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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살이 꽃처럼 … “단단한 놈은 예전부터 쌀 한 가마값”

중앙일보 2015.02.02 00:20 종합 20면 지면보기
얼음물에 5분쯤 넣었다 건져낸 대게 다리 회. 뭉쳐 있던 살이 올올이 펴지면서 눈꽃처럼 피어올랐다.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프리랜서 공정식]
조리사는 익숙한 솜씨로 대게 다리 껍질을 벗겼다. 드러난 하얀 속살을 우묵한 접시에 채운 얼음물에 담갔다. 그러곤 말했다. “5분쯤 뒤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세요.”


[맛있는 월요일] 회로 먹는 대게
뱃사람 별미 10년 전부터 메뉴로
허물 채 안 벗은 홋게 회 최고로 쳐
식당 170곳 늘어선 영덕 대게거리
구이·게장밥 등 다양한 음식 선봬
박달대게 1마리 요리 25만원까지
“노점서 파는 대게는 거의 물게”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기다려 보니 알게 됐다. 뭉텅이 졌던 게 다리 살이 풀리면서 눈꽃처럼 피어올랐다. 초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으니 찜보다 한층 부드러운 살에서 대게 특유의 냄새와 함께 단맛이 퍼졌다. 지난달 28일 경북 영덕군 강구항에서 만난 박복규(49·대구시)씨는 “얼마전 맛본 대게 회에 반해 오늘 다시 왔다”고 말했다.



 대게가 제철을 맞았다. 본고장인 경북 영덕군 강구항의 대게잡이는 11월부터 5월까지다. 그중에서도 절정이 12월 말~3월 초다.



 강구항에는 2013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음식 테마거리’가 있다. 대게 전문식당 170여 곳이 줄지어 섰다. 그중 가장 오래된 집이 ‘대게종가’다. 임점선(71) 할머니가 스물여섯 살 때인 1970년 100㎡(30평) 규모로 시작했다. 영덕에서 태어나 결혼한 임 할머니는 원래 부부가 낚시가게를 했다. 낚시꾼들이 밥 먹을 데가 없다고 호소해 생선회와 대게찜을 내놓는 식당을 아울러 운영하게 됐다.



 처음엔 냉동한 대게로 찜을 했다. 그러다 찾는 이들이 늘고 경쟁 식당이 생기면서 임 할머니네는 품질 올릴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궁리 끝에 대게가 사는 바닷물 온도인 섭씨 0~4도에 맞춘 수조를 만들었다. 그렇게 살아 있는 대게로 요리를 하기 시작한 게 약 40년 전인 7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임 할머니는 “당시만 해도 강구항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길에 우체국 하나, 식당 10여 곳이 전부였다”고 했다.



 대게 맛이 소문나면서 손님과 식당이 늘어갔다. 임 할머니네는 옛 자리를 친척에게 주고 현 위치인 영덕대게거리 입구에 3층 건물을 지었다. 식당을 확장한 것이었다. 은행 빚까지 얻어서 한 투자였다.



왼쪽부터 이름대로 게장과 밥을 볶은 게장밥, 대게 라면에는 홍합도 넣어 끓인다, 고소해 어린이들이 즐기는 대게 튀김.


 손님이 점점 늘더니 97년 강구항을 무대로 한 최불암·최진실 주연의 TV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가 히트하면서 찾는 이들이 급증했다. 결국 2000년대 초반 이곳은 대게거리를 따라 양옆으로 3층 건물이 즐비한 단일 음식 전국 최대 상가로 변신했다.



영덕군 강구항에서 45년간 대게 식당을 운영해온 임점선 할머니(가운데)와 아들들. 집게발의 분홍색 플라스틱은 ‘영덕산 박달대게’를 뜻한다.
 원조 대게요리는 찜이지만 이젠 메뉴가 다양하다. 대게 회는 10년쯤 전부터 선보였다. 임 할머니의 맏아들 배성준(46)씨가 가업을 이을 무렵이다. 배씨는 “일본에선 대게 회가 널리 퍼졌고 뱃사람들도 이미 먹던 것을 손님들에게 내놓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집들이 비슷한 시기에 대게 회를 선보였다고 한다.



 대게구이도 있다. 다리와 몸통의 한쪽 면을 자른 뒤 드러난 속살에 양파·파프리카 등을 올리고 치즈와 버터를 발라 굽는다. 재료와 조리법 때문에 ‘대게 피자’라고도 불린다. 게 껍질 속에 밥을 넣고 볶은 뒤 깨소금을 뿌려 내는 게장밥, 라면에 쑥갓과 홍합을 넣고 대게 다리를 두세 개 올려 끓이는 대게 라면 등도 인기 메뉴다.



 대게 매니어는 주로 회와 찜을 먹는다. 대게를 시켜서는 다리 열 개 중 일부는 회로 주문하고 나머지 다리와 몸통은 쪄달라고 하는 식이다.



대게구이는 피자처럼 치즈를 얹는다(사진 위), 영덕 대게 요리의 원조격인 대게찜(사진 아래).
 대게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제일 비싼 건 속이 꽉 찬 ‘박달대게’이고, 제일 싼 건 ‘물게(또는 물렁게)’다. 허물을 벗은 지 얼마나 됐느냐에 따라 박달대게와 물게를 구별한다. 대게는 살면서 15번 정도 탈피를 한다. 허물을 막 벗고 큰 껍질로 갈아입은 상태에선 속에 살이 거의 없는데, 이게 바로 물게다. 박달대게는 허물을 벗은 뒤 한참 지나 껍질 속에 살이 꽉 찬 상태다. 살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게 들었다고 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지난달 28일 오전에는 강구항에서 오대호(47t)가 잡아온 대게 3000마리를 경매했는데, 박달대게 중에서도 큰 것은 한 마리에 17만원에 팔렸다. 잡아온 약 3000마리 중 박달대게는 200마리 정도였고 나머지는 물게였다. 살이 덜 찬 물게는 3000∼4000원에 경매됐다. 강구항 노점에서 파는 마리당 1만원 정도인 대게찜이 바로 이 물게로 만든 것이다.



 식당에서 내놓는 박달대게찜은 적어도 한 마리에 10만원은 줘야 한다. 큰 박달대게 요리는 마리당 25만원짜리도 있다. ‘대게종가’를 운영하는 임 할머니는 “70년대하고 지금하고 강구항 풍경은 확 바뀌었지만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최상품 박달대게 한 마리가 대략 쌀 한 가마 값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4인 가족이 한 끼를 즐기려면 10만원짜리 박달대게 세 마리는 필요하다.



 박달대게는 몸통을 눌렀을 때 단단하지만 물게는 물컹거리며 들어가고, 쪄낸 장이 박달대게는 황색 또는 녹색인 반면 물게는 먹빛을 띠는 게 차이다.



 대게에는 ‘홋게(또는 홑게)’도 있다. 속에 얇은 새 껍질은 생겼는데 아직 허물(원래 껍질)을 벗지 않은 대게다. 뱃사람들은 이 홋게 회맛을 최고로 친다. “한번 맛 들이면 꿈에도 홋게 다리가 보일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어획량이 워낙 적어 관광객들이 홋게를 보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영덕=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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