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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홍인기 KAIST 초빙교수

중앙일보 2015.01.21 00:22 종합 28면 지면보기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이어령(1934~) ‘소원시(詩)’ 중에서





아버지들이 헤쳐 온 고난의 현대사

다시 비상을 꿈꾸는 간절한 기도




지난 연말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여러 번 울었다. 특히 끝에 가서 주인공 덕수가 “아버지, 저 이만 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며 아버지 사진을 보고 울먹일 때는 정말 실컷 울었다. 옆자리 연배 있는 관객들도 훌쩍였다.



 이어령 선생의 ‘소원시(詩)’를 다시 읽는다. ‘국제시장’이 나오기 전에 쓰여진 시지만 마치 이 영화를 보고 쓴 듯한 느낌이다. 벼랑 끝 ‘비상(非常)’ 상황에 처한 것을 모르는 이들을 탓하면서도 “날자, 날자. 벼랑 끝에서 한 번만 더 날게 하소서”라는 소원을 빈다. 50~60여 년 전 받기만 하던 우리가 ‘줄 수 있는 나라’가 된 오늘까지 우리 아버지, 형님, 우리 세대가 고생했던 옛일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비상(飛翔)’케 해 달라는 열망을 담은 듯하다.



 며칠 후 나는 우리 정부 장학생으로 한국에 와 공부하는 신흥국 중견 공무원 20명을 인솔해 부산·경남 지방 산업시찰에 나선다. 50여 년 전 선진국에 가서 ‘그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공부하며 자기 돈으로 공부하는 외국 친구를 부러워했던 옛일을 더듬어 본다. 젊고 유능한 우리 차세대의 젊은이가 현재의 ‘비상(非常)’한 어려움을 이기고 또 한 번 ‘비상(飛翔)’하는 한국의 주역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홍인기 KAIST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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