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넷 직구로 검증 … 모뉴엘에 떼일 뻔한 850억원 지켰다

중앙일보 2015.01.27 02:04 종합 2면 지면보기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도대체 뭘 하는 회사지?”

[사건:텔링] "매출 2000억원 회사 제품
쇼핑몰 다 뒤져도 못 찾아"
영업부 반대에도 "거래 끊자"
우리은행, 부도 1년여 전 회수
16년째 증권사·은행 계약직
강윤흠씨, 정규직 보장 받아



 2012년 10월 늦은 밤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산업분석팀. 야근을 하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틀 전 대기업 심사부에서 보낸 한 장의 공문이 떠올랐다. 이미 850억원을 빌려 간 모뉴엘이란 회사가 추가 대출을 요청해 왔다고 한다. 한데 어딘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대뜸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이 극찬한 회사’란 기사가 떴다. 심사부가 건넨 서류를 살펴봤다. 최근 몇 년 사이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이자도 꼬박꼬박 갚았다. 심사부 직원들이 직접 본사를 찾아가 경영진도 만나 봤지만 결정적인 부실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두 달 전 은행으로 옮겨 오기 전까지 증권사에서 정보기술(IT) 업체만 13년 팠던 나다. ‘모뉴엘.’ 어렴풋이 들어봤지만 도대체 뭘 만드는 회사인지 알지 못했다. 인터넷을 뒤지니 홈시어터컴퓨터(HTPC)로 대박을 냈다고 한다. HTPC라면 나도 좀 알지. 모뉴엘이 수천억원어치 수출했다는 HTPC가 어떤 제품인지 찾아보자. 이럴 때를 대비해 미국 내 가상주소와 우편번호도 확보해 뒀다. 구글·이베이를 검색했다. 애플, 델(Dell), HP, 소니 제품들이 나왔다. 모뉴엘 제품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아마존·베스트바이·월마트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모뉴엘 제품은 흔적조차 없었다.



 답답해 쇼핑몰 담당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돌아온 답도 한결같았다. ‘현재 해당 제품은 재고가 없어 구하기 어렵습니다’. HTPC로 매출액을 2000억원이나 올렸다는데 미국 어느 쇼핑몰에서도 구입은커녕 카탈로그조차 구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모뉴엘이 만든다는 제품은 하나같이 매니어용이었다. 일반인에겐 생소하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다. 회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데 대표 상품은 구경하기 어렵다? 어딘가 냄새가 났다. 심사부와 영업부서에 이 사실을 알렸다. 대출 회수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영업부서는 펄쩍 뛰었다.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신데렐라 같은 회사다. 이런 고객을 발굴해도 모자랄 판에 거래를 끊다니’. 이자를 연체한 적도 없지 않으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다시 서류를 꼼꼼히 훑어봤다. 모뉴엘이 홍콩을 거쳐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ASI에 물건을 납품했다는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옳지! 수출을 했다니 ASI가 발급해 준 확인서가 있겠군. 심사부에 확인서를 받아 보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모뉴엘로부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납품업체인 우리가 ‘을’인데 어떻게 미국에 증빙을 달라고 합니까.” ASI 말고는 모뉴엘이 HTPC를 납품하는 곳이 없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영업부서에선 아우성이었지만 심사부도 내 편으로 돌아섰다. 대출금 850억원 전액 회수 결정이 내려졌다. 의견이 받아들여져 기분은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혹시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을 걷어차 버린 건 아닐까. 공연한 트집으로 경쟁사 좋은 일만 시켜 준 건 아닌지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거래를 끊은 이후로도 승승장구하는 모뉴엘을 볼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1년 넘게 흐른 지난해 10월 22일 아침. 조간신문을 들추다 눈이 번쩍 뜨였다. ‘혁신 가전업체 모뉴엘, 법정관리 신청’.



 이후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상품 가치가 없는 폐컴퓨터를 HTPC로 둔갑시켜 가격을 부풀렸단다. 2009년부터 6년간 120배까지 부풀려 3조원이 넘는 수출 실적을 위조했다니. 2년 전 미국 온라인쇼핑몰을 다 뒤져도 HTPC를 찾을 수 없었던 까닭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게이츠의 격찬도 지어낸 얘기였다.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다. 오랜만에 두 다리 뻗고 자야지. 그런데 지난주 초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24일 은행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하란 통보였다. 모뉴엘 회수 결정에 공을 세운 선배 한 분과 내게 표창을 준다고 했다. 시상식장에 섰다. 이광구 행장님이 칭찬을 하시더니 대뜸 선배를 불러내 “부지점장으로 승진시킨다”고 발표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강윤흠 차장.” 내 이름이 호명됐다. “포상금 300만원과 함께, 이른 시일 내 정규직 전환을 약속드립니다.” 머리가 멍했다. 집에 있는 가족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생각해 보면 직장생활 만 16년간 단 한순간도 계약직 신세를 면치 못했다.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고 한때 외교관을 꿈꿨지만 졸업 즈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졌다. 1999년 구직시장은 유독 추웠다. 경영·경제 전공자 말고도 받아 주는 직장을 찾다 증권사에 들어갔다. 벤처가 뜨고 정보통신이 붐을 일으키던 시절. 인문계 졸업생으로 이공계 출신들을 제치고 IT 분야를 맡았다. 그 흔한 석사 학위 하나 없이 이어 간 애널리스트 생활은 위험하면서도 짜릿했다.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시장과 대면하는 일. 매분 매초가 가시밭길이었다.



 한때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액 연봉자 대열에 든 적도 있다. 그러나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 늘 고집을 부리기가 힘에 부쳤다. 불안해서, 눈치가 보여서 뜻대로 마음대로 분석 결과를 발표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전망이 어둡다는 부정적 분석은 회사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 업계에선 소신 있는 애널리스트가 적었다.



이직을 결심한 건 그때다. 연봉이 반 토막 날지언정 ‘소신’을 지키고 싶었다. 명함만 바뀐 ‘전문계약직.’ 이직 당시 주변 반응은 반반이었다. 잘했다는 격려와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동시에 나왔다. 그래도 모뉴엘 사건 후 나이 마흔둘에 처음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잘한 결정 같다. 시상식장에서 만난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은행을 너무 몰라서 겁이 없었던 거야.”



심새롬 기자



◆사건:텔링=특정 사건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풀어 보는 기사입니다. 범인·형사·목격자·제보자 등 주요 인물들의 시점에서 소설 형식으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