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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의 시시각각] 박근혜 대통령이 위험하다

중앙일보 2015.01.26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승희
정치부장
#1995년 1월 6일.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 3년차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대통령이 야당에 너무 인색한 거 아닌가.



 “내 자신이 어려운 시대에 야당 생활을 해 누구보다 야당을 이해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분명히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야당 하던 시절에는 민주주의가 없을 때다. 언론 자유가 없을 때다. 솔직히 지금은 언론의 자유가 너무 있다. 오보를 해 놓고도 정정도 안 하지 않나.”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2000년에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옷 로비 의혹사건으로 시끄럽자 99년 12월 19일 KBS와 대담을 했다.



 -옷로비 사건 등을 보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분들이 오히려 대통령을 더 어렵게 하는 것 같은데.



 “유구무언이다. 거짓말, 위증, 이런 게 국민을 화나게 만들고 정부가 그 와중에 끌려들어가 지금 고통을 겪고 있다. 물론 국민도 억울하겠지만 정부도 억울할 때가 많다.”



 -바깥에선 대통령이 너무 꼼꼼하고 해박해 참모나 장관들이 소극적이란 얘기가 있다. 참모들이나 장관들이 지금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나.



 “장관뿐만 아니라 비서관 등이 자주 대통령한테 면담 신청을 해 건의하고 이렇게 하고 있다. 또 내가 하라고 그러고…. 언로는 완전히 개방돼 있다.”



 5년 임기의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 집권 3년차다. 2년 동안의 보고와 국무회의 등으로 대통령은 국정 모든 분야에서 단단하게 무장돼 있다. 잦은 인사로 수석·장관들보다도 더 많이 안다. 사석에서 “당신이 장관 되기 전부터 이 일은 내가 챙겨왔던 건데”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자신감이 붙은 만큼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싶어진다. 대통령이란 자리의 힘도 느끼기 시작한다. 고집이 세지고 외곬로 향하는 게 이때부터다.



 반면 국민은 정반대다. 대통령과의 허니문이 끝나고 ‘부부싸움’이 잦아진다. 무슨 일을 하든 예뻐만 보이고, 도와주고 싶어했던 대통령이 이젠 오만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내 삶은 팍팍한데 대통령은 자신이 책임도 못 질 미래를 위해 참으라고만 한다. 국민과 대통령 간에 불화가 잦아지면서 국민은 싫증을 내기 시작한다.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서 5년 주기로 벌어지는 애증사를 다섯 차례나 겪은 공무원들도 3년차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대통령이 업적을 남기려고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보고서는 현란해지지만 눈과 발은 다음 대통령을 좇기 시작한다.



 대통령, 국민, 공무원, 이 세 축 간의 불협화음은 잦은 사건·사고로 이어진다. 대통령과 국민은 점점 지겨운 결별의 순간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결론은 늘 정해져 있다. 시간 앞에서 대통령은 을(乙)이다.



 5년의 궤도에서 벗어날 해피엔딩은 없는가. 당장은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대면보고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등등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은 힘 있는 대통령을 원하지만, 오만한 대통령을 원하진 않는다.



 대통령 혼자 다 하겠다는 무리수도 두지 말아야 한다. 경제를 잘 몰라 수석·장관에게 맡겨버린 전두환 정부의 경제정책이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최고였다는 평가, 외교·통일 정책의 중흥기가 ‘물태우’로 불린 노태우 정부 때라는 평가가 왜 나오는지를 곱씹어봐야 한다. 대통령이 권한을 나눈다는 건 책임도 나눈다는 의미다. 공무원 사회가 그 정도는 안다. 주변에서 하는 훈수도 잘 들어야 한다. 바둑을 옆에서 보면 아마 5급도 9단들의 대국에 훈수를 둘 수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왜 떨어지느냐는 질문에 ‘2인자’ 김종필 전 총리가 한 촌철살인 답이 그렇다.



 “국민이 호랑이라 그런 거다. 국민은 간단하게 뜨거워지고 간단하게 차가워진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게 바보다… 대통령이 뭘 좀 했다고 국민이 아주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하면 바보다. 정치인은 그저 봉사할 뿐이다.” (조선일보 1월 24일자 B2면)



박승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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