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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직의 바둑 산책] 시니어끼리, 여성과도 대국 … 반상이 즐거워졌다

중앙일보 2015.01.29 00:48 종합 23면 지면보기
26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시니어 국기전 결승에서 우승한 조훈현(62·왼쪽) 9단이 트로피를 들고 있다. 오른쪽은 대회장을 맡은 김인(72) 9단. [사진 한국기원]


한국 바둑계에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다. 기전(棋戰)이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1960년대 초 한국의 프로기전은 불과 4개였고 모두 도전기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세계대회를 포함해 25개에 달했다. 5년 전에 비해서도 5개 늘어난 규모다. 대부분 단기간에 승부를 내는 형식이다. 도전기는 국수전 하나만 남았다. 바둑TV와 인터넷의 영향으로 바둑을 두는 호흡이 짧아진 까닭이다. 신예들의 대회, 여성 기사의 무대, 시니어(만 50세 이상 기사)들만의 대결, 시니어와 여성의 대국 등 세분화가 눈에 띈다.

지난해 세계대회 포함 25개
여류 vs 시니어 ‘지지옥션배’
남녀 대결 이뤄져 인기 높아



 이런 추세는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인구의 노령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프로기사 297명 중에서 50세 이상이 63명으로 전체의 21%다. 여성도 53명에 이른다. 여성기사의 경우 10여 년 전에 비해 두 배 정도 증가했다.



 사실 그동안 프로세계에서 시니어와 여성기사는 경쟁의 장(場) 밖에 있었다. 나이가 들면 승부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감각이 예민하지 못해 실수가 많아진다. 체력의 한계도 거론된다.



2014년 9월 2일 제8기 지지옥션배 연승대항전 제18국에서 김혜민 7단(오른쪽)이 유창혁 9단과 대국하고 있다. 김 7단이 이겼다. [사진 한국기원]
 그런데 예전 바둑계를 둘러보자. 정신력이 뛰어난 명인의 경우엔 나이 40대까지 반상(盤上)을 지켰다. 1835년 아카보시 인테쓰(赤星因徹·1810~35)와 일생일대의 승부인 토혈국(吐血局)을 두었던 조와(丈和·1787~1847) 명인은 당시 나이가 48세였다. 젊은 아카보시를 이겼다. 아카보시는 2개월 뒤에 세상을 달리했다.



 1933년 환갑을 맞은 혼인보(本因坊) 슈사이(秀哉·1874~1940) 명인은 19세의 소년 우칭위안(1914~2014)과 기념대국을 했다. 우칭위안이 65년 일본 제4기 명인전에서 8전8패해 본선무대에서 내려갔을 때엔 나이 50세였다.



 또 조남철(1923~2006) 선생이 72년 19세 서봉수(62) 당시 2단에게 명인 타이틀을 빼앗겼을 때 나이는 50세였다. 서 9단이 타이틀을 마지막으로 따냈을 때는 나이 46세였다. 조훈현(62) 9단은 48세 때의 우승이 끝이었다. 김인(72) 9단의 마지막 타이틀은 34세 때였고, 이창호(40) 9단도 35세를 넘자 우승이 끝났다.



 프로기사들은 대개 40대를 넘으면서 승부세계에서 멀어졌다. 반면 요즘에는 50대 넘은 시니어들의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아직은 실력이 남자만 못한 여성의 무대도 크게 넓어졌다. 왜 그럴까.



 최규병(52) 9단은 “애기가의 연령층이 다양하다. 바둑은 60년대부터 성장해 지금은 40~60대 팬이 많다. 여성은 전체 바둑 인구의 약 5%다. 공감대를 가진 시니어대회와 여자바둑이 인기를 끄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양재호(52·9단)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바둑의 핵심은 승부가 아니라 승부를 둘러싼 인간적인 이야기다. 바둑 환경이 변하면서 화제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자와 시니어가 겨루는 지지옥션배의 인기가 높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014년 제8기 지지옥션배는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으로 12명씩 출전해 여성이 시니어를 이겼다. 이세신(47) 바둑TV 편성팀장은 “명인전·바둑리그 등 메이저 기전에 비해 지지옥션배의 시청률이 오히려 높다. 시니어와 여자, 성과 나이라는 두 개의 기준이 바둑 애호가의 흥미를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출전 자격이 달라진 만큼 대회 내용도 달라졌다. 일반적인 기전은 전체 예산 중에서 상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하지만 시니어기전이나 여자기전은 1인에게 돌아가는 상금의 크기를 줄이고 있다. 대신 바둑계 구성원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눔과 호혜를 강조한다.



 시니어바둑클래식은 홀수 달에 한 번, 1년에 모두 다섯 차례 토너먼트 대회를 연다. 그리고 성적 상위자 8강 토너먼트로 최종 우승자(왕중왕전)를 가린다. 총예산 3억5500만원에서 다섯 차례 토너먼트 대회의 우승 상금은 각 400만원(준우승 200만원)이다. 왕중왕전 우승 상금은 1000만원(준우승은 400만원)이다. 팀당 12명이 연승전 방식으로 겨루는 2014년 제8기 지지옥션배 우승 상금은 1억원(총예산 2억2000만원)이었다.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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