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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를 묶어준 아버지의 손

중앙일보 2015.01.29 02:13 종합 1면 지면보기
화상 으로 가운데와 넷째 손가락이 손바닥에 붙어 버려 수화의 ‘사랑합니다’가 됐다. 가족들이 같은 손 모양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큰딸 현주씨, 손자 원우군, 작은딸 지영씨, 외손녀 은정씨. 이 씨와 아들 봉진씨. 손 그림은 은정씨가 그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재명씨의 오른손
“아버지는 손이 불편하셨지만 하모니카도 잘 불고 그림도 잘 그리셨어요. 뭐든 당당하게 해내시는 아버지가 정말 존경스러웠고, ‘나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아버지는 말하고 싶다 <중> 세대 갈등 넘어 공감으로
흥남철수 때 월남 자수성가
'광장시장의 덕수' 이재명씨
아들 봉진씨와 함께 자서전
자녀와 아침 산책, 저녁 대화
쌓은 정 깊어 부자 갈등 해소



 아버지 이재명(82)씨와 아들 봉진(53·자라리테일코리아 사장)씨. 함경남도 흥남에서 월남해 서울 광장시장에서 메리야스 장사를 하며 1남2녀를 키운 아버지의 손을 봉진씨는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손가락에 장애가 있다. 돌이 되기 전 끓는 물에 화상을 입어 오른쪽 가운데와 넷째 손가락이 손바닥에 붙어버렸다. 하지만 이씨는 “이 손으로 크게 손해 본 일도 없고 오히려 손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았다”고 말한다. 마침 그렇게 붙어버린 손 모양은 수화(手話)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 아버지의 손, 아니 사랑은 봉진씨와 그 아들까지 3대를 묶어주는 밑거름이다.



 “3년 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을 때 아버지의 삶을 책으로 정리해보자 결심했어요.”



 최근 아버지와 함께 『가족이 있는 삶』(이케이북)이란 책을 펴낸 봉진씨의 말이다. “삶의 고비를 맞을 때, 어려운 시대를 살아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지침 삼아 용기와 지혜·사랑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봉진씨는 “아버지의 인생을 꼼꼼히 돌아보면서 부모님 세대에 존경과 사랑을 느끼게 됐다”며 “세대별 가치관·라이프스타일에 차이가 있고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란 틀보다 중요한 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본지가 지난 12∼14일 전국 20대 이상 남성 13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이재명씨 같은 70∼80대 세대, 봉진씨 같은 ‘86세대’(19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 20∼30대 모두 삶의 가중치를 묻는 질문에서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씨 부자(父子)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서울 오금동의 봉진씨 누나 현주(55)씨 집이었다. 200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누나가 모시고 산다. 집에는 현주씨와 여동생 지영(51)씨, 그리고 현주씨의 딸 은정(26)씨와 봉진씨 아들 원우(15)군도 함께 있었다. 이재명씨가 광장시장에서 장사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화제였다.



 “아침 6시에 온 가족이 일어나 동네 한 바퀴 함께 돌고 밥을 먹었어요. 저녁이면 온 가족이 안방에 모여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얘기를 나눴고요, 시험 전날에도 예외가 없었죠.”(현주씨)



 이재명씨는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은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 모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지혜가 전해진다”고 말했다.



이씨는 50년 12월 23일 흥남철수 때 고향을 떠나 거제도로 내려왔다. 이후 부산에서 부두 노역자·페인트공 등으로 일하다 55년 상경, 장사를 시작했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57년 광장시장에 점포를 구입했고, 59년 결혼했다. 이씨는 최대한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 했다. 60년대 광장시장은 한 달에 딱 하루만 휴일이었다. 그날마다 도봉산·장충단 등으로 가족 소풍을 갔다. 평소에도 웬만한 곳엔 자녀들을 데리고 다녔다. 봉진씨는 “심지어 거래처까지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다니셨다. 거래처에서 외상값 안 주는 일 등 골치 아픈 문제, 고민거리도 다 털어놓으시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견을 물으셨다”고 기억했다. 이재명씨 부부는 자녀들이 부르는 노래도 일일이 챙겼다고 한다. “한번은 시장에서 돌아와보니 애들이 신세타령 유행가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슬픈 노래 부르면 축 처지고 괜스레 슬퍼지죠. 없는 형편이었지만 전축을 사서 클래식과 동요를 틀어줬지요.”(이재명씨)



 다른 부자 관계처럼 봉진씨도 아버지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15년 이상 해오던 메리야스 가게를 접고 75년부터 나전칠기 회사를 경영했던 이재명씨는 자신이 일궈놓은 사업을 아들이 이어받길 원했다. 하지만 봉진씨는 아버지 도움 없이 전문 경영인의 길을 가고 싶어했다. 봉진씨는 “갈등이 있었지만 폭발하지 않았던 건 어린 시절부터 가족 사이에 차곡차곡 저축해 놓은 시간의 힘이었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이재명씨와 1남2녀 자녀들은 이씨의 피란 시절 행적을 따라 2박3일간 거제도·부산 일대 회고여행을 다녀왔다. “흥남 부두를 떠나던 때를 생각하면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아버지 앞에서 3남매는 숙연해졌다. 이후 봉진씨는 아들 원우를 데리고 집 근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자주 찾는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원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상황에 빠지더라도 부모 탓하지 말고 세상 탓하지 말고 다시 시작해라. 혈혈단신 부산에 내려오신 할아버지도 이렇게 일어나셨다.”



◆특별취재팀=이지영·김호정·한은화·신진 기자,

사진=신인섭·오종택·최승식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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