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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 53년 전 그날의 선택

중앙일보 2015.01.24 00:31 종합 23면 지면보기
0시 1분 전

마이클 돕스 지음

박수민 옮김, 모던타임스

664쪽, 3만 3000원




하루는 1440분이다. 인류가 공멸할 제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을 시계에 비유한다면, 1439분까지 간 적이 있다. 1962년 10월 14~28일 쿠바 미사일 위기 때다. 그때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일으켰다면, 독자가 이 서평을 읽을 일도 없었으리라. 멸망을 가까스로 면했더라도 생존자들은 지금 ‘제2차 석기 시대’에 살고 있으리라.



 저명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2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라 부른 13일간의 위기는 그만큼 중요하다. 주제가 중요한 만큼 미국에서는 쿠바 위기에 대해 책이 나오면 잘 팔린다. 『0시 1분 전』은 가장 최근에 나온 전문서다. 이 책의 차별성은 철저한 고증이다. 저자인 마이클 돕스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기밀분류가 해제된 6개국 문서를 교차 검증했고 100여 명과 인터뷰했다.



 『0시 1분 전』은 쿠바 사태를 둘러싼 신화를 깬다. 케네디 대통령이 상황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통념은 사실 틀렸다. 주먹구구식 대응이나 상호 오해도 많았고 순전히 운이 좋았다는 것도 드러낸다. 상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하부 조직의 무단 행동도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위기 관리(crisis management)’라는 말 자체가 모순을 담고 있다. 위기는 결코 관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쿠바 사태의 진실을 캐기위해 관계자 100여 명과 인터뷰 한 저자 마이클 돕스. [사진 모던타임스]
 갈등 구도가 선명한 연속극이 인기를 끌 듯, 이 책에도 대립각이 뚜렷하다. 국제정치의 양대 수단인 전쟁과 외교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미 행정부는 고민했다. 당시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들이 아직 현역이었다. ‘주전파’가 ‘주화파’보다 셌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와 소련 공산당 서기장 후루쇼프(옛 표기는 후루시초프)도 처음에는 핵전을 불사할 것처럼 강경하게 나왔다.



 다행히 케네디와 후루쇼프는 합리적이고 지적인 인물이었다. 애초에는 공습을 선호했던 케네디는 결국 타협을 선택한다. 터키에서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비밀리에 약속한다. 후루쇼프는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소련이 미국에 선제 공격할 것을 주장한 쿠바 총리 카스트로를 억눌렀다.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코리아’ 시대를 맞아 쿠바 사태에 대한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케네디·후루쇼프·카스트로 간에 교환된 서신을 기초로 한 책인 『아마겟돈 레터』가 출간됐다.



 이 책은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필독서다. 국제정치학의 핵심 사례 중 하나인, 쿠바 미사일 사태를 다룬 3대 명저 중 한 권이다.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논픽션을 좋아하는 매니아층도 좋아할 책이다. 존 르 카레, 그레이엄 그린을 좋아하는 독자는 이 책도 좋아할 가능성이 크다. 역자인 박수민 전 정보교관실장은 공군에서 정보통으로 활약했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S BOX] 핵전쟁도 마다않은 혁명가 체 게바라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8~67)는 쿠바 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에도 쿠바에 있었다. 그는 소련-쿠바 외교 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쿠바에 핵미사일을 도입하게 된 배경에도 게바라가 있었다. 쿠바 사태 당시 서부 피나르델리오 주를 맡았다. “혁명이 벌어지면, 이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게바라에게 쿠바 사태는 혁명의 연장이었다. 그는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쿠바 같은 나라들을 해방시키려면 핵전쟁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련이 핵무기를 쿠바로부터 철수시키자 게바라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미·소 양대 초강대국의 장기판에서 쿠바 같은 나라는 ‘졸(卒)’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쿠바 사태 이후 미국 못지 않게 소련을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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