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목천포 다리는 '기억 속의 다리'가 되는가?

중앙일보 2015.01.29 00:15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병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단연, 이구동성 ‘목천포 다리’였다. 지난해 봄에 친지 몇 사람과 전라북도 지방의 문화 탐방을 함께 했다. 그 탐방을 마무리하면서 어느 곳이 가장 인상에 깊게 남았느냐는 내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우리는 새만금방조제길 같은 훨씬 더 멋진 문명의 길도 달려 보았고, 신석정시문학관·최명희문학관에서 문학의 향기도 맡아 보았으며, 전주 한옥마을에서 우리 옛마을의 정취도 느껴 보았다. 그곳에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그들이 그 썰렁한 목천포 다리를 으뜸으로 꼽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다리의 한쪽 끝은 군산시로 연결된다. 군산은 근래에 근대문화유산을 복원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채만식의 『탁류』가 문학비로 되살아났으며, 동국사(寺)며, 히로쓰가옥 등등 일제강점기의 흔적도 탐방객들을 부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일제의 미곡 수탈 전초기지였던 미두장 건물은 사라졌지만 김제만경평야로부터 수탈된 미곡이 군산항 째보선창으로 실려 나가던 길의 흔적은 아직 그대로다. 군산선 철도와 전군가도(번영로)가 그 길이다. 전군가도를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건너야 하는 만경강에, 호남선 기찻길 가까이 바로 이 ‘목천포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미곡 수탈의 통로였다는 의미 외에 윤흥길의 소설 『기억 속의 들꽃』의 무대라는 점에서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이었다. 동행했던 탐방자들은 여행 직전 이 작품을 읽었다. 그리고 그 다리에서 자신들은 겪어 보지 못했던 6·25의 한 장면을, 안타깝게 죽어간 민간인 소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회상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피란 온 혈혈단신의 소녀가 그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으며, 어른들의 탐욕과 맞부딪쳐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를 세세히 기억해 보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소녀가 고이 숨겨 두었던 자신만의 소중한 보물을 확인하려다 폭격에 무너져 내린 그 다리의 한 중간에서 결국 한 송이 들꽃이 되어 바람에 흩어져 버리고 만 장면을 되새겼던 것이다.



 목천포 다리. 그 다리는 익산의 목천동과 김제의 백구면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로서의 역할은 이미 오래전에 종료했다. 오고가는 차량이 없으므로 그냥 가을걷이가 끝난 후에 나락을 말리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다. 한때는 만경강 한 굽이에서 제법 위용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훌쩍 커버린 동생들 때문에 초라해지고 말았다. 인공적 구조물이라고 분류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낡아 버렸다.



 게다가 자기 이름은 인근에 새로 난 ‘목천대교’에 빼앗겨 버렸고, 한때 다리 밑에 모여들던 참장어들도 전주공단이 뱉어내던 공해 물질에 밀려났다. 결국 목천포 장어집들도 문을 닫거나 다른 곳에서 재료를 공수하고 있다. 목천포 다리에서 가는 세월을 고즈넉이 완상하다가는 가끔씩 KTX 열차의 굉음에 깜짝깜짝 놀라는 게 현주소다.



 며칠 전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의 발표는 매우 절망적이었다. 이 다리가 안전등급 E등급을 받았으니 이제 철거함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발표에 따르면 오는 6월이면 이 다리의 돌 하나, 철근 하나까지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될 지경이다. 그걸로 끝일까? 아니다. 거기 깃들어 있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기쁨도 다 산화될 전망이다.



 ‘기억 속의 들꽃’이 아니라 ‘기억 속의 다리’로 지상에서 사라져 버릴 위기다. 결국은 건망증에 익숙한 우리들과 그리고 오는 세대의 기억에서도 완전히 분해될 것이다. ‘기억 속의 다리’가 어디 있으랴. 먼 훗날 사람들은 대아리저수지나 경천저수지에서 발원한 만경강의 십수 개의 다리 중에서 역사의 다리, 소설의 다리를 헛짚을 것이 분명하다. 오래전에 떠나버린 장어들이 돌아온다 해도 어떻게 자기 고향을 찾을 수 있겠는가?



 제발 그대로 두시기를 바란다. 안전이 염려된다면 양쪽 출입구를 닫아놓으면 된다. 사연이 많으면 상처도 깊은 법이니 무너지면 무너진 채 남아 있어도 무방하다. 그냥 다리 입구에 표지판이라도 하나 세워주면 좋겠다. 거기에 ‘미곡 수탈’이며, ‘기억 속의 들꽃’이란 문구만 적으면 된다. 인근의 지자체들이 조금만 성의를 낸다면 작은 기념관 건립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이 다리는 한 세대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진정한 다리로 거듭날 것이다.



 보스니아의 이보 안드리치는 『드리나 강의 다리』라는 작품으로 1961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발칸반도의 복판에서 갖은 풍상을 겪은 이 다리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목천포 다리의 절반 길이밖에 되지 않는 이 다리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낸 것은 바로 안드리치의 소설이었음이 분명하다. 목천포 다리가 함의하고 있는 의미도 결코 그에 못지않다.



 문화는 삶에 대한 짤막한 기억, 역사에 대한 소박한 경외로부터 비롯된다. 얄팍한 개발논리로써는 문화 융성의 지평에 결코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이 시간에도 어디에서 또 다른 ‘목천포 다리’가 철거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의 족적들이 지워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볼 일이다.



김병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