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 치매 보셨나요

중앙일보 2015.01.27 16:29
[자료사진 중앙포토DB]
  치매에 걸리면 이미 배운 것도 잊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뒤에 학습을 통해 이전에 없던 음악적 재능을 발전시킨 사례가 처음으로 보고됐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조한나 교수와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팀은 전두측두엽치매 환자가 치매 진단 뒤 색소폰 연주를 배우기 시작해 1년 만에 상당한 연주 능력을 쌓은 사례를 연구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뉴로케이스(Neurocase)’ 1월호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평소 내성적이고 온화한 성격이던 A(61)씨는 8년 전 갑자기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뭐든 참지 못하는 공격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예의에 어긋난 돌출 행동을 자주 해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A씨의 이상행동이 3년 넘게 이어지자 A씨의 부인은 2009년 남편을 이끌고 병원 신경과를 방문했다. 병원 진단 결과 A씨는 전두측두엽 치매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았다.



전두측두엽치매는 판단과 계획,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과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에 발생하는 치매다. 전체 치매 가운데 5% 미만을 차지하는 드문 치매다.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달리 기억력에 문제가 없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다른 치매에 비해 약물 치료가 어렵고, 진행이 빠른데다 발병 시기도 주로 50대 후반~60대 초반으로 빠른 편이다.



치매 진단을 받은 A씨는 부인의 권유로 동네 색소폰 학원에서 매일 2시간씩 색소폰을 배웠다. 처음엔 일반인들에 비해 배우는 속도가 한참 더뎠다. 하지만 반복적이고 꾸준한 학습과 노력으로 1년 뒤 10여곡을 스스로 연주할 만큼 실력이 쌓였다. A씨 부인은 “악기를 연주하면서부터 공격적인 성향이 이전에 비해 많이 누그러졌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해외에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가 치매 진단 후에도 계속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다는 사례는 있지만 A씨처럼 치매 진단 이전에 음악을 전혀 배우지 않았던 환자가 오히려 병을 앓으며 뛰어난 음악적 학습능력을 보인 건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라고 보고했다.



논문 저자인 조한나 교수는 “치매 환자라 해도 새로운 학습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학습능력이 뛰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에게 악기 연주가 인지재활 치료 방법의 하나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