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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새로 생긴 연말정산세, 도대체 원칙이 뭔가

중앙일보 2015.01.27 00:15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사람들은 자주 이런 질문을 한다. 정규군과 치안병력이 극히 초라했던 조선은 어떻게 500년을 지속했을까? 육체가 아니라 머리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지식국가’ 조선의 통치구조는 세계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단단하고 견고했다. 성리학적 지식은 권력의 제작소이자 교정청이었다. 지식-권력의 선순환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는 한 왜군이 전국을 분탕질하든 용골대 부대가 서울을 짓밟든 서민은 군왕과 사대부의 지식권력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1860년대 사정이 달라졌다. 진주민란을 필두로 전국 80여 개 지역이 민란에 휩싸였다. 농민, 초군, 부랑 잡배는 물론 빈사(貧士)와 신흥부자까지 가세했다. 함경도에서 삼남지역까지 타올랐던 민란의 불길은 농민전쟁으로 이어졌고 도저한 조선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왜 그랬을까? 수취제도의 모순과 부패였다. 요즘 말로 하면, 수령이 세금을 부당하게 올렸고 부당하게 거뒀다. 징수액이 모자라면 망자에게 세금을 매기는 백골징포와 아동에게 군역세를 부과하는 황구첨정(黃口簽丁)을 불사했다. 양반들은 관(官)과 결탁해 하층민에게 세금을 고스란히 넘겼다. 분노한 농민들이 결집했다. 관청이 불타고 수령은 피신했다.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관이 일방적 징세원칙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환급액 축소와 추가징수를 암호화한 연말정산 세정(稅政)은 ‘민란의 시대’를 연 세제문란과 그리 멀지 않다. 세법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다고 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용처별 세율 조정도 그렇거니와 중위소득 5500만원을 기준으로 하위층은 환급액이 커지고 상위층은 몇 만원 정도 더 부담한다는 말을 그냥 흘려들었던 거다. 그런데 거위털이 살짝 뽑히는 게 아니었다. 다음달 월급봉투가 홑겹처럼 가벼워진 사람이 속출하고, 거의 빈 통장을 들고 가계대출 행렬에 줄 설 월급쟁이가 널렸다.



  연말정산이란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최적의 수단이다. 부양가족 형편에 따라 힘들었던 사람에겐 보조금을 주고, 덜 낸 사람에겐 적정미납액을 징수하는 평형수다. ‘13월의 보너스’를 기대했던 직장인이 얼마나 많은가? 구정 설을 여유롭게 쇠고, 가계적자를 메울 수 있다. 그런데 환급은커녕 추가징수 고지서가 컴퓨터 화면에 반짝거리면 심정이 어떨까? 별 꾀를 다 내봤을 것이다. 노부모는 물론 장인, 장모에 형제자매까지 넣어도 별 소용이 없음을 알아차리곤 허탈했던 거다. 경제관료들의 은밀한 꼼수를 이길 장사가 없다.



 상위소득에 속하는 맞벌이 동료 교수는 400만원 징수액이 나왔다. 늦장가에도 아이를 2명이나 키우는 그 애국자는 다음달 봉급이 거의 차압될 것이다. 대학생 둘을 키우는 후배 기자는 100만원이 나왔다고 울상이다. 작년엔 환급을 받았던 필자의 화면에도 그 두 배의 액수가 혀를 널름거린다. 작년 납세총액의 20%다. 일반 사무직 종사자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다. 근로소득세를 10% 냈고 연봉도 거의 변화가 없는데 세액이 갑자기 20% 뛰었다면 족징, 인징과 무엇이 다른가. 미리 알려줬다면 당황하거나 분노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개정세법에 찬성표를 던졌던 246명의 국회의원은 이런 결과를 예상했을까? 이것이 ‘증세는 없다’고 거듭 약속한 나 홀로 정부의 나 홀로 행보다. 도대체 원칙은 뭔가?



 스웨덴의 내 친구는 30대에 2년간 휴직을 했다. 자녀 3명에게 지급되는 출산·보육 장려금만으로도 생활이 거뜬했다. 세계 최저 출산율에 고심하는 한국은 다자녀가정 환급액을 싹둑 잘랐고, 연간 333만원(월 28만원) 이상을 버는 노부모도 기본공제 제외다. 저출산·고령화시대를 거꾸로 걷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대학생 자녀는 아예 기본공제에서 뺐고, 의료비·교육비 공제율도 줄였다. 노부모 봉양에 대학생 둘을 가진 50대 직장인은 추가 고지액을 받아들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결혼 못해 서러운 독신자에겐 ‘서러움세(稅)’가 부과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절실한 한국 사회에서 기부금 공제율을 깎고, 개인 연금보험도 슬그머니 내친 세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더 걷어야 한다는 관리의 집요한 의욕이 각종 세금 항목에 집요하게 작용한 결과다. 봉급생활자 1600만 명이 추가로 갹출한 근로소득세 1조원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한국이 고세율 국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공적 서비스도 딱 그 수준에 맞춰 있다. 복지후진국에서 중복지 정도로 넘어가려면 조세 인상이 절대적이다. 장사 잘되고 일자리 많아지면 세금 내는 거 두렵지 않다. 조세자원도 늘어난다. 그런데 이 쪼들리는 판에 무엇을 얼마나 왜 더 가져가는지 모르고, 어디에 어떻게 쓸지 밝히지 않는 세금은 부당징세다. 그런 유형의 직접세가 하나 신설됐다. 이름하여 ‘13월의 연말정산세(稅)’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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