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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공주·미니마우스 환해졌네요, 배구 코트

중앙일보 2015.01.21 00:34 종합 24면 지면보기


코트 위를 런웨이(패션쇼 무대)로 만든 여자배구 ‘패셔니스타’들이 주목받고 있다.

김혜진, 분홍 립스틱으로 여성미
데스티니, 튀는 머리스타일 눈길
외모 가꾸기 경쟁에 남성팬 늘어



 IBK기업은행 외국인 공격수 데스티니(28·1m93㎝·미국)가 대표적이다. 데스티니는 경기마다 달라지는 머리모양으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곱슬머리를 길게 묶는 건 기본이다. 상투를 틀듯이 동그랗게 말아올린 스타일, 폭탄을 맞은 듯 심하게 부푼 머리, 미키마우스 귀와 같이 두 갈래로 나눠 틀어올린 모양 등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이 모든 머리모양을 직접 꾸민다. 간혹 어려운 모양을 할 때는 돌을 갓 지난 딸의 보모가 도와주기도 한다. 특히 리본 머리핀을 좋아해서 빼놓지 않고 착용한다. 지난해 12월 25일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머리를 올린 뒤 반짝이는 빨간 리본을 꽂아 화제가 됐다.



 단아한 외모로 인기를 끌고 있는 흥국생명 주장 김혜진(26·1m80㎝)은 팀의 상징색인 분홍색 립스틱이 패션 포인트다. 촉촉한 입술에 분홍 립스틱을 발라 여성미를 부각시킨다. 하얀 피부와 대조적이라 더 눈길을 끈다. 분홍색 귀고리와 머리핀도 종종 착용해 ‘핑크 공주’로 불린다.



 신인이지만 올스타에 뽑힌 열아홉살 쌍둥이 자매 이재영(흥국생명·1m78㎝)과 이다영(현대건설·1m79㎝)은 서로 다른 패션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신인 드래프트 때만 해도 외모가 비슷해 둘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프로 데뷔 이후엔 상반된 매력을 뽐내고 있다. 검정색 단발머리를 고수하고 있는 이재영은 깜찍하고, 갈색으로 염색한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이다영은 청순한 이미지다. 어머니 김경희씨는 “다영이가 재영이보다 당찬 면이 있는데 외모 가꾸는 것에도 그런 성격이 드러난다”고 했다.



 여자배구 선수들이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80~90년대 여자배구 선수들에게 외모 가꾸기는 금기였다. 남자같은 짧은 커트 머리에 맨 얼굴로 뛰어다녔다. 최소한의 피부 보호를 위한 기초 화장품도 사용하지 못했다. 머리핀·귀고리 등 액서서리 착용은 엄두도 못 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대표였던 이도희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예전에는 팀마다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1~2년차 때는 머리 염색은 물론 기르는 것도 금지였다. 몰래 화장을 하다 걸리면 크게 혼났다”고 회상했다.



 프로배구 전 경기가 TV 중계되면서 선수들의 외모 가꾸기가 본격화됐다. 매일 TV에 얼굴이 나오다보니 외모를 주목하는 팬들이 늘어났다.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치렁치렁한 목걸이나 귀고리는 제한되지만 몸에 딱 붙는 액서서리나 간단한 화장은 가능해졌다. 또 선후배가 함께 패션에 대해 이야기도 나눈다.



 그 덕분인지 남성 팬도 늘었다. 여자배구 팬이라는 조준석(30)씨는 “예전에는 여자배구 선수들이 외모에 관심 갖지 않고 경기만 열심히 뛰었지만 요즘에는 다르더라. 깔끔하고 단정해 보인다. 배구 선수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도희 해설위원도 “프로 선수에겐 외모 가꾸기도 일종의 자기 관리다. 팬들을 위해서 예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선수들의 패션 경쟁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번 시즌 선두 경쟁을 하던 흥국생명이 최근 4위까지 처지자 선수들의 화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화장할 시간에 훈련을 열심히 하라”는 비난도 나왔다. 80~90년대 경직된 팀 문화 속에서 활동했던 코칭스태프들도 겉모습에 신경쓰는 선수들을 걱정한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성탄절에 데스티니가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 머리를 하고 나와 깜짝 놀랐다. 외모에 신경쓰느라 경기를 등한시 할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더 열심히 뛰더니 이겼다”며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자기 개성을 살리는 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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