지면보기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열세에 몰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경제민주화와 ‘증세 없는 복지’였다. 보수진영 후보가 진보 이슈를 선점하자 전세는 역전했다. 취임 후에도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국정 난맥 풀자] 정책 혼선
경기 침체에 복지 재원 줄어들자
건보료 개편안, 지방세 인상안 등
‘꼼수 증세’ 논란에 잇따라 후퇴
“누가 정부 믿겠나” 불신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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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면엔 경기 회복에 대한 오판도 자리 잡고 있었다. 2013년 1분기 2.1%였던 경제성장률은 4분기 3.7%로 회복됐다. 양적완화 정책에 힘입어 미국 경기도 살아나고 있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대로 떨어져 1년여 바닥을 기고 있었지만 한국은행조차 경기를 낙관했다. 그러자 1기 경제팀은 경제민주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정종섭(左), 문형표(右)
 2013년 8월 발표된 세액공제 방식의 세법개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오석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소득층에 유리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14년 들어 경기가 눈에 띄게 꺾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세수에도 구멍이 뚫렸다. 2013년에만 8조5000억원의 세수 결손이 생겼다. 애당초 비과세 감면 축소나 지하경제 양성화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조였다. 설상가상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소비가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경기회복세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세수도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불가피해졌다. 2013년 1%대로 떨어진 저물가 기조가 2년째 이어지자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됐다.



 그러자 박근혜 대통령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강력한 경기부양론자인 최 부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부동산 규제를 푸는 등 과감한 부양책을 쏟아냈다. 전통적 처방으로 보면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세금 인상보다는 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증세 없는 복지’라는 대통령의 공약이 발목을 잡았다. 복지 지출을 감당하자면 세수 확보가 불가피했다.



  부양론자인 최 부총리가 취임 후 소득세제 개편안을 건드리지 않은 건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초부터 세 부담이 늘어나는 근로자가 많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정부는 이를 애써 무시했다. 오히려 담뱃세를 올리고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계획을 추진했다.



 경기가 좋을 때라면 몰라도 디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양립하기 어려운 구호다. 그렇다면 상황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알리고 이해를 구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론 ‘거위의 깃털’을 뽑아놓고도 아니라고 발뺌을 하다 연말정산 후폭풍으로 국민 여론이 폭발했다. 그러자 이번엔 원칙 없는 철회 소동이 벌어졌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연말정산 파동이 한창인 지난달 25일 언론인터뷰를 통해 “주민세와 지방세 인상에 십자가를 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자부는 그날 밤 보도자료를 내고 이를 철회했다. 1년 반 동안 준비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은 발표 이틀을 앞두고 백지화됐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자 청와대가 나서 “백지화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검토한다”고 해명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장관의 말이 하루를 가지 못하고, 1년 반 동안 준비한 개편안을 꺼내보지도 못하는 형국이 됐다. 정부 정책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의 정책은 정치적인 속성이 있지만 반드시 제도적인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정부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부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당장 시급한 구조 개혁의 동력도 떨어졌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올해는 선거가 없는 구조개혁의 적기인데 정부의 신뢰도가 추락했다. 공무원연금이나 노동시장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이 있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세종=김원배 기자,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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