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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짓기·여행작가·도시농업 … 여가를 재테크하라

중앙일보 2015.01.21 02:30 종합 5면 지면보기
“28년간 애경사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어요. 그러다 퇴직하고 나니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네요.”


퇴직자 46%가 "특별한 취미 없다"
대부분 TV보기·산책·잡담 그쳐
여행 좋아하는 50대, 여행책 내고
목공예 관심 은퇴자, 목수 제2인생
취미가 일자리 연결 땐 금상첨화

 지난해 말 대기업에서 퇴직한 김모(55)씨는 요즘 하루 종일 집에서 TV를 보거나 동네 산책을 하며 지낸다. 딱히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다. 일찌감치 퇴직을 준비한 덕에 생활비는 개인연금 등으로 해결했다. 건강관리도 잘했다. 그런데 막상 퇴직하고 나니 남아도는 시간에 뭘 해야 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1960년생인 그는 80년 대학에 입학했고, 86년 취업해 줄곧 한 직장만 다녔다. 그는 “학창 시절 학생운동을 할 때는 노는 게 죄악이었고, 취직해서는 ‘회사형 인간’으로 살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89년 해외 여행 자유화 이후 대학에 다닌 2차 베이비붐 세대(68~74년생)와 달리 그는 퇴직 때까지도 해외 출장 ‘울렁증’이 있었다.



 조명기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본격적으로 퇴직하기 시작한 1차 베이비붐 세대는 여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욕구는 크지만 실제 여가생활 실천은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며 “소득 수준이 높고 시간이 있어도 경험이 부족해 능동적인 여가생활을 즐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설문에 따르면 국내 퇴직자의 절반 가까이(45.6%)가 특별한 취미생활 없이 TV 보기나 산책, 잡담하기 등으로 여가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석호 레저경영연구소장은 “우리 부모 세대는 은퇴 후 특별한 여가활동 없이 손자·손녀를 돌봐주다 돌아가시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앞으론 30년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 못지않게 여가활동이 노후 삶의 질을 좌우할 것”이라며 “푹 빠져서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을 찾고 제대로 교육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20년 넘게 일한 중소기업에서 2년 전 퇴직한 이유직(54·부산시)씨는 한옥 짓는 일을 배웠다. ‘목수양성 사관학교’로 불리는 청도한옥아카데미(경북 청도군)에서 3개월간 수업을 들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목재로 의자나 테이블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며 “3~4년 전부터 정년을 앞두고 재취업을 고민하다 취미로 해온 목공예를 발전시켜 한옥 짓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취미는 새 일자리로도 이어졌다. 그는 지난해부터 목수로 일하고 있다. 최근 청도의 한 수목원에 한옥과 정자를 짓는 일을 맡았다. 이씨는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점차 멋스러운 한옥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며 “나중에는 가족이 함께 살 한옥을 고향에 짓고 싶다”고 했다. 30년간 서울의 한 사립대 교직원이었던 박명예(56)씨는 지난해 여행서 『하루쯤 성당여행』을 펴냈다. 연세대 미래교육원의 여행작가 과정과 여행기 출판 과정을 수료한 뒤 졸업생들과 함께 쓴 작품이다. 박씨는 “막연하게 퇴직 후엔 여행 다니며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글 쓰는 방법부터 사진 촬영까지 제대로 교육받은 뒤 꿈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휘(53)씨는 빌딩이나 아파트단지의 나무와 꽃을 아름답게 꾸미는 조경가다.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조경가로 생활하기에도 바쁘지만 그는 틈틈이 서울인생이모작센터에 나가 도시농업 기술을 익히고 있다. 그는 “조경을 하다 보니 도시농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며 “요즘은 텃밭도 정원식으로 꾸미고 보기 좋게 만드는 추세여서 좋아하는 조경기술을 살리면서 사업 기회로도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가를 제대로 즐기자면 가족관계와 인적 네트워크를 잘 가꾸는 게 중요하다. 박지숭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부부가 다정하고 대화시간이 길수록, 자녀와 사이가 좋을수록 여가생활에 만족하고 특히 배우자와의 관계와 여가생활 만족도 간 상관관계가 높게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가족과의 친밀감과 봉사형·취미형 일자리는 퇴직자의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있다. 퇴직자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로·좌절·분노·우울 같은 스트레스 증상을 더 많이 경험하는데, 가족과의 연결성과 적극적인 취미·사회활동은 이를 반감시킨다. 박 책임연구원은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아무 일을 안 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더 크다”며 “사회공헌과 여가, 가족관계를 통해 정신건강을 챙겨야 퇴직 후 30년 동안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동호·김기찬 선임기자

박진석·박현영·염지현·최현주·박유미·김은정 기자 hope.bant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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