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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갈라파고스 고용정책’

중앙일보 2015.02.02 00:41 경제 4면 지면보기
모 정유회사 인사담당자는 최근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7월 고용형태공시제가 도입됐다. 회사가 직접 고용한 근로자와 사내에서 일하는 다른 회사 소속 근로자의 수를 공표하는 제도다. 정부는 “기업별 고용현황을 대외에 알려 기업 스스로 비정규직 사용을 줄이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자 이 정유회사 관계자는 “장치산업은 3~4년마다 전문 정비업체에 의뢰해 대대적인 설비·안전정비작업을 한다. 따라서 3~4년 주기로 소속 외 근로자가 대폭 늘어나게 된다. 그때마다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회사라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걱정된다”고 울상을 지었다.


지난달 발표한 안전공시제도
시행 중인 고용공시와 정반대
“기존 제도 효과 검증되기 전
다른 정책 쏟아내 혼란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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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번엔 정반대 정책이 도입된다고 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산업안전보건 종합대책에 담긴 ‘안전보건공시제’ 때문이다. 안전보건 투자금액, 안전장비 현황과 같은 산업안전에 관한 기업의 경영 내역을 공표하는 제도다. 설비·안전정비작업을 할 때마다 정유회사의 안전투자액이 확 올라간다. 3~4년마다 고용형태공시제로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안전공시제로는 박수를 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거꾸로 정비작업이 없는 해에는 전년 대비 안전투자가 미비한 기업으로 낙인 찍히는 대신 소속 외 근로자는 확 줄어든 우수기업으로 칭찬받을 수 있다. 두 제도 모두 국내에만 있다. 모 기업 임원은 “정체불명의 제도가 쏟아져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헛갈린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보다 그저 국내여론만 쫓는 경영을 하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갈라파고스형’ 고용정책이 속출하고 있다. 외국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거나 국내 노동시장과 맞지 않는 기형적 정책들이다. 있는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거나 활용하지 못하자 또 다른 정책을 도입해 시범실시 하는 실험형 이중규제도 수두룩하다.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된 가사근로종사자 보호방안이 대표적인 예다. 이 정책은 정부 인증을 받은 인력중개기관을 통해 가정에 가사근로자를 공급하자는 취지다. 가정과 가사근로자 간에 현금거래로 이뤄지는 정산방식을 가사서비스이용권(바우처)으로 대체하는 내용도 있다. 정부가 지정한 가사서비스이용권 발급기관으로부터 바우처를 구입한 뒤 이를 중개기관에 주고 가사근로자를 공급받는 형태다. 이를 통해 가사근로자 공급구조를 전면 개편하고, 4대 보험을 비롯한 근로기준법 혜택을 가사근로자에게도 주자는 게 정부 구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정부관계자는 “가정에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을 들이대는 걸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정부 구상대로라면 가정은 근로자를 파견 받는 업체가 되는데, 파견법과의 충돌은 또 어떻게 조정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근로자 입장에서도 소득이 노출되면 쥐꼬리 같은 월급에서 4대 보험료에다 세금까지 다 내야 하는데, 사실상의 증세인 이런 제도를 수용하겠는가”라고 덧붙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란 얘기다.



 시간제 근로자 차별 시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도록 한 제도는 한국과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 적용된 적이 없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1992년 이런 형태의 집행을 승인하지 않았다. 일본 도쿄고등법원도 민사상의 행위에 형사법을 적용한 건 법체계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현재 우리 민법도 실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이상헌 연구조정관은 “일자리 정책은 하나씩 쌓아야지 덮어놓고 뿌리면 안 된다. 효과를 보거나 검증되기 전에 또 다른 정책을 우후죽순처럼 내놓는 바람에 고용시장을 혼란케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존 제도를 제대로 안착시키고, 국제규범이나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긋나는 불합리한 제도는 정비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사용하지 않은 연차휴가를 돈으로 보상(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은)하는 제도는 ILO나 유럽연합(EU) 에서 금지하고 있다. 장시간 근로를 막기 위해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사회정책본부장은 “근로시간 단축도 중요하지만 실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잘못된 제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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