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세기업 상담, 세네갈서 교육 자문 … 봉사도 재취업

중앙일보 2015.01.21 02:30 종합 4면 지면보기
경력 봉사 : 수출 도우미로 변신한 퇴직 상사맨 한상호씨(54세) 대기업에서 퇴직 후 수출 도우미로 변신한 한상호씨가 19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중소기업 에스인에서 박승기 사장과 종이 포일 상품의 수출상담을 하고 있다. 한씨는 상사맨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중소기업의 수출을 돕고 있다. [파주=오종택 기자]
2010년 기업은행 지점장을 하다 명예퇴직한 임성환(60)씨는 요즘 비영리단체 ‘희망도레미’로 출근한다. 전문직 퇴직자들이 재직 중 쌓은 경험과 지식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부하고자 모인 단체다. 임씨는 소액 대출을 받은 서울 강북의 식당·미용실 등 자영업자 17명에게 금융 상담과 경영 컨설팅을 한다. 그는 “임대료 등 비용을 제하면 한 달 순수입이 100만원밖에 안 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라며 “이자를 못 내서 사업을 접는 일이 없도록 금융 흐름에 대해 조언하고 시장조사나 고객관리 방법도 알려준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에 다닐 때는 회사에 이익을 주는 고객을 찾아다녀야 했는데 지금은 28년간 쌓은 지식을 동원해 소외계층에 도움을 주니 보람이 있다”고 했다.


은행원 출신, 자영업자 금융 컨설팅
음악 전공자, 소외층 아이들 가르쳐
활동비 정도 벌지만 이웃 돕기 보람
일 놓은 뒤 오는 상실감 극복 가능
퇴직자 50% "봉사 중요" 참여는 7%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이영운(63)씨는 지난해 7월부터 서부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유치원 교육과정 개편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KOICA 중장기자문단으로 세네갈 교육부에 파견돼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정책에 대한 자문에 응한다. 영어교사로 25년간 근무하고 장학사·장학관과 일선 학교 세 곳에서 교장을 거치며 쌓은 경험을 풀어놓고 있다. 이씨는 “은퇴 후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봉사활동을 계획했다”며 “세네갈 고위 공무원들이 한국 교육을 본받기 위해 열정을 보일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재능 봉사 : 저소득층 아이들 바이올린 가르치는 이윤숙씨(62세) 바이올린 강사 이윤숙씨가 19일 서울 중곡4동 꿈나래지역아동센터에서 저소득층 학생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이씨는 여유시간을 이용해 봉사를 시작했다. 비영리단체로부터 소정의 활동비를 받았으나 지금은 무료로 봉사한다. [강정현 기자]
 베이비붐 세대 퇴직자는 교육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해외생활 경험도 많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 동향(2011)’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62.9%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지만 47~55세인 베이비붐 세대는 72.4%가 고졸 이상이며, 대학 졸업자도 23.3%에 이른다. 사회 참여 열망도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0)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는 자원봉사 참여율이 7.3%로 낮으나 두 명 중 한 명은 ‘은퇴 후 사회 참여활동이 중요하다’(49.5%)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사연 정경희 고령사회센터장은 “교육 수준이 높은 반퇴 세대가 대거 퇴직하면 현직에서 쌓은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시민의식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노후 소득이 안정될수록 이런 인식도 빨리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봉사활동은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퇴직자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 센터장은 “베이비붐 세대는 평생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퇴직 후 갑자기 일손을 놓으면 상실감과 허전함에 우울증을 앓기 쉽다”며 “봉사활동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희 한국무역협회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장은 “노후 준비가 부족한 50대 퇴직자들은 100% 무료 봉사보다는 경력을 활용해 봉사를 하면서 작게나마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2012년 대기업에서 퇴직한 ‘상사맨’ 한상호(54)씨는 요즘 중소기업을 위해 수출 길을 개척하고 있다. 제품은 참신하지만 회사 규모가 작아 수출 담당자를 따로 두기 어려운 회사를 돕는 일이다. 26년의 직장생활 중 10년을 유럽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수출입업무와 해외시장을 관리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의 해외마케팅 서포터로서 중소기업의 수출 컨설팅을 맡으며 교통비 등 소정의 활동비도 받는다.



한씨는 “영문 제품 소개서, 수출 상품코드와 견적서를 만들고 회사에도 가르쳐준다”며 “영세기업의 해외 진출을 초기 단계부터 도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교보생명에서 준법감시인으로 정년퇴직한 변기택(56)씨는 장애인단체 등에서 법률 자문에 응하고 있다. 재능을 활용해 사회공헌에 나서기도 한다.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이윤숙(62)씨는 ‘퇴직’이란 개념은 없지만 50대 들어서면서 한창때보다 레슨 요청이 20%로 줄었다. 그는 여유시간을 활용해 서울 광진구에 사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지도한다.



 중장년 퇴직자를 비영리기관이나 사회적 기업에 연결해주는 고용노동부 사업을 위탁 운영하는 복지네트워크협의회 유어웨이의 나솔인 이사장은 “금전적 보상은 적지만 자기만족과 성취감에 의미를 두는 봉사 성격의 일자리는 참여시간이 탄력적이기 때문에 유휴 노동력의 노동시장 참여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동호·김기찬 선임기자

박진석·박현영·염지현·최현주·박유미·김은정 기자 hope.bantoi@joongang.co.kr



◆ 은퇴·노후 설계 [미디어 스파이더] 바로가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