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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도전한 '미국변호사' 꿈 … 양쪽 눈 시력 잃자 더욱 타올랐다

중앙일보 2015.01.29 02:30 종합 24면 지면보기
미국의 명문 법학전문대학원 조지타운대 로스쿨에 다니던 2010년, 그에게 어둠이 찾아왔다. 미숙아로 태어난 바람에 앓아온 망막증. 고등학교 때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은 후부터 겨우 보이던 왼쪽 눈의 빛마저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귀로 법전을 들으며 공부해 지난해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11월 뉴욕주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자 명단에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정진씨, 지난 11월 한국 시각장애인으론 첫 합격
미숙아 망막증 … 한 쪽 시력 잃어
미 로스쿨 공부 중 다른 쪽도 실명
귀로 들으며 공부, 최고성적 따내
첫 시험서 합격 … 워싱턴 로펌 근무

 한국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정진(33·사진)씨 얘기다. 국내 시각장애인이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것도 그가 최초다.



 정씨는 2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오히려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것이 내게는 새로운 시작이었다”며 “장애인도 사회에 기여하는 당당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특수제작한 확대경을 이용하지 않으면 글자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안 좋았다. 하지만 머리는 비상했다. 고2 때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은 후에도 한쪽 눈으로만 공부해 2001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복수전공으로 사회복지학 학위까지 딴 그는 2007년 졸업 후 미국 로스쿨 진학에 도전한다.



 정씨는 “한국에서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안마사 등 몇 개로 한정돼 있다”며 “미국 변호사가 돼 시각장애인들의 꿈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009년 워싱턴 조지타운대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곧 병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2년 넘게 학교를 휴학하고, 서울에서 5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빛을 잃고 말았다. 미국 변호사라는 꿈은 그의 시력처럼 사그라지는 듯했다.



 정씨는 “많은 미숙아 망막증 환자들이 시력을 잃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며 “앞이 안 보이는 것보다,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더 슬펐다”고 회고했다.



 마음을 다잡았다. 2013년 복학한 뒤 글을 소리로 변환해주는 ‘화면낭독 프로그램’을 이용해 소리로 공부를 시작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칠 수도 없었고, 발음이 비슷한 법률용어를 접할 때는 헷갈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중요한 부분에는 특수기호를 끼워넣고, 나중에 ‘검색하기’ 기능으로 다시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식으로 공부 요령이 생기더라”며 “덕분에 졸업하자마자 치른 변호사 시험에서 바로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워싱턴에 있는 로펌을 다니며 형사·민사소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수업에서 최고 학점자에게 주는 ‘칼리어워드’를 수상한 성적과, 미국 국회에서 1년간 인턴으로 일한 경험을 높이 산 것이다. 그는 남의 도움 없이 하얀 지팡이를 짚어가며 지하철을 타고 로펌으로 출근한다.



 정씨는 “비자가 만료되는 여름이면 귀국해 한국 로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며 “전문영역을 개척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공익활동도 활발하게 펼치는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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