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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대법원에 '독수리 5형제'가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2015.01.26 00:05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재현
논설위원
검찰 출신인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신영철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 제청된 것은 예상 가능했던 사실이다. 지난해 말부터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이번 대법관 인사는 검찰 몫”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2012년 안대희 대법관이 퇴임한 뒤 2년6개월간 대법관을 배출하지 못한 검찰의 불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정작 검찰 내부에선 ‘후임자’ 선정을 놓고 진통을 겪었다. 고검장급과 검사장급 간부 4~5명을 대상으로 인선작업을 했지만 당사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다. “좀 더 검찰에 있고 싶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자신이 없다”….



 급기야 김진태 검찰총장이 “대법관 후보자가 되는 조건으로 고검장급으로 승진시켜 주겠다”며 일부 검사장급에게 ‘당근’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결국 김 총장은 자신보다 3년 선배 기수인 박 원장을 ‘플랜 B’ 차원의 후보로 천거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어떤 인물일까. 깔끔한 외모와 젠틀한 성격의 전형적인 ‘경기고 스타일’이란 평가가 많았다. 흔히 말하는 스타 검사는 아니며, 이념적으로는 보수에 가깝다. 2009년 서울북부지검장에서 퇴임한 뒤 법무법인에서 일했다. 2012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비리 사학을 옹호했다는 비판 정도가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현 정부 들어 검찰총장·민정수석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더니 지난해 초 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컴백했다.



 그가 대법관 후보자가 되면서 ‘14대 0’은 ‘13대 1’로 바뀌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모두가 판사 출신이라는 눈총에서 벗어나게 됐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가 시작됐다”는 성급한 촌평도 있었다.



 과연 그럴까. 한국 최고법원에서 이뤄진 ‘검찰 몫’ 할당이라는 나눠 먹기식 인사를 놓고 다양성을 말할 수 있을까. 코미디 프로의 대사처럼 ‘도찐개찐’이라고 표현하면 사법부에 대한 모독이자 당사자에 대한 결례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3자의 관찰자 입장에선 ‘그들만의 리그’가 오히려 더 견고해진 느낌을 받는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60년대 초까지 검사가 대법관으로 임명된 사례는 간간이 있었다. 법조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윗돌 빼서 아랫돌을 괼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때인 64년 당시 주운화 대검차장이 대법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성격이 달랐다. 사법부 통제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관례라는 이름으로 검찰 몫이 배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부가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80년부터 지금까지 35년간 임명된 86명의 대법관 중 판사 출신이 아닌 사람은 20%도 안 된다. 특히 양 대법원장이 2011년 9월 취임한 이후 임명 제청한 9명의 대법관 가운데 박 원장을 제외하면 8명이 보수성향의 법관 출신이다. 여기다 양 대법원장이 지명한 2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법관 고위직을 지냈던 사람들이다. 이념적으로 별 차이를 느낄 수도 없다. 이른바 ‘법관 순혈주의’ ‘사법 엘리트’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대법관이 고위 법관들의 승진 자리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판사들이 소신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평생을 갑(甲)의 신분으로 살아왔던 이들에 대해 빈곤층, 다문화가정, 노약자, 장애인, 이주 노동자, 성적 소수자, 난민 등 사회적 약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연세대 김종철 교수는 “사법부가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구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위한 권력이 아니라 민주주의 억압을 위한 권력으로 변질될 수 있고, 반(反)민주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정치의 사법화의 의의와 한계』)”고 밝혔다.



 이용훈 대법원장 때는 ‘코드 인사’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진보 성향 대법관들인 이른바 ‘독수리 5형제’ 의 독특한 법 해석과 판결은 소외층엔 한줄기 빛처럼 작용할 때도 있었다. ‘사법독점을 통한 사법지배’에 대한 을(乙)들의 인내가 한계점에 이르렀다. 사법독립과 전문성이란 명분 뒤에 숨어 있는 폐쇄적 인사구조는 깨져야 한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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