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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요리 좀 해줄래요? 손님이 원하는 메뉴 즉석에서 '뚝딱'

중앙일보 2015.01.30 01:11 Week& 7면 지면보기



[week&맛] 다양한 요리 선보이는 심야식당













늦은 겨울 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쌀쌀한 밤 잠은 오지 않고’, 누군가가 정성들여 만든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진다. 여기에 향기로운 술 한 잔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 둘이라도 좋고, 혼자라도 좋다. 심야에 문을 두드려도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 원하는 음식을 요청하면 없는 메뉴도 만들어 주는 곳,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넷이 되기도 하는, 일본 만화『심야 식당』같은 식당은 없을까. 만화 『심야식당』과 같은 듯 다른, 한국의 심야식당을 소개한다.



뢰스티를 재해석한 ‘스위스 감자전’. 먹기 직전에 직원이 직접 치즈를 갈아 전 위에 뿌려준다. [심야식당 시즌2 주바리 프로젝트]
이태원동 ‘심야식당 시즌2 주바리 프로젝트’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심야식당 시즌2 주바리 프로젝트’는 인근에서 탁자 3개를 놓고 저녁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하던 ‘원스 키친’이 확장 이전한 곳이다. 메뉴판에선 ‘만화와 연관 없음’이라고 쓰여 있지만 이곳은 두 가지 면에서 만화 『심야식당』과 닮았다. 늦게까지 문을 연다는 점과 재료가 있는 한 손님이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권주성 셰프는 늦은 시간 문을 여는 이유에 대해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라고 답했다. “예를 들어 셰프들은 영업이 끝나면 갈 데가 주점밖에 없어요. 셰프니까 기왕이면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일이 힘드니까 술도 한 잔 걸치고 싶은데 막상 그들을 위한 공간은 없는 셈이죠. 또 동대문에서 오전 3시까지 영업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분들은 아무리 빨리 와도 4시에나 옵니다. 이런 손님을 위해서는 마감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영업을 합니다. 이곳은 그 시간에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니까요.”



보통 늦은 시간 문을 열면서 술을 파는 곳의 음식은 ‘요리’라기 보다는 ‘안주’에 가깝다. 맵고 짜고 자극적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칭 타칭 ‘여행하는 요리사’로 통하는 권 셰프는 ‘요리’에 무게를 둔 음식을 선보인다. 그는 지금까지 22개국 100여 개의 도시를 다니며 다양한 요리를 경험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퓨전 요리를 개발했다. 태국식 똠양꿍과 일본의 돈코츠라몐의 육수를 결합한 형태의 ‘이태원탕’, 스위스 루체른에서 먹었던 뢰스티를 재해석한 ‘스위스 감자전’ 등이다. 한라산 소주 1에 태국의 창 맥주를 4의 비율로 섞은 ‘창라산’ 등 술 역시 평범한 것을 거부한다.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지만 원하는 사람에게는 본인이 원하는 걸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단골인 교수 한 명이 어느 날 혼자 냄비를 들고 식당을 찾아와서 “스끼야끼(일본식 소고기 전골)를 해 줄 수 있겠느냐. 어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요리인데 오늘따라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평소 농담을 잘하는 유쾌한 성격이었던 그 교수는 이날따라 아무 말 없이 스끼야끼만 먹고 갔다고 한다. 권 셰프는 “지금은 어머니가 직접 스끼야끼를 해 주실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서 더는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치 만화 『심야식당』에 나오는 ‘감자 샐러드’편이 연상되는 일화다. 만화에선 어머니와 절연한 후 어머니가 해주던 추억의 맛을 잊지 못해 늘 심야식당에서 감자 샐러드를 먹는 남자 이야기가 나온다.

 

정발산동 ‘부부 0325’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의 한가로운 주택가에 자리 잡은 ‘부부 0325’는 이름 그대로 셰프이자 푸드스타일리스트인 박정윤·김근애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숫자 0325는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의미한다. 결혼기념일을 가게 이름으로 정할 정도로 금슬 좋은 부부가 늦은 시간(오후 5시~새벽 2시)에 가게를 운영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박정윤 셰프의 막걸리 사랑 때문이다. 홍익대 인근에서 5년 정도 막걸리 집을 운영한 적이 있는 박 셰프는 ‘장인들이 일생을 바쳐 만든 막걸리에 스토리텔링을 입히겠다’는 각오로 지금의 가게를 차렸다. 전국 팔도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다 보니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과, 손님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가게 벽면에 메뉴뿐 아니라 음식에 사용하는 식재료, 손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분필로 가득 써놓는다. 이를 본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와 대화하게 된다.



막걸리 못지 않게 신경 쓰는 부분이 제철 음식이다. 철에 따라 그날 재료의 신선도에 따라 그때그때 메뉴가 바뀐다. 돼지고기는 지리산 흑돼지인 ‘버크셔K’ 품종을 사용하고, 해산물은 어부에게 직접 구매한다. 계란은 자연방사 유정란만을 고집하고, 두부는 김포의 콩세알 두부를 쓴다고 한다. 최근에는 굴이 제철이라 통영에서 온 굴로 굴보쌈이나 파래굴전(사진)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곳 역시 손님이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을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 손님이 고래 고기나 굴 등을 들고 와 요리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요리는 가게에 온 다른 손님과도 함께 나눠 먹는다. 자연스럽게 손님들끼리 어울리며 분위기가 무르익다 보니, 모르는 사람끼리 각각 혼자 왔다가 친해지기도 하고, 친구로 와서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곳이 젊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 것만은 아니다. “단골 중에 인근에 사는 80대 노부부가 있습니다. 늘 손을 잡고 와서는 ‘오늘은 뭐가 좋아요’라고 물어보세요.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감동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만화『심야식당』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87세의 오사와씨와 83세 부인은 늘 심야식당에 와서 한 그릇의 ‘닭고기 소보로밥’을 나눠 먹는다. 부인이 볶은 달걀 부분을 먹고 나면, 남편이 닭고기 소보로를 먹는다. 가게 주인이 ‘달걀과 닭고기 소보로를 따로 따로 드릴까요?’라고 묻지만 이들은 싫다고 한다. ‘그게(한 그릇을 나눠 먹는 것) 좋다’는 이유에서다.





망원동·역삼동 ‘카도야’



일식당인 카도야는 2010년 9월 망원동에서 문을 열었다. 일본의 유명 요리학교인 츠지 조리사전문학교 출신의 3명의 셰프가 함께 차린 곳으로 나머지 두 셰프는 각자 일식당을 차려 나가고 이경호 셰프가 망원점과 역삼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저녁 7시에 문을 열어 2시에 문을 닫는다. 이 셰프는 “다른 곳에는 없는 메뉴를 선보이고 싶어 심야 영업을 택했다”며 “점심에 영업을 할 경우 기본적인 식사 메뉴를 제공해야 해서 우리 가게만의 메뉴를 선보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셰프의 이런 철학 덕분에 이곳은 일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일식(?)을 먹을 수 있다. 대표적인 메뉴가 ‘간장 게장 사시미(사진)’. 간장 게장에 광어회·날치알, 새싹 무순, 잘게 썬 실파, 말린 단무지 다진 것,김 가루 등을 한데 버무려 먹는 요리다. 간장 게장에 사용되는 게는 제철인 6월에 충남 서산에서 잡힌 게를 급랭해 사용한다.



만화 『심야식당』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눈 오는 날 ‘마스터’는 “오늘은 크림 스튜로군…. 오랫동안 이런 장사를 하다 보면 왠지 그런 감이 생기는 법이거든”이라고 중얼거리며 크림 스튜를 만든다. 이 셰프 역시 오는 손님들을 보면 그런 ‘감(感)’이 온다고 한다. 이 셰프는 “저기 앉아 있는 저 손님은 튀김을 좋아하죠. 기분이 안 좋을 때 특별한 튀김을 만들어 드리면 기분이 풀려서 돌아갑니다.” 그가 만들어 주는 튀김은 보통의 튀김이 아니다. 예를 들면 대구고니나 복고니를 김에 말아 튀기거나 게를 쪄서 살을 발라낸 뒤 크림 소스를 넣고 쌀피에 싸서 튀기는 식이다.



한국 기업의 일본지사에서 근무하는 김모(40)씨는 이런 이 셰프의 마음에 반해 단골이 됐다고 한다. 한 달에 3분의 2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그는 출장을 앞두거나 다녀올 때면 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는 “출장에서 지쳐서 돌아와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고 하면, 문어와 골뱅이를 싫어하고 도미와 참치를 좋아하는 내 식성을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뤄진 음식을 내놓는다”며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그 정성이 고마워 집 앞의 가게를 놔두고 굳이 20분을 걸어 이곳으로 오게 된다”고 말했다.



이 셰프는 “직원들에게 늘 ‘장사를 할지 요리를 할지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며 “다양한 손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다양한 요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만화『심야식당』



제목 그대로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심야에 영업하는 식당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은 만화. 공식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밖에 없지만 ‘마스터’로 불리는 이곳 주인은 만들 수 있는 선에서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만들어 준다. 손님은 음식을 먹으며 주인이나 주변 손님에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연을 풀어 놓고, 음식을 나누듯 이야기를 공유하며, 이를 통해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



글·사진=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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