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5년만에 무실점 6연승 눈물로 만든 짠물 축구

중앙일보 2015.01.30 00:24 종합 24면 지면보기
곽태휘


한국 축구대표팀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은 ‘공격을 잘하는 팀은 승리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수비를 중시하는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한국의 포백(4명의 수비수) 라인은 더욱 단단해졌다. 한국은 1990년 이후 25년 만에 A매치 6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31일 오후 6시 호주와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무실점으로 이기면 이 기록이 7경기로 늘어난다. 결승전은 오른쪽 수비 차두리(35·서울)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마지막 경기다. 다른 수비수 3명도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완벽한 우승’을 꿈꾸고 있다.

불운 딛고 일어선 수비수 3인
시각장애 이겨낸 곽태휘
고2 때 공에 맞아 왼쪽 눈 안 보여
축구 포기할 뻔한 김영권
축구화 살 돈 없어 막노동까지
주차장서 빈 캔 차던 김진수
축구부 회비 면제 받으려 새벽 훈련



 중앙수비 곽태휘(34·알 힐랄)는 사실상 한쪽 눈으로만 축구를 하고 있다. 곽태휘는 고2 때 축구공에 맞아 왼쪽 눈 망막이 손상됐다. 12시간 대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이 크게 떨어졌다. 결국 고등학교를 4년간 다니면서 재활을 해야했다.



 2012년 곽태휘와 함께 울산 현대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김호곤(64) 축구협회 부회장은 “태휘는 지금도 한쪽 눈은 뿌옇게 보이고, 사물의 형체만 알아볼 수 있다”고 전했다. 곽태휘의 아내 강수연씨는 “2008년 의사가 남편에게 ‘앞으로 운전하지 말라. 오른쪽 눈이 피로해져 축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를 했다. 그래서 내가 면허를 따서 대신 운전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시각장애를 이겨냈다.



김영권(左), 김진수(右)


 곽태휘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무릎 인대가 파열돼 낙마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주전경쟁에서 밀려 벤치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지켜봤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한풀이를 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경기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아시안컵 인터넷 홈페이지는 ‘조국을 4강에 올린 4명의 영웅’ 동영상에 곽태휘의 활약상을 담았다. 곽태휘의 미니홈피 문구는 ‘세상이 가끔 나를 힘들게 만들어도 나는 결코 지지 않는다’다.



 곽태휘와 최근 3경기 중앙수비로 짝을 이룬 김영권(25)은 중국 부자구단 광저우 헝다에서 10억원 이상의 연봉(수당 포함)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고교 시절 가세가 기울어 축구를 중단할 뻔 했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 김영권의 아버지 김성태씨는 당시 빚을 낸 돈으로 트럭을 사서 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했지만 형편은 더 나빠졌다. 아버지 김씨는 “트럭째 한강에 빠져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친척집에 맡긴 영권이에게 ‘축구를 그만두면 안되겠냐’고 말한 뒤 둘이 안고 펑펑 울었다”며 “당시 영권이가 축구화를 사기 위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축구를 계속하라고 허락했고, 나도 아들을 보고 일어섰다”고 전했다.



 김영권은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에서 4실점 하는 등 부진해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수비수로서 치욕적인 ‘자동문’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하지만 김영권은 이번 대회 문전에서 단단히 빗장을 쳤고, 이라크와 준결승에서 쐐기골까지 터트리며 부활했다.



 왼쪽 수비수 김진수(23·호펜하임)도 김영권처럼 가난을 딛고 일어섰다. 김진수의 아버지는 오토바이 택배를 했고, 어머니는 새벽일을 다녔다. 김진수는 “학창 시절 청바지 한 벌이 없어 트레이닝복과 교복만 입고 다녔다”며 “축구부 회비가 면제되는 장학생이 되기 위해 새벽에 주차장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고 공으로 캔을 맞추는 훈련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진수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뽑혔지만 출국 직전 발목 부상으로 낙마했다. 절치부심한 김진수는 지난해 6월 독일 호펜하임으로 이적해 주간 베스트11에 두 차례 선정됐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5경기(480분) 풀타임을 소화한 김진수는 8강과 4강에서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은퇴한 이영표(38)의 후계자로 불리고 있다.



 ◆케이힐을 봉쇄하라=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서 명수비수로 이름을 떨쳤다. 로타어 마테우스(54·독일)처럼 강인한 수비수였고, 시야와 득점력까지 갖춰 수비형 미드필더도 맡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끈끈한 수비를 한국 포백에 이식시켰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을 맡은 지 5개월밖에 안됐지만 수비는 8강전을 기점으로 안정을 찾았다. 다만 골키퍼와 수비수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호주 축구는 럭비처럼 거칠지만 기술을 갖췄고, 전방 압박이 좋다. 한국 수비의 경계대상 1호는 팀 케이힐(36·뉴욕 레드불스)이다. 아시아축구연맹 소속 국가 월드컵 최다골(5골) 보유자 케이힐은 이번 대회에서도 3골을 넣었다. 케이힐은 키가 1m78㎝로 크지는 않지만 미사일처럼 날아와 꽂는 헤딩이 주특기다. 한 위원은 “위험지역에서 프리킥을 내준다면 케이힐이 페널티 박스 밖에 있더라도 전담마크를 하는 한편 동선도 막아야 한다”며 “아울러 ‘케이힐 10명이 곳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호주는 이번 대회 득점자가 1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케이힐은 “우리가 보여줄 전술은 한국이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이 강하지만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포백이 케이힐을 꽁꽁 묶어야 55년 만에 우승컵을 품에 안을 수 있다.



박린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