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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예술도 '우등생' 꿈꾼다

중앙일보 2015.01.27 01:08 종합 21면 지면보기
싱가포르 미술관에서 열린 APB 시그니처 예술대상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리우젠화(중국)의 ‘흔적’. 영국계 기숙학교 건물이었던 이 미술관 계단 벽에 도자기로 먹물 자국 모양의 흔적을 남겨 "수묵화·도자·설치를 겸비한 작품으로 역사를 묵상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 싱가포르 미술관]


# 1 ‘We’re Asia(우리는 아시아다).’ 지난 21일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컨벤션센터 곳곳엔 이렇게 적힌 깃발이 휘날렸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국제 아트페어인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다. ‘동남아의 플래그십 아트페어’를 표방하며 29개국 158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75%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 참가자들이었다.

독립 50돌 맞아 문화융성 '아트 위크'
아트페어에 29개국 갤러리 참여
일본 오타 파인 아트 등 둥지 틀고
중국 양푸동 대규모 회고전 열려



 #2 싱가포르 미술관에서는 제3회 APB (Asia Pacific Breweries) 시그니처 예술대상 시상식이 22일 열렸다. 아시아 24개국에서 추천된 105건의 작품 중 최우람(한국)·멜라티 수료다묘(인도네시아) 등 최종 후보 15명이 전시를 열고 수상자를 가렸다. 자국에 한정짓지 않고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미술상이라는 기획 취지가 이채롭다.



 인구 500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 5만6000달러, ‘경제 우등생’ 싱가포르가 아시아 미술 허브로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소프트 파워에 눈길을 돌린 이 나라는 제3회 싱가포르 아트 위크(17∼25일)를 맞아 다양한 문화 행사를 마련했다. 국립예술위원회, 싱가포르 관광청, 싱가포르 경제개발청 공동 주관이다. 특히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50주년이 된 올해는 100여 개 행사로 지난해보다 두 배 규모를 키웠다.



영국의 미술 듀오 ‘길버트와 조지’의 사인회. [사진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세계 2위의 컨테이너 항만이다. 그러나 인근 국가들의 맹추격으로 미래 먹거리를 고민 중이다. ‘쇼핑과 미식 천국’ 이상의 문화 국가로 변신하는 것도 그중 한 전략이다. 로렌스 왕 문화·청소년부 장관은 “예술은 우리가 누구이며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이고, 우리는 어떤 미래로 갈 건지 보여준다. 우리가 현대 미술의 비중을 키워가는 이유다. 8월에 동남아 최대 규모로 내셔널 갤러리를 여는 등 싱가포르는 예술을 포용하는 문화적 국가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영국군 주둔 막사가 있던 길먼 배럭스에는 일본의 오타 파인 아트, 미국의 산다람 타고르 등의 화랑이 둥지를 틀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에서 베이징의 798 예술구를 모델로 조성했다. 17개 화랑 중 두 곳만이 싱가포르 화랑이다. 자국 중심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계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여기엔 또한 영국왕립예술대(RCA) 학장 출신의 우테 메타 바우어가 관장으로 있는 난양공대 산하 현대미술센터(CCA)도 들어와 시장과 기관의 균형 발전을 꾀하고 있다. CCA에서는 중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양푸동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이제는 아시아=지난 10년간 아시아 현대 미술의 맹주는 베이징이었다. 그러나 33%에 달하는 세금과 검열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에 홍콩이 시장 부문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세계적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팀이 마이애미에 이어 홍콩에 위성 아트페어를 열며 오는 3월 그 세 번째 행사를 준비 중이다. 싱가포르는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다. 아트 스테이지에 참여한 갤러리현대의 조정열 대표는 “싱가포르 미술 시장은 태동기다. 아트 페어의 거래 규모가 작고, 작가의 유명세에 기대는 컬렉터들도 많다. 그럼에도 새로운 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미술계의 가파른 변화가 주목되는 것은 문화 도시로 비상하려는 의지와 자신감 때문이다. 요코하마 미술관의 아마노 타로 학예실장은 “싱가포르는 아시아 현대미술의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아시아이면서도 글로벌한 문화, 경제력과 지정학적 위치가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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