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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반토막…현대차 박차고 나와 슈틸리케 그림자 된 남자

중앙일보 2015.01.29 11:00














호주 아시안컵 결승 진출을 이끈 울리 슈틸리케(61) 축구대표팀 감독 옆에는 분신 같은 존재가 있다. 벤치에서도, 기자회견에서도, 심지어 휴식날 초콜릿 상점에서도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 감독이 화내면 덩달아 버럭 하는 남자, 바로 통역 이윤규(30)씨다.



독일 출신 슈틸리케 감독은 현역 시절 스페인에서 8시즌간 활약해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그는 2008년부터 6년간 카타르 프로팀(알 아라비?알사일리야)을 지휘하며 축구 이해도가 높은 통역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한국 지휘봉을 잡자마자 통역(스페인어) 공개모집을 요청했고, 직접 면접까지 본 뒤 "마인드가 좋다"며 이씨를 택했다.



26대1 경쟁률을 뚫은 이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대기업 주재원으로 근무한 아버지를 따라 영국·스페인·브라질·독일에서 자란 이씨는 미국 인디애나주 퍼듀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했고, 4개국어(포르투갈어?스페인어?영어. 독일어는 축구용어 정도만)를 구사하는 인재다.



평소 축구를 워낙 좋아한 이씨는 2007년 전역 후 복학 전까지 포르투갈 프로축구팀 벤피카 마케팅팀 인턴을 했고, 2009년 피스컵 안달루시아 조직위원회에서 인턴을 했다. 2010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글로벌 인사지원팀 대리로 근무한 이씨는 사내 축구 동아리의 열성 멤버였다. 축구 에이전트 자격증을 땄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축구산업 아카데미 1기도 수료했다.



이씨는 2011년 현대자동차가 모기업인 프로축구 전북 현대에 요청해 1주일간 축구 관련 일도 체험했다. 김욱헌 전북 홍보팀장은 "이씨는 당시 여름 휴가까지 반납하고 열정적으로 일했다"며 "이후 2011년 알 사드(카타르)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 때도 자진해 통역을 도와줬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대표팀 통역 모집 공고를 보고 과감히 이직을 결심했다. 축구협회 계약직원이 되면서 그의 연봉은 반토막이 났다. 이씨는 통역 뿐 아니라 운전기사 역할까지 한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챙기는 수행비서 역할도 그의 몫이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

이재철 축구협회 홍보팀 대리는 "이씨는 별명은 인상이 강해 '앵그리 버드(늘 화가 나있는 새 캐릭터)'지만 싹싹하다"며 "축구를 전문가 못지않게 많이 안다. 슈틸리케 감독의 의도를 선수들에게 잘 전달한다"고 칭찬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척'하면 ‘척’하는 이씨는 아시안컵 결승행의 숨은 공신이다.



이씨는 "난 축구협회 지원스태프 중 한 명에 불과하다. 나보다 훨씬 더 고생하는 스태프들이 있는데, 감독님 옆에 있다 보니 홀로 주목 받는 것 같아 죄송하다"며 "모든 선수들을 엄마처럼 잘 챙기는 박일기 지원팀장?이한빛 매니저, 밤늦게까지 선수들을 치료해주는 황인우 의무팀장?공윤덕 최주영 트레이너?이동 때마다 몇 톤의 짐을 다 챙기는 차윤석 주임, 비디오 미팅을 위해 밤새 경기 영상을 편집하는 채봉주 분석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주방에서 고생하는 김형채 조리장, 인터뷰와 미디어 책임지는 홍보팀 조준헌 팀장?이재철 대리가 나보다 고생한다"고 겸손해했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연봉이 반토막 났는데도 이해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축구대표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어 뿌듯하다"는 이씨의 더 큰 꿈은 국제축구연맹(FIFA) 같은 국제 스포츠 기구에서 일하는 것이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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