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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나는 이완구 총리에 공감 못한다

중앙일보 2015.01.27 00:22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실장
필자는 불행히도(?) 아들만 둘이다. 어제 현역 복무 중인 큰아들 녀석이 병가(病暇)를 얻어왔다. 녀석과는 방문을 걸어 잠근 중2 때부터 말도 잘 안 섞던 불편한 관계였다. 뭐라 야단치면 “요즘 세상에 자살만 안 해도 효자”라고 대들었다. 그래도 군대는 무서웠던 눈치다. 대학 2학년 때 좀 편하다는 공군과 의경을 넘보다가 접었다. 하루는 술을 먹고 “우리 집 DNA는 구질구질해. 키만 0.5㎝ 더 컸어도…”라고 넋두리했다. DNA가 형편없는 나는 미안했다.



 그 녀석이 석 달 전 부대에서 전화를 했다. “아빠, 면회 한번 와 줄래. 발을 다쳤어.” 30개월 예비역 병장답게 나는 단호히 꾸짖었다. “인마, 군대가 장난이냐? 좀 아파도 참는 거야.” 다음주 녀석이 울먹이며 다시 전화를 했다. “자꾸 아파서 대전 군통합병원까지 갔는데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헛탕 쳤어.” 녀석이 평생 장애를 안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곧바로 토요일 새벽에 달려가 외출을 신청했다. 시골 병원은 X선을 찍더니 “뼈는 이상 없네요. 발목이 겹질렸다”며 진통제와 반(半)깁스를 해주었다.



 열흘 전 녀석이 휴가를 나왔다. “여전히 밤에 잠을 못 잘 만큼 아프다”고 했다. 서둘러 대형병원에 데려가 값비싼 MRI를 찍었다. 의사가 선명한 MRI 사진을 흔들며 말했다. “발목 인대 파열입니다. 여기 시커먼 선이 뚝 끊어졌잖아요. X선이나 CT로는 모르죠.” 의사는 “곧 혹한기 훈련인데…”라고 걱정하는 아들에게 “빨리 수술 날짜부터 잡자”고 재촉했다. 그나마 “접합한 뒤 한두 달 조심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마 아들 녀석은 수술을 받고 일주일 뒤 부대로 돌아갈 것이다. 석 달 동안 인대 파열을 모른 채 물파스와 진통제만 준 군대를 원망할 생각은 없다. 사비(私費)로 댄 수백만원의 MRI와 수술 비용도 전혀 아깝지 않다. 무조건 “참아라”고 윽박지른 못난 아빠가 미안할 따름이다. 부디 병역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어쩌면 이 땅의 평범한 가정은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군에서 고장 난 아들을 다시 고쳐서라도 국가에 갖다 바치는 게 당연한 일이라 믿는다. 높은 나라 분들이 이 정도의 AS는 이 땅의 ‘의무’라고 하니까….



 솔직히 나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이하 경칭 생략)가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부러운 건 ‘신(神)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부주상골’로 입영 1년 만에 육군 일병으로 소집 해제됐다. 차남은 유학 중 축구를 하다 무릎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병역이 면제됐다. 둘 다 무시무시한 질병이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또한 부끄러운 이유는 이 땅에 그만큼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수첩에는 하자(瑕疵) 있는 인물만 넘쳐난다. 1년1개월 만에 소집해제된 인사는 이완구뿐 아니다. 최경환·문형표·윤병세·김진태·안종범 등 수두룩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 각료의 병역면제와 대체복무 비율은 무려 50%다. 그 아들들 또한 만성 폐쇄성, 수핵탈출증, 사구체신염 등으로 병역면제가 흔하디 흔하다. 하기야 정신병으로 군대 안 간 인사가 검찰 핵심간부로 수사를 총지휘한 웃기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아마 이완구 카드는 압도적으로 통과될 것이다. 야당에는 ‘학생운동-병역면제’를 훈장처럼 여기는 의원이 숱하다. 그럼에도 이제 병역 의혹은 지겹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현역 판정 비율이 91%인 국민 개병(皆兵) 시대다. 임 병장, 윤 일병 사건의 끔찍한 트라우마는 여전하다. 모두 병역의무에 따른 가슴 아픈 희생자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분위기를 몰랐다면 민심에 둔감한 것이요, 알고도 이완구를 지명했다면 엄청난 강심장이다.



 ‘책임 총리’에 앞서 ‘(병역) 책임을 다한 총리’부터 보고 싶다. 얼마 전 해안 초소 병사가 숨졌고 어제는 한 병사가 어머니를 살해했다. 눈물나게 슬픈 나날들이다. 지금 이완구는 납작 엎드려야지 철심 박힌 차남의 X선 사진을 흔드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나는 이번 인사에 공감할 수 없다. 청와대가 국민적 감동을 기대했다면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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