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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겨울 나무] 휘고 굽어졌구나, 우리네 삶처럼

중앙일보 2015.01.29 08:38 Week& 1면 지면보기
운이 좋았다. 주목을 보고 싶어 태백산에 들었다가 장엄한 일출을 마주했다. 이미 죽은 주목이 새벽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다. 휘어지고 굽은 모양이 허구한 날 치이는 우리네 삶을 닮았다. 사진=안성식 기자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문득, 겨울 산이 그리웠다.



누군가 겨울 산은 황량하다고 했다. 겨울산에는 아무것도 없어 허한 가슴에 찬 바람만 불어온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잎사귀 우거진 여름 날의 산을 생각했던 것 같다.



겨울 산이 그리운 건, 겨울 나무가 사무쳐서였다. 한 사진작가는 겨울 산에 들어가야 나무가 보인다고 했다. 잎사귀 떨어내고 알몸이 된 나무가 자신을 닮은 것 같아 눈에 밟힌다고 했다. 풍진 세상에 맨몸으로 맞서는 제 신세가 강마른 겨울 나무에서 얼비친다고 했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글귀에 밑줄을 친 적이 있다. 작은 것에 매달리지 말고 전체를 조망하라는 가르침으로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한 그루 나무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 숲에 들어서도 나무의 거친 껍질을 어루만진다. 전체로 뭉뚱그려지는 세상이 이제는 싫다.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곁을 떠났다. 나이를 먹는 건, 혼자 남는 것이었다.



나무는 이미 하나의 전체다. 거대한 세상이고, 신성한 말씀이다. 나무 한 그루가 들려주는 먼 시간을 우리네는 감히 짐작하지 못한다. 나무 한 그루의 우주도 나에겐 벅차다.



겨울이 깊으면 늘 푸른 소나무도 생각나고, 붉은 꽃잎 터뜨리는 동백나무도 생각난다. 하나 눈 덮인 겨울 산을 올라 기어이 마주해야 하는 나무는 따로 있다.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 주목과, 허연 알몸으로 겨울에 맞서는 자작나무다. 두 나무 모두 거친 숨 몰아쉬며 겨울을 상대한 다음에야 조우할 수 있다.



주목이 가로의 나무라면, 자작나무는 세로의 나무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는 주목은 겨울 바람에 떠밀려 제 몸을 비틀고 서 있다. 길게 누운 가지 위에 겨울이면 눈이 쌓이고 서리가 얹힌다. 그렇게 제 몸을 굽고 휘어서 주목은 천 년 세월을 견딘다.



자작나무는 길고 정갈한 모양으로 하늘만 향한다. 잎사귀를 버리는 것도 모자라 곁가지도 스스로 끊어내고 겨울을 난다. 벌(罰)서는 것처럼 그렇게 순수한 수직선으로 서서 북방의 혹독한 겨울을 감내한다. 순전히 하얘서, 눈 덮인 겨울에 더 도드라진다.



나무 아래에 앉아 봤으면 안다. 나무 아래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간다. 좀처럼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속상했던 일, 서러웠던 일, 배고팠던 일 한참이나 지울 수 있다. 온갖 투정 다 부려도 나무는 오랜 친구처럼 잠자코 귀를 기울인다. 나이를 제 몸에 새기듯이, 나무는 우리의 울분도 제 몸에 담아둔다. 이따금 가지를 흔들어 고개만 끄덕인다. 나무를 만나고 오면, 한 계절 살아낼 힘을 얻는다.



팔순의 시인이 자작나무 숲을 갔다와서 노래했다. 겨울 나무만이 타락을 모른다. 비단 늙은 시인에게만 험한 계절 버티고 선 나무가 티 없이 맑아 보인 건 아니었다. 그래, 나이 먹어도 더럽지는 말자. 늙어도 썩지는 말자. 나무처럼 살자. 나무처럼 늙자.



겨울 나무를 보고 왔다. 이제 나이에 관한 한은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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