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소엽 기자의 어쨌거나 살아남기] 재난② 탈출할 때 꼭 챙겨야할 것들

중앙일보 2015.01.27 10:31
생과 사의 갈림길, ‘이게 진짜일리 없어~’ 외치는 거부 다음 단계는 지연 단계입니다. 누군가 “정신 차리고 지금 상태에서 벗어 나야합니다”라고 외치는 순간, 레드 썬! 사람들은 현실로 돌아옵니다. 지연 단계는 말 그대로 '세월아 내월아 느긋느긋~ '세상에 없는 천사표가 되는 상태입니다.



9.11 테러 당시 사무실의 누군가가 '빠져 나가!자'고 외쳐 살아남았다는 여성이 있습니다. 『언씽커블』의 저자 아만다 리플 리가 취재한 세데뇨라는 이 여성은 목소리 덕분에 거부 단계에서 벗어났지만 곧장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책상 위에 놓인 지갑을 챙기고 책상을 두 바퀴 정도 서성인 후 어떤 물건을 챙겨갈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추리소설 한권을 챙겼습니다. '모으기(gathering)' 행동으로 평소 습관에서 안도를 얻으려는 인간의 행동심리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테러 공격을 받은 1444명의 생존자를 조사한 결과 40%가 사무실을 떠나기 전 컵이나 볼펜, 수첩 같은 물건들을 챙겼다고 합니다.



물건을 손에 쥔 세데뇨는 안도감을 얻고서야 계단으로 향합니다. 드디어 탈출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아직 지연 단계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테러 당시 건물에서 탈출한 1만5410명의 사람들은 각 층을 지나는데 평균 1분 가량을 소요했다고 합니다. 1분이라고 하면 짧은 시간처럼 느껴지겠지만 반이상 비어있는 이 건물을 빠져나오는 일반적인 소요시간은 20초라고 합니다. 110층 건물에서 층당 1분이이 걸렸다고 하면 총 110분, 1시간 50분이 걸렸다는 거죠.



실제로 재난 때 군중은 유순하고 차분해진다고 합니다. 세데뇨 역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대피하는 군중의 꼬리에 줄을 서서 움직였다고 합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괴성을 지르던 단 한 명의 여성만이 뛰어 내려갔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그녀가 먼저 내려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까지 했다네요.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는데도 사람들은 동요 없이 같은 속도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심지어 20층까지 뛰어올라온 소방대원들의 지친 얼굴을 보며 물이라도 가지고 올 걸 하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일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상태를 '해리(dissociation)'라고 부릅니다. 육체적 또는 성적 학대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상태를 말하는데 어떤 이들은 해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지만 어떤 이들은 수년에 걸쳐 해리 상태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다행히 질서정연하게 1층 로비까지 내려온 세데뇨는 로비를 벗어나는 동시에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공포’가 찾아옵니다.



다음번에는 세 번째 단계인 공포 단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소엽 기자



관련 기사

[김소엽 기자의 어쨌거나 살아남기] 재난① 그 순간 시간이 멈춘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