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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백일장] 1월 당선작

중앙일보 2015.01.27 01:03 종합 21면 지면보기


이달의 심사평



을미년 새해 첫 달, 그 어느 때보다 응모작이 풍성했다. 신춘문예 응모작인가 싶을 정도로 수준도 높았다. 그런데 3수 이하 작품보다는 4수 이상으로 호흡이 긴 작품이 많았다. 4수 이상의 긴 작품의 경우 시조 형식에 맞춰 잘 다듬어지긴 했지만 시적 감동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시조는 형식적으로 압축이, 내용적으로는 감동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3장6구의 작은 몸체지만 내용적으로 엄청난 시적 감동의 폭발력을 지닐 때 좋은 시조가 될 수 있다.



시조 형식에 맞추어 길게 쓴다고 좋은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시마저 짧은 시를 지향하며 긴 글을 읽지 않으려는 스마트폰 시대 독자들을 감동시키려 몸부림치는 상황에서 본령이 짧은 시인 시조가 오히려 길어져서야 되겠는가.



 이러한 관점으로 응모작품을 읽으니 비교적 어깨에 힘을 빼고 쓴 작품들이 우수작의 범주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권경주의 ‘축제’가 윗자리에 놓였다. 시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의 적정성에다 내용 또한 어려운 부분 한 곳 없이 전체가 하나의 풍경으로 그려졌다. 온 가족이 김장을 담그는 체험 속에서 우려낸 장면 장면들은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서 구절들을 떼다 붙인 작위적인 작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차상으로 뽑은 이기선의 ‘벽시계’ 또한 다르지 않았다. 언제 멈췄는지 알 수 없는 고향집 벽에 걸려 있는 벽시계에 대한 신선한 발견이 정서를 자극한다. ‘굶어 죽’었다는 종장의 구절에 오면 오늘 이 시대 독거노인의 죽음까지를 연상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차하로 뽑은 ‘겨울, 칸타빌레’는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감각적인 시편이다. 이런 현대적 감각을 키울 때 독자에게 읽는 기쁨을 안겨주는 좋은 시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응모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권갑하·박권숙(대표집필 권갑하)







사랑, 그 허무함에 대하여 말해도 괜찮을까.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식 하수(下手)들의 사랑은 논외로 하자.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남녀간의 사랑이라고 하면 아가페니 에로스니 하는 말장난을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몸이 아니라도 정신이 아니라도 마음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처럼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할 수만 있다면 때와 장소, 시대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홍성란 시인은 누구를 사랑한 것일까. 떨어지는 가랑잎을 보면서 오백 년 전의 그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일까. 사운대는 낙엽도 아닌, 파도소리 들릴 듯 살 비비는 소리 들리도록 시대의 벽 너머에 있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일까.



 이미 잘 알다시피 홍성란은 사랑의 시인이다. 사랑을 테마로 한 시조의 절창을 보여주는 수작들이 도처에 발견된다. 이 시도 그 범주에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속물들의 비린 사랑은 느낄 수가 없다. 사람(육체)을 사랑한 게 아니라, 정신을 사랑한 것도 아니라, 마음을 사랑한 것이기에 그러하다. 이제 홍성란 시인은 거의 사랑에 관한 한 달인(達人)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게 요즈음 발견되는 홍성란 시조의 마력이다.



오승철 시조시인



◆응모 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우편번호 1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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