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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알랭 드 보통

중앙일보 2015.01.21 00:28 종합 26면 지면보기
본지 인터뷰에 이어 타지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그래서 농담 삼아 “타지 인터뷰에서는 좀 덜 재미있게 말해달라”고 했더니 드 보통 또한 이런 농담으로 받았다. “타지하고는 아주 따분한 이야기만 하겠다.” [최정동 기자]


기자가 하는 일은 삶과 밀접한 뉴스와 알찬 정보를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기자도 이야기꾼이다. 기자들은 이야기꾼들의 문체나 의사소통 방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 명인 알랭 드 보통(46)은 좋은 글을 좋아하는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기자에게도 ‘관심 종목’이다. 기자는 드 보통을 이번까지 포함해 세 번 인터뷰했다. 이번 인터뷰의 계기는 드 보통이 강연 전문기업 마이크임팩트가 16~17일 서울 광운대에서 주최한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에 강연하러 온 것이다. 드 보통을 17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만나 그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

"창의성은 전통과 자유의 중간 지대에서 나온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현대인의 문제를, 학부 전공인 역사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현대의 특징은 믿을 수 없는 속도의 변화, 기술의 발전, 끊임없이 어딘가로 옮겨 가기, 소비주의, 광고, 첨단 통신 등이다. 이런 특징은 좋은 것들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을 ‘미치게’ 만든다. ‘현대라는 이상하고 특이한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까’가 내 관심사다. 종교는 쇠퇴하고 있고, 우리 부모들의 삶을 지배한 전통적인 방식은 붕괴하고 있다. 나는 이들 문제를 이해하고, 이들 문제에 대해 뭔가를 쓰려고 하는 작가다.”



 -당신은 어떤 작가인가.



 “에세이(essay) 작가다. 나는 에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영어·프랑스어에서 에세이는 ‘개인적이며 장난기 많은(playful) 시도’라는 뜻이 담긴 말이다. 나는 여러 가지 문체로 글을 쓴다. 어떤 때는 학술 스타일, 어떤 때는 보다 개인적인 스타일로 쓴다. 하지만 내 문체는 기본적으로 에세이 스타일이다.”



 -작가라는 직업에 수식을 붙인다면 당신은 어떤 작가인가. 예컨대 ‘행복한 작가’ ‘도발적인 작가’인가.



 “잘 모르겠다. 나는 멜랑콜리(우울)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부정적인 뜻이 담긴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보기에 현대 세계는 지나치게 쾌활함을 강조한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모든 게 완벽할 수 있다고 강요한다. 미국 문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불교나 그리스도교 등 종교 전통에서는 삶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삶이나 세계의 불완전함에 적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전통의 가르침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심각한 문제에 적응하기 힘들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우울함의 비관주의(melancholy pessimism)’를 통해 우리는 ‘광고에 나오는 활짝 웃는 세상’이라는 편향성을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신(神)의 섭리(providence)와 불교·힌두교에서 말하는 업보(karma)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인간 조건의 실상에 더 가깝다고 보는가.



받는 사랑만 아는 어른이 문제



 “나는 ‘섭리와 업보에 대한 과학적인 관점’을 갖겠다. 섭리와 업보는 서로 다르지만, 양쪽 다 과학적인 세계관과 차이가 있다. 섭리와 업보는 서로 공통점이 더 많은 것이다. 문제는 ‘얼마만큼 내가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느냐’, 또 ‘무엇이 내 인생을 통제하느냐’다. 현대인은 자신이 제 삶의 주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좋은 직업에 종사하면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아프게 되면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죄의식을 느낀다. 종교적 세계관의 좋은 점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종교는 우리에게 겸허함을 가르치는 동시에 교만이나 죄의식 양쪽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섭리와 업보는, 우리의 의식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기재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는 권력이 중심이 되는 세계에 살았다. 로마제국은 군사력의 힘과 돈의 힘을 믿었다. 예수는 ‘우리의 마음은 부자인가’를 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도 따뜻하고 친절한지를 물은 것이다. 그는 초고층 빌딩도, 탱크도, 은행도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만민의 만민에 대한 그의 사랑 메시지는 현대의 군산복합형 사회에 대한 대안이다.”



 -신약성서의 요한복음 18장 38절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에게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상하게도 답이 기록되지 않았다. 답이 자명했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예수가 답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답에는 관심이 없었던 빌라도가 질문만 하고 딴 데로 가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예수가 침묵했다면, 그가 침묵한 것에 대해 답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침묵해야겠다.”



 -유대교는 어떤 종교인가.



 “의외로 유대교는 뭔가를 믿는 것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다. 유대교는 오히려 불교와 가깝다.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강조가 별로 없다. 유대교는 유대인들의 역사다. 구약성경은 역사책이다. 유대인들의 축제 또한 역사적인 일들을 기념한다. 종교는 합리성과 반대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유대교는 매우 합리적인 종교다. 법과 역사에 매우 가깝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이 역사와 법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랑에 대한 책도 썼는데 사랑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혼란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이다. 어린이였을 때 우리는 사랑받는다. 엄마가 우리에게 음식을 주고 아빠가 우리를 안아준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란 우리의 삶을 나이스(nice)하게 만드는 무엇이라고 체험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다음에는 사랑을 줘야 한다. 아무리 퇴근 후 지쳤더라도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어른이 된 다음에도 받는 사랑만 알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오늘날 어렸을 때의 받는 사랑밖에 모르는 어른들이 너무 많다. 다른 인간을 위해 나를 희생해 가며 뭔가를 줘야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작가가 될 것인가.



 “선택할 수 있다면 책은 안 쓰겠다. 책 쓰는 일은 너무 고통스럽다. 건축가가 되고 싶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들의 모습을 바꿔보고 싶다.”



자본주의에 대한 책 구상 중



 -책 쓰는 게 고통스럽다고 말했지만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글을 써왔다. ‘일자리 얻는 법’에 대한 책은 어떤가. 세계 모든 나라의 문제다.



 “일자리, 돈 문제 등을 다루는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 심리에 대한 책은 이미 썼는데, 앞으로는 자본주의 전체상을 밝히는 책을 쓰고 싶다.”



 -질투심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라이벌이 있는가.



 “그렇다. 질투심에는 좋은 점이 있다. 질투를 통해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난 친구들, 남을 잘 돕는 친구들을 보면 질투심을 느낀다. 사람마다 다른 이유로 내가 질투하게 한다.”



 -창의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창의성은 전통과 자유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과거의 규칙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규칙을 깨는 것도 필요하다. 세계는 아직도 충분히 한국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발전 단계는 이제 전통보다는 자유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예술·건축·문학·패션 등의 분야에서 한국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유다.”



 -글쓰기는 언제 하는가.



 “새벽 3시에 글쓰기를 좋아한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놀라운 나라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나라다. 문제도 많다. 특히 한국인의 영혼이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해결책이 나오면 한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가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난 사람=김환영 논설위원

사진=최정동 기자



[인터뷰 후기] 신앙 없지만 종교 긍정하는 사람



알랭 드 보통은 믿는 종교가 없다고 했다. 섭리도 업보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종교의 가치를 긍정했고 유대인 전통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있었다.



 -한국은 아마도 유대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호의적인 나라 중 하나다. 한 이스라엘 신문은 한국에 가면 집집마다 탈무드가 한 권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국인은 특히 유대인이 왜 뛰어난지 그 창의성의 비결이 궁금하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박해를 받았다. 모든 유대인의 공통점은 공포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대비한다. 아무리 상황이 안전하게 보여도 말이다.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이후 경찰이 유대인 거주 지역을 우선적으로 보호했다. 왜냐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면 ‘유대인을 죽여야 한다’는 말이 꼭 나오기 때문이다. 옛날이 아니라 현대 파리 한복판에서도 같은 일이 빚어지고 있다. 공포에 휩싸이게 되면 열심히 일하게 되고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 돈이라는 것도 보다 중요해진다. 돈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의 안전을 이 위험한 세상에서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 유대인은 성경 말씀에 따라 청결을 강조한다. 신(神) 앞에서 정화된 모습으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술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통의 문화적 특질이 유대인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의 전제 조건은 ‘나는 특별하다’ ‘나는 다르다’라는 믿음인데 그리스도 교인들에게 둘러싸인 유대인들은 ‘자동적으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창의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 맞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또 신은 유대인들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이는 다른 민족이 유대인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은 …



스위스 취리히의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철학자·소설가·수필가다. 현재 영국 런던이 활동 근거지다. 알랭 드 보통은 2008년 런던에 설립한 ‘인생학교’의 교장이기도 하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사학을 전공한 후,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철학 석사를 받았다. 하버드대 박사과정에서 프랑스 철학을 전공하다 뜻한 바 있어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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