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뛰어서 죄송" 엘리베이터 안 소통 … 위·아랫집 층간소음 갈등 풀었다

중앙일보 2015.01.21 02:05 종합 6면 지면보기
시민을 뜻하는 사람 인(人) 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는 박헌목(68) 대구 녹원맨션 층간소음분쟁관리 위원. [프리랜서 공정식]
무료하다. 지금 나이 예순 여덟. 내가 사는 녹원맨션은 12~14층 9개 동에 542가구로 이뤄진 아파트 단지다. 3년 전 9명의 층간소음분쟁관리위원 중 하나가 됐다. 그렇지만 마지막 일 처리한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아마 2013년 말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론 층간소음 분쟁이 싹 사라졌다. 내가 할 일이 없다. 사실 그런 현실이 고맙기도 하다. 덕택에 아파트 값이 올랐으니까.


[나는 시민이다] 박헌목 대구 녹원맨션 층간소음분쟁관리위원

 원래 이런 건 아니었다. 우리 아파트도 툭하면 층간소음 때문에 티격태격했다. 다른 데선 흉기까지 휘둘렀다던 2012년이었다. 이웃끼리 모여 얘기하던 참에 “대표를 뽑아 스스로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했다. 모두들 끄덕였다. 9개 동별로 한 명씩 층간소음분쟁관리위원이 뽑혔다. 아래위 집끼리 낯 붉히지 말고 규칙을 만들어 지켜보자고 했다.



 밤에는 청소·세탁처럼 시끄러운 가사일을 피하고, 문을 쾅 닫지 말며, 아이들이 뛰는 것을 자제시킬 것 등 여섯 가지 수칙을 정했다. 세 차례 전체 입주민 설명회를 거쳐 채택했다. 채택할 때 누군가 말했다. “서로 배려하는 게 중요하겠죠.”



 스스로 만든 규칙이어서인지 비교적 잘 지켰다. 하지만 뛰어다니는 아이들이야 어찌하랴. 하지만 이것도 묘하게 해결이 됐다. 규칙을 만든 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런 대화가 자주 오갔다. “아휴, 어제 시끄러우셨죠. 우리 애들 때문에.” “뭘요, 애들이 다 그렇죠.” “얘야, 아주머니께 인사드리고 죄송하다고 해야지.”



 이젠 아이들은 어른을 보면 꾸벅꾸벅 배꼽 인사를 해 댄다. 이웃 간에 대화는 갈수록 많아졌다. 부침개를 부쳐도 서로 나눈다. 함께 봉사활동 나갈 논의도 가끔 한다.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자리잡아서인지 우리 아파트는 경비원들과도 가족처럼 지낸다. 귤·사과를 몇 개씩 들고 관리실로 달음질치는 아이들 보는 게 드물지 않다.



 학원가와 가까운 곳, 그러면서도 조용해 공부하기 좋은 곳이란 평판이 나서 우리 아파트는 꽤 인기다. 요 앞 부동산 우준혁(52) 사장이 그랬다. “매물도 잘 나오지 않지만 나오면 금세 팔린다. 지산동·범물동에서 꼽히는 아파트다.”



 들어보니 2년 전인 2013년 초에 비해 아파트 값이 40%가량 올랐다고 한다. 은근히 자부심이 생긴다. 우리 스스로 아파트를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이젠 힘을 모아 뭔가 또 다른 걸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대구=김윤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